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꼭 잡고 함께 가는 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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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꼭 잡고 함께 가는 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 김정욱 영화공간주안 관장, 프로그래머
  • 승인 2014.12.19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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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의 영화이야기] 5

2014년 한국영화계는 이변의 연속이다. <명량>이 1,760만 명을 넘는 관객 동원으로 2위 <도둑들>과의 격차를 400만 명 이상 내며 한국영화역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을 기록했고, 12월 18일 현재, 다큐멘터리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15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이 다큐멘터리의 경우 고령 노부부의 소박한 시골일상을 다룬, 볼품 없는 소재의 저예산 영화라는 점에서 <명량>의 흥행과 비교해도 그 크기가 다르지 않다.

89세의 강계열 할머니와 98세의 조병만 할아버지는 76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고운 커플 한복을 차려 입고 두 손 꼭 붙잡고 걷는 이 부부는, 그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도 항상 신혼부부처럼 살아왔다. 봄에는 서로의 머리에 꽃을 꽂아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여름엔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물장난을 쳤다. 가을에는 쓸던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매일매일이 신혼여행이었다. 12명의 자식 중 여섯을 어린 나이에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여섯은 장성해서 도시로 떠나 보내고, 두 부부는 서로만을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도 기침이 더욱 심해지고 점점 기력이 약해져 간다. 할아버지는 "석 달만 함께 하다 같이 가자!"는 할머니의 간절한 바램도, 좀 더 살아계셨으면 하는 자식들의 때늦은 후회도 뒤로 하고, 할머니는 이제 머지 않아 다가올 이별을 준비한다.

영화에 평을 할 수가 없다. 아니 하지 않는 게 옳다. 만듦새가 어떻고, 촬영이 어떻고, 편집이 어떻고, 사운드가 어떻고의 직업정신은 이 영화엔 어울리지도 해당되지도 않는다. 항상 사랑하며 두 손 꼭 붙잡고 평생을 살아온 두 노부부의 애정이 너무나 애틋하고, 그들과 같이 1년 4개월을 함께 하며 작업한 감독의 진정성과 진중함에 감탄할 뿐이다. 영화를 보며 내내 이 생각만 들었다.

"나도 저 분들처럼 살아가면서, 저 분들처럼 나이 들고 싶다!"

어렸을 적 내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부모님 대신 나를 키워주는 '친구'였고, 조금 커서는 명절에나 인사하는 '불편'한 가족이었고, 다 커서는 문득문득 보고 싶은, 부모님의 '내일'이며 나의 '모레'가 되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내가 잊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고, 부모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영화가 내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을 한 편의 아주 작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이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있다. 소소한 삶의 진실된 이야기를 찾아보는 관객이 많은 한국엔 아직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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