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육컬럼] 양극화와 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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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육컬럼] 양극화와 강제
  • 최태육 목사
  • 승인 2015.01.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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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선고에 나타난 정부의 의도
YTN뉴스 캡쳐화면
1946년 대구10월사건 이후 배민수(裵敏洙, 1897~1968) 목사가 자신을 찾아 온 후배 최문식 목사에게 “너는 공산주의의 일원이냐?”라고 물었다. 최문식은 고개를 흔들며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미군이나 이승만 박사에게는 동의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 미군정청 직원이었던 배민수는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외에는 없다는 경직된 이원론자였다.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는 두 가지의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개디스(John Lewis Gaddis)는 마치 거대한 자석이 생겨나 대부분의 국가들, 심지어는 그 국가들 내에서의 집단들이나 개인들까지도 워싱턴이나 모스크바에서 발생되는 역장(力場)을 따라 정렬되었다고 했다. 상호 적대를 기조로 하는 경직된 이원론이 세계, 국가, 국가 내의 집단과 개인을 양분하였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1949년에 발행된 『일민주의개술(一民主義槪述)』에서 소련 공산당의 거짓 선전에 빠져서 남의 부속국이나 노예가 되거나 또는 공산당과 싸워 이겨 민주국가들이 자유 복리를 누리게 되거나 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하여야만 될 것이며 이외에 다른 길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의도는 사회를 양분함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형성하는 데 있었다. 즉 국민들로 하여금 둘 중에 하나를 택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어 공산주의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공산주의는 물론 이승만·미군정에도 동조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강제하였다.

그의 정치적 의도는 김구와 같은 민족주의자를 배제·제거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1948년 4월 1일, 이승만은 “남북회담 문제는 세계에서 소련정책을 아는 사람은 다 시간 연장으로 공산화 하자는 계획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막아 보려는 김구의 남북회담을 5·10총선거를 연장시키기 위한 책략으로 판단하고, 이를 소련의 공산화 정책에 동조하는 행위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의 비판은 김구의 배제·제거로 이어졌다. 단선·단정은 우리편, 이에 찬성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세력은 적이라는 이승만의 경직된 이원론은 해방정국의 정치, 군사, 경제, 문화, 종교를 관통하는 진영논리의 핵심이었다.

해방정국은 세계사적으로 보나, 한국사적으로 보나 경직된 이원론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두 가지 삶의 방식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강제의 역사였다. 맷돌이 돌면서 중간에 있는 유연하고 약한 것들을 갈아 없애는 양극화의 시기였다. 개디스의 말처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진영을 넘어 사고하고 행동했던 수많은 개인과 집단이 강제를 당하고 배제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남과 북, 좌익과 우익이라는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다.

반성이 없는 역사는 반복된다.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집권당은 통진당 해산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거나 통진당에 반대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사상적으로 강제하고자 했다. 따라서 객관적 사실과 그에 따른 수사와 재판은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의도는 생각의 자유를 강제함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을 형성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말이다.

통진당 해산 선고는 새누리당과 정부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편승한 헌재의 얄팍한 행동도 본질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이 통진당 부정, 혹은 옹호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자신의 기득권과 생존을 위해 사회를 끊임없이 양극화한다는 데 있다. 고리가 약한 특정 부류의 개인과 집단을 타자화 하고 이를 배제·제거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이익과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국가권력과 이에 익숙한 문화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통진당을 붕괴시킴으로 통진당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이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도 강제하는 것이다. 유연하고 부드럽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을 강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의 정부는 여유가 없다. 가장 비정치적 사안인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여유가 없는 권력은 통제를 강화한다. 사건 직후 바로 언론을 통제하고, 세월호 수사 시스템을 강제했다. 세월호 조사위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폐기된 상황에서 수사가 아닌 조사로 국가권력과 대면하게 되었다. 여유가 없을수록 국가권력은 끊임없이 사회를 양극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사회를 양극화 하여 적을 만들고, 만들어진 적을 배제·제거함으로 자신의 기득권은 물론 정치적·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국가권력의 정치적 의도는 철저히 반성되어야 한다. 아울러 입장의 차이와 진영을 넘어 상호 공감하려는 시민들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문화가 국가권력의 정치적 지형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국가권력에게 반성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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