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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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4.12.24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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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보내는 한 신학도 출신 기자의 제언

신약성서 [누가복음]의 2장 부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상황이 비교적 잘 묘사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크리스마스군요. [인천in]의 독자들이 크리스마스 이브 혹은 당일을 보내며 이 글을 읽으신다면 그 시간 저는 아마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마 이틀 내내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할 것 같네요.
 
사실 저는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을 교회에서 보내는 것이 무척 익숙합니다. 저는 현재 지역 언론의 기자를 하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함엔 강도 높은 욕설도 날리고 연속적으로 싸움과 투쟁의 삶을 살고 있지만, 대학교에서는 사실 전혀 다른 공부를 했습니다. 저와 대학시절을 같이 보냈던 친구들 상당수는 현재 개척교회들을 이끄는 ‘목사님’이 되어 있다면 어떤 공부를 했는지 감이 잡히시겠죠. 아무튼 저는 이 시기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모아진 구호품과 성금 전달을 하고, 성탄절 예배에 선보이게 될 아이들의 장기자랑 등도 준비합니다. 일부 교회에서 밤을 보내려는 청소년들이 있어 그들과 어울려 기도도 하고, 많이 먹을 나이의 그들을 위해 음식과 다과 등도 준비하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도 나눕니다. 성장이 활발한 친구들이라 20년 자취 경력을 활용해 뭘 좀 해먹이고 싶어서 올해는 제 돈도 조금 보태 해물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오랜만에 하려니 요리가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교회에 다니는 분이 아니시라면 “왜 전야(이브)일까지 그렇게 중요히 여기는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이는 초대 크리스트교에서 하루를 전날의 일몰로부터 다음 날 일몰까지 해당시켰던, 고대의 날짜 관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대 날짜 계산법으로 하면 전달 해가 지기 시작해서 당일날 해 지기 전까지 하루로 본 것인데, 현대 사회에서도 성탄절 다음날이 평일이니 저녁부터는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 이것이 그리 다르다 보긴 힘들 것 같네요. 참고로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확한 탄생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로마 교회에서 절기상 이 날짜를 지키기 시작한 것이 시초가 되었는데 실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시간은 알려져 있지 않죠.
 
사실 크리스마스의 이미지 하면 우리는 트리, 산타클로스, 선물 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 이미지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실례로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산타클로스’는 사실 평생을 남몰래 선행을 베풀며 살았던 대주교 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데, 지금의 빨간 색의 옷과 흰 수염의 이미지는 사실 1930년대 미국의 코카 콜라 사에서 만들어낸 것으로 굉장히 상업적인 결과물입니다. 빨간색과 흰색은 실제 코카 콜라의 중요한 로고 색깔인데, 교묘히 이를 맞춘 거죠. 상업적인 결과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런 분위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장소에서 탄생하셨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잇습니다. 실제 성경 신약성서의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에 해당하는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서부터 승천까지의 생애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구간 안에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워 있는 모습은 지금과 같이 트리에 불을 켜고 축배를 즐기는 그런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는 거죠. 또다른 신약성경 복음서에 해당하는 요한복음서의 내용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에서 유추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세상의 이치 속에서 태어나게 했던 그 독생자 메시아는, 당시 가장 하찮은 자리에서 가장 보잘 것 없게 태어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해하는 군중들에게 복수하거나 벌을 가하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성을 발휘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실제 예수의 생애 중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나 현대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병고침 등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다 중요시해야 하는 부분은 그분께서 항상 낮은 자의 편에서 그들의 안위를 살피시려 했다는 것, 지극히 평범한 지위의 사람들을 제자로 거두신 것,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도 그들의 위에 오르지 말라 항상 야단치셨던 것 등에 주목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증명되듯 출신과 혈통은 그야말로 ‘아웃 오브 안중’에 있었고 사람 자체를 가장 좋아하고 그들과 어울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분이죠.
 
특히 생애 거의 마지막, 당시 처형 도구였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결정적으로 ‘낮은 자로서의 그분’을 증명하는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가질 수 있는 분이, 그를 힐난하는 세력으로 인해 사형 집행을 하는 로마 병정에게 자신을 매달았을 때, 보통의 사람 같으면 전지전능한 오라의 힘을 발휘해 소위 ‘다 뒤집어놨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생전 기적의 힘은 항상 병들고 없는 자를 위해서만 사용하셨고 자신을 위한 것으로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으셨죠. 자신을 결박하는 병정들과 욕을 하며 침을 뱉는 군중들에게 희생이나 피해를 주면서까지 존재를 입증하고 과시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죽으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요즘 세상 같은 ‘루저’와 같은 입장에서 그렇게 힘없이 돌아가시는 길을 택했습니다.
 
성탄의 의미는 그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간단한 의미가 아닙니다. 가진 것 없고 낮은 자, 병들고 힘없는 자들의 편에서 항상 그들을 걱정하시면서 세상에 단 한 줌의 폐조차 끼치지 않은 삶을 기억하고 신도들 각자의 삶에 최대한 반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상기하자는 의미가 더 큰 것입니다. 근래 한 구청에서 억대의 돈을 들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매달고, 번쩍번쩍하는 장식들로 윗동네서 세를 과시하는 대형 교회 등 일련의 행위들이 대중들의 지탄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일부 그릇된 목회자들의 판단으로 화려하고 과한 장식을 성탄의 가장 앞머리에 내세우는 것, 그리고 상업적 마케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선봉에 부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및 삶과는 반하는 일이거든요.
 
글쎄요. 그렇다고 이미 세속적인 의미로 흘러가는 크리스마스를,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이 흥청망청 즐기는 것 자체를 저 개인이 애써 뭐라 하거나 욕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엄연히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행위의 자유를 가진 나라인 만큼 크리스마스엔 “반드시 경건하게 보내 달라”는 메시지가 혹 ‘강요’로 들릴까 하는 마음이 들어 그 역시 애써 강조하진 않으려 합니다. 뭐, 한 구청에서 불법적으로 예산을 전용해 세운 트리 앞에서 “저건 불법이니 제발 거기서 사진 좀 찍지 마세요”라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그것 역시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일 테니까요. 다만, 그런 상업화된 분위기 속에서도 한 번은, 정말 한 번은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웃을 돌아봐 주심은 어떠실까요. 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평생을 그렇게 낮은 자, 없는 자의 곁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함께 있어 주었던 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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