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꽃들이 섬진강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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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꽃들이 섬진강으로 흘러갔다
  • 이희인 여행가 겸 작가
  • 승인 2015.03.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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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인의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6. 전남 구례, 광양


['2015세계 책의 수도 인천' 기획] 길 위의 책, 길 위의 맛
많은 꽃들이 섬진강으로 흘러갔다
- 찾아간 곳 / 전남 구례
- 읽은 책 / 윤대녕, <3월의 전설>
 
그분들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나는 늘 그분들과 함께 여행을 했으며, 여행의 방법과 멋을 그분들을 통해 배웠다. 노련하고 알찬 여행의 가이드이자 여행의 선배인 그분들은 미술사학자 유홍준 선생과 소설가 김훈, 윤대녕 선생 등이다. 그분들의 책이나 소설을 통해 나는 가야 할 곳의 목록을 채웠고 그분들이 일러준 곳으로 행장을 꾸려 떠났으며 그분들을 흉내 내어 별과 달, 산과 바다, 식도락과 풍류를 즐겼다. 그분들의 책을 읽노라면 그들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이력이 그리 간단하거나 녹록한 것이 아님을 대번에 알만했다. 얼마나 많은 방랑과 여행이 그분들의 젊은 날을 채웠을까.
 
그 가운데서도 소설가 윤대녕은 내 젊은 날 여행 편력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는 나의 스승이다. 일면식도 없을 독자를 그 분이 제자 삼아줄 리 없겠지만, 소설가란 모름지기 작품을 통해 스스로 스승이 되고 독자를 제자로 부리는 것.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헤세나 카프카가 그렇듯 윤대녕도 내 젊은 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스승이었다. 그가 가르친 것이라면, 계절에 따라 천변만화를 거듭하는 우리 땅에서 젊은 날을 어떻게 아름답게 허비할 것인가, 하는 과목쯤이지 않을까. 그의 소설이 가르쳐 준 여행지를 찾아 다녔고 그가 맛보았다는 음식을 찾아 먹었고 그의 문체를 흉내 내 글을 썼다.
 
요즘 사람들이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의 촬영 장소를 떠나야 할 여행의 행선지로 참고하듯, 그 시절에 나는 윤대녕의 소설에서 가야할 곳과 만나야 할 것들을 찾고 세웠다. 그저 단순히 여행지를 안내 받았다기보다는 내내 ‘윤대녕 흉내 내기’를 했다고 할까. <상춘곡> 같은 단편을 들고 고창 선운사를 찾았고 <소는 여관으로 들어온다 가끔> 같은 소설로는 춘천을, <신라의 푸른 길>을 들고는 경주를, <대설주의보>의 환영을 쫓아 설악과 백담사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그런 식이었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이나 <어머니의 수저> 같은 에세이집을 통해서는 그가 일러준 산과 바다의 음식들을 또 찾아다녔으니 윤대녕이 내 여행 편력에 미친 영향을 누누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윤대녕의 작품에 가장 많이 언급된 장소 중 하나는 단연 섬진강 어간이다. 3월만 되면 방송과 신문이 앞 다퉈 그곳으로 상춘객들을 불러들이기 전에, 그래서 지금처럼 제철엔 어김없이 교통지옥으로 변해버리기 훨씬 이전에 나는 그의 소설 덕분에 비교적 고요했던 산수유마을과 매화마을, 그리고 섬진강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해 그의 단편 <3월의 전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도저히 그곳을 찾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 두 명에게 전화를 했고 친구들도 흔쾌히 따라 붙었다. 15년 전쯤의 일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그럼 화개 쪽에 가 보셔요. 그 참에 산수유와 매화 벚꽃도 구경하시구요. 그때쯤이면 섬진강으로 은어 떼가 올라오잖아요.” 화개(花開).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이 되게 어지러웠다.
                                                        (윤대녕, <3월의 전설>에서)
 
섬진강은 무엇보다 꽃의 강이다. 우리 국토에서 가장 먼저 요란하게 꽃들이 피어 꽃 대궐을 이루는 곳이 이 강 양안의 산골 마을들이다. 강 아래쪽 광양 다압마을에 매화가 지폈다는 소문이 퍼지는가 싶으면, 곧 강 북쪽 구례 산동에 산수유 소식이 들려오고 그러다 그 소식들 조금 잦아질 즈음 화개에서 쌍계사 가는 십리 길을 벚꽃이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 일은 순식간이어서 화개의 길이 모두 봄꽃에 함락되었다고 하면 이제 봄은 완벽하게 우리 국토를 점령하게 된 셈이다. 그 뒤로 배꽃이 이어지고 또 오만 꽃들이 이어질 것이다. 윤대녕의 표현대로 그것은 초봄부터 들이닥쳐 사람들 마음을 노략질해가는 꽃의 도적떼들, ‘화적(花賊)’에 다름 아닌 것이다.
 


