'인간 감정의 상업화'에 맞서야 한다
상태바
'인간 감정의 상업화'에 맞서야 한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1.18 1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은 기자의 인천문화 관람기' 2 - 영화 '카트'

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다룬 영화 ‘카트’가 주목받고 있다. 2007년 당시 이랜드그룹은 홈에버 비정규직 계산원들을 해고했다. 500여 명의 노동자들은 6월 30일 상암동에 위치한 홈에버 월드컵점을 점거했고, 파업은 512일 동안 계속됐다.

영화는 5년 동안 무실점으로 일한 ‘선희’에게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점장의 미소에서, 본사 지시에 따라 직원을 해고하겠다는 선언으로 재빨리 분위기를 바꾼다. 본론은 이거다. “너희는 약자다.”, “비정규직인 너희들은 보잘 것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립스틱 색깔을 정해주고 친절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수당도 주지 않고 야근을 시킨다. ‘바보처럼’ 그걸 왜 하느냐고 똘똘 뭉쳐 따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제 몫을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본다. 추가 수당도 없이 노동력을 부려 먹으면서도 수고하란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하물며 우리는 사람인데!

‘하찮은’ 캐셔의 사과가 못마땅하다며 아들과 며느리까지 대동하고 나선 마트 밖 ‘진짜 여사님’은 해미에게 서슴없이 “무릎 꿇으라”고 말한다. 아니, 명령한다. 제대로 된 사과는 ‘죄송하다는 말+아래로 내리깐 시선+무릎 꿇음’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트에서 일하지 않는 자의 세계는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와 다르다. 마트 밖 사람들은 “저 사람들은 친절해야 돼, 그게 저 사람들 직업이니까.”라는 사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친절은 직업을 수식하는 아름다운 표현일 수는 있어도 직업이 될 수는 없다. 친절한 캐셔, 친절한 청소부는 가능하지만 친절이 돈과 연결돼 ‘감정 자본주의 코드’와 만나는 일은 얼마나 불편한가.
 


▲ 영화 '카트' 예고편 캡처

약자여서, 비정규직이어서, 여성이어서, 그들은 다치고 상처받는다. ‘회사가 잘 되면 나도 잘되는 줄 알았던’ 순진한 소시민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행동으로 보이기로 결정한다. 자, 파업이다! 분하고 원통한 우리의 감정을 더 이상은 누를 수 없다. 부끄러운 엄마가 되고 싶지 않고, 부끄러운 아내, 부끄러운 자식이 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다. 우리에게 살 권리를 보장하라!

‘감정노동-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를 펴낸 앨리 러셀 혹실드는 “표현에서 소외되는 것, 감정에서 소외되는 것, 그리고 감정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에서 소외되는 것은 단순히 몇 사람이 경험하는 산업 재해 정도가 아니다. 이것은 영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서 문화 속에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외를 당연하게 여겨야 할까? 너도 나도 조금씩 소외되고 있으니 서로를 위로해야줘야 할까? 어떻게?

혹실드는 이어 “인간 감정의 상업화를 알고 있는 우리는 모두 증인이자 소비자이자 비평가로서 상업화된 감정을 깨닫고 깎아내리는 데 정통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증인이자 소비자이자 비평가인 우리,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한다. 뭉쳐야 산다.

영화 '카트'는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다. 영화 속 ‘더 마트’ 직원들은 안녕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 밖에 있는 우리에게 안녕하냐고 따듯한 연대의 눈길을 보낸다. 비정규직을 다룬 노동영화지만 굳이 노동영화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정규직, 노조, 투쟁이 중심이지만 ‘카트’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극중 선희 역을 맡은 염정아는 말한다. "무심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거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괴롭히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상처를 줬을 수도 있겠죠. 사람은 언제나 다 다른 입장일 수 있잖아요. 사람을 대할 때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주변사람에게 더 잘해야겠고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장을 점거한 해고자들은 밝고 경쾌하다. 어둠 속에서 자기 고백도 하고,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친절만을 강조하는 회사 분위기 속에서 거짓으로 내보였던 미소가 아닌, 잇몸이 드러나고 광대뼈가 튀어나오는 웃음을 함께 나눈다. “너 웃으니까 너무 못생겼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잘려서 여기 왔다며?” 하하, 이제 괜찮아요, 함께 있으니까요.

이랜드 홈에버 사태는 2008년 11월 13일 파업이 종결되었다.(영화는 지난 11월 13일 개봉했고, 그날은 전태일 열사 44주기이기도 했다.) 해고자 28명 중 12명의 노조간부가 퇴사하고, 16명은 복직하는 조건이었다. 노조간부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영화는 불법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싸움일 뿐 아니라, 대기업의 이윤만을 보호해 주는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 대한 노동자들의 인간 선언, 선전 포고를 담고 있다.

‘카트’는 정치권에서도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주 비대위원장 등 의원 20여명이 단체로 관람했고,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상영회를 열었다. 여야 모두 600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정치쇼'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측은 한 언론사를 통해 ‘카트’를 봐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민주노총은 “영화적 완성도로 ‘카트’를 평하고 싶지 않다”며 “비록 완성도 면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투쟁하는 우리 노동자에게 ‘카트’는 분명 최고의 영화”라며 이 영화를 지지했다.

서울에서는 여러 단체들이 영화 '카트' 함께 보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에서도 여기저기서 '카트'를 같이 보자는 목소리가 들린다. 본지에서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기획연재를 진행하면서 인천 홈플러스 감정노동자들의 아픔을 전한 바 있기에 '카트'의 개봉이 새삼 반갑다. 

영화 '카트'는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감정)노동자들의 간절한 바람을 전한다. 돈으로 타인의 인격까지 살 수 있다는 생각, 돈만 내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빗나간 ‘소비자 권리 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없이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상업영화인 '카트'를 봐야 할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