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을 뛰어넘는 진실한 우정 - 박선희 장편소설 [파랑 차타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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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을 뛰어넘는 진실한 우정 - 박선희 장편소설 [파랑 차타가 달려간다]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4.12.24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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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8.

문학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응시할 수 있게 만들고 타자에 대한 내밀한 관찰이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청소년소설의 교육적 의미는 참으로 크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내면의 변화를 겪으며 혼란스러워 하는 청소년의 속을 들여다보는 데 청소년소설만큼 유효한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내면을 객관화하기 위해, 어른들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청소년소설을 꼭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작품은 시험에도 안 나오고 이런 소설 읽다가 혹시 헛바람이나 들지 않을까 기피하기 일쑤입니다. 성장기의 격정과 혼란을 무슨 질병처럼 혐오하면서 학생들을 학습 노동에 몰아넣는 세태가 참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 세태가 청년의 순정과 패기를 말라죽게 만들어 나중에 그들이 일구어갈 사회가 어떻게 메마르게 될지 상상하기조차 두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 소설을 창작하는 작가는 어두운 이 시대에 촛불을 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랑 치타가 달려간다]의 작가 박선희 님에게 우선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좀 단순합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어른들의 계층 양극화에 노출되고 결국 아프게 결별하였다가 나중에 다시 우연히 만나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문제아 강호는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합니다. 소설 속에서 강호는 새엄마를 '세 번째 여자'라고 지칭합니다. 새엄마들은 아버지의 무능과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기를 거듭합니다. 강호는 가출하여 주유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학교에서는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는 소위 잘 ‘나가는 학생’입니다. 도윤이는 엄마가 짜놓은 공부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옴짝달싹 못하는 모범생입니다. 외고에 합격했다가 적응을 못 하고 일반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강호와 우연히 한 반이 됩니다. 둘 사이에는 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에는 단짝이었는데 집안 환경이 너무 다르다 보니 학년이 올라가면서 도윤 엄마가 둘의 교우관계를 용납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둘은 원수지간처럼 되어버리지요.

가정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별 재미를 찾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학교가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품는 곳이 아니라는 건 초딩들도 다 압니다. 오히려 상처를 덧내는 곳이지요.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개천에서는 지렁이도 못 산다'는 비아냥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뼈아픈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소설 속의 강호는 아주 형편없는 환경 속에 팽개쳐져 있는 아이입니다. 그런데도 비현실적이다 싶을 정도로 비극적인 현실을 잘 견디어냅니다. 주유소에서 ‘총을 쏘아’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고 폭주에도 끼지만 대부분의 대책 없는 폭주족들의 치기(폼잡기)를 조롱할 정도로 정신이 바로 박혀있는 아이입니다. 소설은 강호가 이렇게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은 불쌍한 여동생에 대한 책임의식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희망의 싹이 독자들을 안심시키기는 하지만 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현실 속의 아이들은 이보다 더 끔찍하게 파괴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경험한 현실은 그렇습니다.

도윤의 삶도 좀 비현실적인 면이 있습니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라 외고에까지 입학한 학생이 찌질이 강호와의 옛 우정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그와 다시 친해지기 위해 찔찔 짜면서 자존심을 구긴다는 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강호와 도윤과 같은 관계가 맺어질 수 있다면 우리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고를 입학한 수재와 주유소에서 총 쏘는 양아치가 친구가 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거든요. 현실은 이런 상상을 불허하지만 소설의 상상 세계는 참 아름답습니다. 좀체로 볼 수 없는 일이어서 아름다운 것인가요. 이 작품을 읽는 학생들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할까요. '아! 멋있는 우정이다.' 하고 감동할까요. 비평가가 보기에는 좀 현실성이 없다 하겠지만 교육자로서는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이 실재로 가능해야 우리 삶이 비참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을 이어주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은 젊은 총각 선생님입니다. 학교는 끊임없이 우리를 절망에 빠트리는데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찾을 수 있는 곳도 학교입니다. 소설은 그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교육자에게는 위안이 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선생님이 더 많아지면 학교는 좀더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지만 '나는 어떤 부류일까?'라는 질문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시처럼 뾰족하게 우리 마음을 찌르는 말이 바로 '부류'라는 말입니다. 도윤과 강호가 아프게 결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게 바로 이 '부류'라는 비인간적 나눔이었던 거거든요. 나는 어떤 부류일까요? 아이들을 절망에 빠트리는 괴물일까요? 그나마 숨이라도 쉴 수 있도록 틈새 노릇이나마 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어떤 선생일까요?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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