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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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 김정욱 영화공간주안 관장 겸 프로그래머
  • 승인 2015.03.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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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의 영화이야기] 16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스키 리조트의 야외 레스토랑에서 두 아이를 가진 한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다. 늘 일에 쫓기는 남편 토마스가 오랜만에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내 에바, 딸 베라, 아들 해리와 함께 온 것이다. 이때 갑자기 산꼭대기서 엄청난 양의 눈덩이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게 진짜 눈사태인지 아닌지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아버지 토마스는 눈을 쌓이게 하기 위한 인공 폭발음으로 인한 눈 먼지일 뿐이라고 큰 소리친다. 바로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눈사태가 이들을 덮치고, 아내 에바와 아이들은 공포에 휩싸여 아버지를 찾는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정작 눈사태가 덮치자, 아내와 애들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장갑과 스마트폰만 챙긴 채 혼자 도망가 버리고 만다. 아뿔싸! 눈사태는 결국 눈 먼지였고, 아버지는 머쓱하게 자리로 돌아온다. 2014년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지난주 3월12일에 개봉한 영화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의 줄거리다.

제목 ‘포스 마쥬어’는 불가항력이란 의미이다. 영화는 제목 그대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불가항력’을 한 여행자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사건 이후, 남편에게 실망한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력함에도, 자꾸 사람들 앞에서 그의 잘못을 거론한다. 이 또한 사람의 심리적인 불가항력이다. 스스로의 비겁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니 인정할 수 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주인공의 심적 압박을 영화는 알프스의 장관과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과 함께 천천하면서도 진중하게 다룬다. 아빠에 대한 실망보다, 부모의 이혼이 더 두려운 아이들이 오히려 엄마에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는, 이 영화가 얼마나 가족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관찰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난상황에서 남성의 생존율이 굉장히 높다는 통계도 이 영화가 단순히 픽션이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생존의 위험에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혼자 살겠다 도망갔던 남편이자 아버지, 생존의 위협이 사라지자 가장으로서의 정체성이 무너진 상황을 인정할 수 없어, 부정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사실 그를 비웃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고? 바로 작년 이즈음 세월호가, 그리고 이 이후의 우리의 대처가 생각나서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족을 버렸던, 본능이라는 불가항력에 무릎을 꿇었던, 한 아버지의 가장으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한 분투를 다룬 영화 <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3월21일(토) 오후4시 인천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의 <제23회 사이코시네마 인천>에서 좀 더 깊이 있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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