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아래 묻힌 한낮의 비명 소리 - 1990년 송림동 매몰 참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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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아래 묻힌 한낮의 비명 소리 - 1990년 송림동 매몰 참사 현장
  •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 승인 2014.12.0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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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시각] 협약 '동구 발품' 연재 4
1990년 송림동 매몰 참사 현장의 현재 모습

23명이 죽었다. 큰 사고다. 현장을 취재한 한 일간신문의 기자는, ‘외할머니에게 놀러왔던 손자, 가게 일을 하다 돌아온 주부, 폭우로 출근 못한 가장 등 30여 명이 눈 깜짝할 사이 흙더미에 매몰됐다’고 썼다. 행간에 담은 기자의 안타까움이 얼핏 스쳐 지난다.

1990년 9월 11일 오후 12시 40분 무렵이었다. 박문여자고등학교와 선인중학교 사이 야산의 축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12채의 집이 흙더미에 파묻혔다. 모두 21가구가 살던 집들이었다. 사고가 나자 포크레인을 동원한 170여 명의 구조대가 투입돼 발굴 작업을 시작, 두 시간 만에 15구의 사체를 찾아냈다. 외할머니 집에 놀러왔다 변을 당한 다섯 살, 일곱 살짜리 남매도 그 안에 있었다. 스물 세 살의 송 모씨는 남편과 아이 둘을 흙 속에 남겨둔 채 홀로 구조됐다. 참사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다. 순식간에 천장이 무너지더니 흙더미가 방 안으로 밀려들고, 울부짖는 아이들을 급하게 부둥켜안았다는 게 송씨가 기억하는 당시의 순간이다. 이튿날까지 17구의 사체가 확인됐고, 그 다음날 6구가 더 발견됐다.

비극의 징조는 아카시아나무였다. 축대 위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들이 비만 오면 점차 기울어져 토사가 마을로 흘러내리곤 했다. 축대는 10여 년 전 선인학원 측이 운동장 등 부지 조성을 위해 절개하고 쌓은 것이다. 불안감에 휩싸였던 주민들이 여러 차례 나무의 밑둥을 잘라내고 수해에 대비한 안전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선인학원과 동구청에 요구했지만 번번이 묵살을 당했다고 한다. 관계기관에서는 단 한차례의 안전 점검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주민들이 스스로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옹벽을 쌓기도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여기서 일어날 줄 몰랐다는 게 사고 후 인천시 관계자가 내뱉은 변명이다. ‘1백억 원을 들여서 옹벽을 쌓고 택지를 조성, 아파트를 짓겠다.’ 사고 현장을 찾은 여당 고위층들에게 내놓은 인천시의 계획이다. 이미 아이들을 포함한 스물 세 명의 주민들이 흙더미에 깔린 후였다.

9월 11일은 3일 째 내린 비가 65년 만에 최대 강우량을 기록한 날이었다. 최고 500mm,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처음 겪는 폭우라고 떠들썩했다. 한강둑이 무너져 고양군을 덮쳤고, 산곡1동에서도 흙더미가 집을 덮쳐 두 살배기 아이가 흙에 묻혀 숨졌다. 김포에서도 용인에서도 집 뒷산이 무너져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지던 빗줄기는 결국 송림동의 한 마을을 사라지게 했다. 

당시 사고 소식을 전하는 <동아일보> 기사
 
송림동 매몰 참사는 우연치 않게 소강상태에 있던 선인학원 문제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선인학원시립화성공사>와 <인천대학교 30년사>에 따르면, 선인학원 측이 보상금 지급을 지연시키자 이에 분노한 유족들이 11월 1일, 설립자 백인엽의 자택을 습격해 농성을 진행하였고 다음날 보상금이 전액 지급되었다. 이 일로 인해 백인엽은 다시 한 번 선인학원 내에서 실권자로서의 권한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골이 깊어진 학내 갈등은 결국 이듬해 ‘범선인학원 정상화추진위원회’의 결성과 1992년 ‘선인학원 사태를 우려하는 인천 시민의 모임’(시민의 모임) 발족으로 이어졌다. ‘시민의 모임’은 발족 직후 유족들에 대한 보상금이 선인학원 산하 고등학교의 교비에서 지출된 사실을 적발하고 관계자들을 인천지검에 고발하기도 하였다.

송림동 매몰 참사 현장에는 지금은 체육공원이 조성돼 있다. 당시의 참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저 쪽 나무를 심어놓은 곳’이라고 아랫동네 주민들이 옛일을 떠올릴 뿐이다. 인적도 드문 공원 위에 가만히 서 있으니 아비규환의 생지옥에서 몸부림치던 달동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땅 밑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하다.
 

1990년 송림동 매몰 참사 현장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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