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맥베스>, 아름다운 무협 액션극으로 재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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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맥베스>, 아름다운 무협 액션극으로 재탄생하다
  • 이재은 기자
  • 승인 2014.12.07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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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의 인천문화 관람기] 4-연극 <칼로막베스>

▲ <칼로막베스> 한 장면.(사진 출처=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가 스타일리쉬한 무협 액션극으로 인천을 찾았다. 스타연출가 고선웅이 연출한(극단 마방진) <칼로막베스>가 스테이지49 연극선집 네 번째 작품으로 지난 주말(5,6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됐다.

고전 <맥베스>는 정치적 욕망 때문에 인간의 양심과 영혼을 저버리는 과정에서 죄의식을 느끼며 파멸하는 인간의 절망을 그렸다. 고선웅이 각색한 <칼로막베스>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말 그대로 ‘칼로’ ‘막’ ‘벤다’는 의미다.
 

먼 미래. 범죄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이 끊이지 않는 현실을 보다 못한 정부는 거대한 수용소 세렝게티베이를 짓는다. 불결한 혈통의 자연도태를 원했던 정부는 수용소에 있는 자들에게 칼 한 자루씩을 쥐어주며, 죽고 죽이는 피의 난장판 속에서 자멸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 막베스는 맹인술사로부터 보스가 될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그 예언을 들은 막베스의 부인은 막베스를 부추겨 보스인 당컨을 죽인다. 권력찬탈을 향해 돌이킬 수 없는 칼부림으로 막베스는 맥다프의 아내와 자식마저 죽이며 더욱 폭정한다.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던 막베스의 부인이 자살하고 막베스는 맥다프의 손에 제거된다. 총을 든 새로운 죄수들이 몰려와 모두를 쏘아 죽이는 바야흐로 막쏴스의 시대가 열리는데….(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홈페이지 참조)

‘미래’로 시간 이동을 하고 수용소를 끌어들였을 뿐,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그대로 반영했다. 배우들은 현대어를 쓰지만 우리가 흔히 쓰는 구어체가 아닌 고전의 극양식이 그대로 살아있는 언어를 구사한다. 셰익스피어의 언어 미학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에 다소 어리둥절할 관객을 배려해 공연 시작 전 “말이 빨라서 못 알아듣는 대사가 있더라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는 귀여운 안내 멘트가 나오기도 했다.

암살과 살인, 복수 속에서 한탄과 한숨이 이어지는데도 배우들의 언어와 몸짓에는 유머가 가득했다. 관객들은 톡톡 튀는 대사에 종종 웃음을 터트렸지만 전체 극을 지배하는 비극성과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철학적 물음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활자로 상상하는 것이 아닌 눈앞에서 펼쳐지는 막베스의 사정없는 칼부림은 이 시대의 극대화된 폭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무대는 깨끗했다. 모눈종이처럼 직사각형이 그려진 바닥에 피라미드 구조의 높은 사다리 하나, 뜀틀처럼 넘을 수도 있고 의자처럼 앉을 수도 있는 낮은 계단사다리가 전부였다. 열다섯 명의 배우들은 소품이나 장치보다는 막대기로 대신한 칼과 몇 벌의 의상, 몇 번의 분장으로 두 시간 가까이 극을 이끌어갔다. 바닥의 직사각형은 배우들의 동선을 위한 것, 높고 낮은 사다리는 공간이나 시간의 이동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상승’과 ‘권력’이 담긴 욕망의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무대 뒤에 아무런 쓰임 없이 서 있던 장대 사다리가 있었다. 막베스와 그의 아내가 왕을 암살하기로 모의할 즈음 스윽 올라왔다가 극 후반, 막베스의 처형 후 스르르 내려갔다. 따로 조명을 비춘 것도 아니고 배우 중 누군가가 사다리에 주목한 것도 아니므로 그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막베스의 것이었다. 야망에 눈이 멀어 배신과 살인으로 하늘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 했던 한 인간의 이기심. 이후 스크린에는 수십 개의 사다리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활활 불에 타 사라졌다.
 

▲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칼로막베스’의 무대.(사진=이재은)
 

다른 세 작품의 비극과 <맥베스>의 비극은 다르다. 맥베스는 의도적인 살인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다. <맥베스>(민음사)의 작품해설에서 번역가 최종철은 “극이 끝났을 때 우리 마음에 남는 것은 거듭되는 살인이 아니라, 악행을 쌓아 올려 그 무게로 양심의 힘을 누르려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맥베스의 고귀한 인간성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맥베스가 모든 것을 잃은 다음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인을 잃었을 때 토로하는 다음의 대사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내일과 또 내일과 그리고 또 내일은
이렇게 옹졸한 걸음으로 하루, 하루,
기록된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가고,
우리 모두 지난날은 바보들의 죽음 향한
길을 밝혀주었다.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그림자가 걷는 것,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리는 것,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건데 소음, 광기 가득하나
의미는 전혀 없다.(5막 5장 19~28행)


맥베스의 이 고백은 인생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강력한 염원이다.

올해는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많은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450주년’이라는 숫자는 특별하지 않다. 451주년, 452주년에도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개성에 따라 변형해 무대에 올리며 두고두고 경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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