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 골목의 옛스러운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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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 골목의 옛스러운 저택
  • 디비딥 장윤석 블로거
  • 승인 2014.11.20 22: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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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딥의 인천이야기] 5. 유항렬 주택

인천의 중구는 행정구역이 참 모호한 것이 길을 건너면 송학동, 내동, 신포동 등으로 바뀌어 버리니 실제로 과연 내가 걷고 있는 골목이 어느 동인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이제는 인천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도라도 하나 사서 보며 다녀야 할 판이다. 내게 내동은 신포동에서 동인천역 쪽으로 가는 지름길로 골목을 누비던 기억이 많다. 개똥이 어지러운 골목을 요리조리 지나며 약속장소인 동인천으로 가는 재미.

그 지름길이 바로 내동의 성공회교회 옆이었는데, 그렇게 어릴 적 20년 이상을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옛스러움이 묻어나는 주택 하나를 눈 여겨 보고 있다가 사진에 담아보았다.

인천시 중구 내동 144번지에 위치한 주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도선사로 알려진 유항렬이 지은 집이다. 도선사 유항렬은 우리나라 해운업계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일본의 나고야중학교를 거쳐 1925년 동경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우선주식회사에 취업하여 승선 경력을 쌓고 1928년에 갑종선장면허장을 받고 선장이 되었다. 1937년 한국인 최초로 도선사가 되었는데, 응시원서의 수리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1961년까지 25년간 인천항에서 도선사 생활을 하다가 퇴직하였다. 하지만 정년퇴임 후 도선사 정년이 연장되어 다시 도선사 생활을 하기 위해 도선사 시험에 응시했으나 과거 유항렬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시험을 주관하면서 이들의 횡포로 낙방하였다가 1967년에 재시험에 합격하였다.

이런 굴욕을 겪은 그는 도선사조합에 들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다 1971년 12월 7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84년 후배 도선사들이 인천항 갑문에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한때 빈 공간으로 있었다가 최근에 유항렬 님의 자손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멋진 주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문 위에 위치한 베란다에서 유항렬 님이 망원경으로 인천항에 들어오는 배를 보았다고 하니 당시에는 전망이 꽤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붉은 벽돌로 곱게 올라선 그 저택을 보면 당시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빠져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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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자 2014-11-21 12:26:20
저도 인천에서 20대를 보내면서 자유공원 오르 내릴때 보았던 집이네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여.

문경숙 2014-11-21 11:36:56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이 건물의 보존문제를 놓고 이야기 대두 될 때 네셔널 트러스트에서 현장 방문나왔을 때 해반문화사랑회 문화재 지킴이로서 이 곳을 안내한 적이 있습니다.
내부는 전형적인 일본가옥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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