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 - 박은형 감독 영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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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 - 박은형 감독 영화 [마음이]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3.26 1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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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19.
 
우리 집에는 대를 이어 내려오는 관습(?)이 있습니다. 애 엄마가 어릴 때 했던 행동을 꼬맹이가 그대로 계승했으니 이제 우리 집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대대로 물려줄 유산이란 게 뭐 별거입니까. 저 나름으로는 수만금보다 더 귀한 유산일 수도 있다고 혼자 속으로 믿고 있습니다. 자식한테 돈을 물려주면 집안이 망가지고 좋은 습관을 물려주면 대대로 흥한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참 좋은 관습을 갖게 되었으니 흐뭇합니다. 우리 집 꼬맹이가 유치원 다닐 때 얘기입니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들어갈 만큼 다 큰 애가 응아를 다 하면 뒤를 닦아 달라고 늘 엄마를 부릅니다. 유치원에서는 제 손으로 닦는다는데 집에서는 제 손으로 닦는 법이 없습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다 쌌떠’를 외칩니다. 엄마나 저나 “어휴 넌 언제까지 그럴래?” 하며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다 쌌떠?’ 외치며 달려가곤 합니다. 뒤를 닦아주고 뽀얀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어휴 냄새’ 궁시렁거립니다. 참 별놈의 관습도 다 있다고 하시겠지요. 애 버릇 나빠진다고 나무라실 어르신도 계실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 같은 격언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겠지만 그 중의 제일은 사랑, 즉 인(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두뇌가 발달하도록 진화가 된 데에는 손을 사용하여 도구를 만들고 불을 일으켜 음식을 익혀먹는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여럿이 생각을 주고받고 집단적으로 일을 하면서 인간답다 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답기 위해 갖춰야 할 품성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중 ‘인(仁)’은 ‘어질다’는 의미를 갖는 글자인데 이 글자가 두(二) 사람(人)을 담은 글자인 게 안성맞춤이다는 생각을 늘 해 왔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참다운 사람일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면서 참다운 사람이 되는 법입니다. 생존 경쟁이 치열한 동물의 세계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 경쟁 상대를 제거하거나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불쌍한 이웃에게 제 것을 내어 주는, 동물 세계의 섭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바로 이런 행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 특성이 인간 집단의 번영을 가능하게 만들고 개체의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 개체간의 교감과 소통은 인간다움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젖먹이동물 중에서 가장 긴 수유 기간을 가진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서적 교감 활동이 많습니다. 바로 이런 교감 활동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진화하게 만들었다고 보면 됩니다. 다른 개체와의 정서적 교감이 점점 복잡한 의사소통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가 탄생한 것이니 아기와 엄마의 교감이 인간 지성의 씨앗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유아기 때 엄마와의 교감 부족이 나중에 커서 타자와의 정서적 교류를 힘들게 만든다는 발달심리학의 연구 결과도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동화 중에 엄마 없는 아이 이야기가 유독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마음이]를 동물과의 교감을 다룬 작품으로 봐도 좋겠지만 강아지 ‘마음이’를 기르는 11살 ‘찬이’와 6살 동생 ‘소이’가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딱해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물 짖게 됩니다. 전통적인 고아(孤兒) 이야기로 읽어도 좋을 듯하며 엄마 없는 아이의 불쌍한 모습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잘 그려냈습니다. 외로운 두 아이가 강아지 ‘마음이’를 기르면서 비로소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도 얼마 가지 못하고 깨집니다. 동생 ‘소이’가 강에 빠져 죽으면서 ‘찬이’는 ‘마음이’를 미워하게 되고 결국 이 소박한 행복도 파탄이 나게 됩니다. 엄마 없이 불쌍하게 사는 아이가 동생마저 잃게 되고 정을 나누었던 강아지한테서도 배신감을 느껴 헤어지고 마는 이야기 전개가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동화들이 기아(棄兒) 공포, 즉 버림받는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결말에는 다시 만나게 해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감정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슬픈 일이 거듭되는 비극입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어요.
 
어릴 때 엄마가 곁에 없어 교감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데 늘 엄마가 곁에 붙어 잔소리를 해서 의존성이 강해지는 것도 문제이지요. 그래서 엄마 없는 아이 이야기를 간접 경험해 보는 건 정서 발달에 좋은 겁니다. 너무 거창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부재(不在)가 존재(存在)의 의미를 일깨우지요. 고아의 고통에 연민의 감정으로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나에게 엄마가 없다면?’ 하고 자문해 보는 것으로 나아가고 나중에는 ‘진실한 관계란 무엇인가?’ 하는 사색에 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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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2015-03-27 09:53:19
공감합니다. 슬픈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이야기 뿐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메마르고 각박해지는 이유가 목표만을 바라보기 때문은 아닌지.. 인간에게 내재된 희노애락과 칠정의 감정이 억눌려 뭉쳐있다가 부정적 방법(폭력, 자살, 범죄, 분쟁 등)으로 터질 수 밖에 없겠지요. 사이코패스도 교감의 문제라고 하니 목표, 성공, 공부, 돈에 밀린 인간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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