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구와 가짜 스마트 관계 - 최선영 동화 [조금도 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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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욕구와 가짜 스마트 관계 - 최선영 동화 [조금도 외롭지 않아]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4.12.17 22: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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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7

그림 = 최운석 (출처 <조선일보>)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면 외로움으로 마음에 병이 들고 심해지면 히스테리(성냄)를 일으키게 됩니다. 폭력적인 언행을 하거나 극단적으로 자해 행위를 벌이는 게 다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봐야 합니다. 인정욕구가 결핍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칭찬과 인정(認定)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칭찬에 목마른 그 자체가 허약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진실한 소통만이 이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참다운 관계를 위해서는 인정욕구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성인 군자도 아닌데 어떻게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동기의 뽐내려는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 때를 활동적자아가 형성되는 때라고 하는데 칭찬을 많이 해서 동기 부여를 해주어야 할 때입니다. 이 때에는 뭐든 잘 하는 게 생기면 자기효능감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자존감은 또래 아이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으로 이 과정을 통해 점차 사회적자아가 싹트게 됩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만큼 다른 아이들도 칭찬에 목말라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일어나는 아이들 사이의 다툼은 대부분 인정욕구의 충돌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월감을 가지면 남의 시기를 받게 되고 참다운 관계를 위해서는 칭찬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칭찬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하는 때입니다. 잘못 하면 가짜 관계 허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소설 [조금도 외롭지 않아]는 스마트폰 온라인 관계망에 빠져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이야기로 이 문제를 참 잘 그려냈습니다.
 
나는 얼리어댑터입니다. 얼리어댑터(Early adopter)는 '앞서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우쭐해집니다. 나는 '여우폰'으로 웬만한 일은 다 합니다. 그런데 주빈이라는 애는 '트위터'가 뭔지도 모릅니다. 좀 덜떨어진 애입니다. 나는 온라인 친구가 300명이나 되고 블로그 방문자가 하루에 200명도 넘습니다. 그런데 주빈이는 닌텐도도 없고 핸드폰도 없습니다. '여우폰'이 뭔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런 애랑 도저히 어울릴 수 없습니다. 여우폰으로 기르고 있는 강아지랑 노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주빈이 같은 애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주빈이는 좀 모자라는지 내가 짜증을 내어도 화내는 법이 없습니다. 참 이상한 놈입니다. 게 주위에는 늘 애들이 북적대고 뭐가 좋은지 시시덕거립니다. 참 한심해 보입니다. 오프라인 애들은 좀 이상합니다. 난 온라인이 훨씬 더 좋습니다.
 
SNS가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온리인으로 사회 관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를 말하는데 그냥 싸이월드,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걸 SNS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뭐가 문제일까요? 교육적으로 스마트폰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으로 매일 불편한 일이 발생하고 스마트폰 때문에 어린 애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심각한 일임이 분명합니다. 소셜네트워크가 수직적 정보 유통망을 대신하는 수평적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보는데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이용과 네트워킹이 이런 긍정적인 용도에 부합되는지는 의문스러운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폐해가 심각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마샬 멕루한이라는 미디어 학자가 미디어(매체)가 곧 메세지(의미)라고 갈파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언론 매체의 혁신이 사회구조적 변혁의 기폭제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인데 이 시대의 청소년 문화로 자리잡아 가는 스마트폰 문화는 역사 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문화 지체 현상으로 보이기만 하니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지식인들이 수평적 소통 매체의 혁신적 발전이 정치공학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교육적으로나 사회심리학적으로 이 문제가 인성(人性)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 문제가 벌써 심각한 골칫덩어리가 되어 있습니다. '대면관계 기피 현상'에 대해 몇몇 논평이 있긴 했지만 대안적 문화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가 전무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조금도 외롭지 않아]는 이 문제에 대해 세대 간에 서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게 꼭 필요하다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40대와 10대가 스마트폰을 어떻게 달리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도 의미가 있고, 10대의 스마트폰 문화가 공동체적 소통에 기여하는 경향성이 있기나 한지 분석해 봐야 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개인의 원자적 고립를 부추기는 작용을 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인 게 분명합니다. 이런 문화의 세례를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사회가 어떤 모습을 가질지 걱정을 아니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문화가 곧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을 좌우하니 말입니다.
 
<작품 읽기>
 
수업 시간이 끝나면 잽싸게 여우폰을 꺼낸다. 여우폰 안에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있다. 이름은 쭈니라고 지어 주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혀를 쭉 내밀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다가가서 머리를 쓱쓱 문질러 주니, 등을 바닥에 대고 벌렁 눕는다. 진짜 강아지라면 꼭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쉬는 시간은 정말 짧다. 쭈니와 잠깐 놀다 보면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다. 어쩔 땐 오줌이 마려운 것도 참는다.

여우폰은 안 되는 게 없다. 인터넷, 게임, 영화도 볼 수 있는 최신식 핸드폰이자,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와, 이준모! 그게 여우폰이라는 거야? 좀 보여 주라."

"안 돼, 나 지금 트위터 하고 있단 말이야."

"트위터? 그게 뭐야?"

"넌, 그것도 모르냐!"

나도 모르게 주빈이에게 짜증을 낸다. 이 녀석하고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녀석은 남들 다 있는 닌텐도도 하나 없다. 닌텐도는커녕 휴대폰도 없다.

주빈이는 창피를 줘도 화를 내지 않는다. 머리만 긁적이며 웃고 있을 뿐이다.

'쟤는 기분도 안 나쁜가? 괜히 미안하게시리. 이래서 오프라인 애들은 신경 쓰인다니까.'

난 오프라인으로는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 건 귀찮은 일이다. 오프라인 친구들은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내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들 기분만 박박 우겨댄다. 먹고 싶지 않은 떡꼬치도 먹어 줘야 되고, 하기 싫은 축구도 해야 된다. 또 삐친 것 같으면 기분도 맞춰야 된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나의 베프 여우폰만 있으면 된다. 이젠 친구를 사귀어도 놀 시간도 없다. 놀기는커녕 말할 시간도 없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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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학 2014-12-27 10:31:48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에서 형성되는 소셜네트워크보다 직접 친구들과 대면하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 100%입니다. 그런데 IT업계에서는 종이책대신 전자교과서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아이들이 더욱더 전자통신기기에 의존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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