 
섬진강 마을에 올 때마다 떠오르는 소설들이 더 있다. 소설을 시의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그렇다. 섬진강변 마을들을 걷고 여행할 때마다 마루야마 겐지가 <달에 울다>나 <물의 가족> 같은 소설에서 그려낸 마을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내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동네도 바로 섬진강 어간이다. 화개를 배경으로 쌍계사와 칠불암의 계곡을 헤집고 다니는 김동리의 <역마(驛馬)>는 어떠한가? 그 단편도 꽃이 가득한 소설이었다.
 
매화란 화투장에서나 보았고 산수유는 붉은 열매만 알고 있던 내게 윤대녕의 소설이 부려놓은 이미지는 신비롭고도 강렬했다. 버스를 타고 구례 산동 산수유마을에 도착한 것이 늦은 밤이어서 그 계곡이 어떤 빛깔을 하고 있는지 그 밤엔 알지 못했다.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 셋이 모여 그때면 한창인 고로쇠 물을 마셨고, 새벽까지 더덕과 산채를 안주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 아침에 눈을 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마당으로 내려서서는 그만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질렀다. 아, 저게 산수유구나! 흡사 수채화 물감을 흩뿌린 듯 노란 꽃무리가 무채색의 무덤덤한 계곡을 안개처럼 감싸고 있었다. 꽃이라 하기엔 선명하거나 덩어리 같은 것이 없는데 가지들마다 그저 노란 분위기를 열매처럼 맺고 있었다.
 
우리는 강을 따라 구례에서 화개로 내려왔다. 벚꽃이 피기엔 이른 때였지만 윤대녕의 소설에서처럼 은어가 올라오는 무렵인 듯했다. 화개에 있는 식당마다 수족관에 은빛 물고기들이 칼날처럼 반짝거렸다. 지금은 튼튼한 다리로 넘어갈 수 있는 화개 어간 섬진강을 그때는 배로 건너야 했다. 강을 가로질러 연결된 밧줄을 잡아당겨 늙은 사공이 우리를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줬다. 강 이쪽에서는 재첩에 밥을 먹었고 저쪽에서는 은어 회에 동동주를 마셨다. 사각거리며 씹히는 은어회의 질감은 수박을 씹는 것 같았다. 남도를 함께 찾은 고교 동창생 셋은 그렇게 한낮부터 봄과 술에 취해버리고 말았다.
 

 
 
섬진강을 쑤시고 다니던 우리의 여정은 윤대녕이 향했던 대로 하동과 남해 쪽으로 이어지지 않고, 방향을 바꿔 아랫녘 순천 여수 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여수 영취산 기슭에 올라 흐드러진 진달래 군락까지 보고 왔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군대로, 직장으로, 결혼으로, 마치 당연하게 정해진 수순인 양 감동 없이 달려온 사내들의 삶에 그 여행은 꽃의 그림자를 한껏 드리운 축제였다. 사내들이 꽃의 아름다움을 알기엔 어쩐지 그럴만한 나이를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수유에서 매화로, 벚꽃으로, 진달래로. 마지막엔 여수 오동도 숲에서 동백꽃을 보다가 후드득 듣는 봄비를 맞아서야 정신을 차리고 밤차를 타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가 이십대 후반쯤이었다.
 
그 뒤로도 섬진강 어간을 무시로 찾아갔다. 그러나 섬진강 꽃 대궐의 명성은 해마다 드높아져 언제부턴가는 긴 꼬리를 물고 답답하게 줄을 서 있는 차들의 무리만 보고 돌아오기 십상이었다. 발길이 뜸해진 것도 그 무렵이다. 강만큼 우리네 삶과 역사를 은유하는 풍광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무수한 강을 만났지만, 내게 언제나 그리운 강의 첫머리엔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눈에 띄는 아름다움도 없고 화려한 매무새도 없지만, 다정다감함과 다소곳함으로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주는, 누이 같은 강이다.
 
 
지난해엔가 오랜만에 윤대녕 소설집을 뒤적이다가 책 속에 꽂혀 있던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탄생한 배경을 회고하는 연재기사였는데 그때 오려둔 것이 윤대녕이 소설 <삼월의 전설>을 쓸 때의 기억을 회고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때 소설보다 더 결정적으로 봄날 섬진강에 나를 불러들인 것이 그 신문기사였다. 그 짧은 글이 너무도 아름다워 책상머리에 붙여 두었다가 곧 책갈피 속에 꽂아두었던 게다. 그 무렵엔 그 글을 거의 욀 정도였던 것 같다.
 
다 연소되지 않은 기름 냄새를 풍기며 버스는 남부터미널을 출발해 저녁참에 하동 쌍계사 입구에 생이 시금털털한 사내 하나를 부려놓는다. 구례 지나오다 밤하늘 지붕 옆으로 길을 끌고 가는 산수유 무리를 목격했다. 밤이 오면 꽃들은 지리산 깊은 산곡으로 슬금슬금 숨어든다. 바랑을 지고 가는 옛적 그 앳된 비구니처럼. (중략) 쌍계사에 짐만 홱 던져놓고 한 달이나 남해금산 보리암, 화엄사, 세석평전 등지를 헤매고 다녔다. 산수유에 노랗게 물든 옷을 입고, 홍매화를 눈 끝에 달고, 바야흐로 가지에 점점이 맺히는 왕벚꽃 씨알을 보며, 밤이면 개불에 전어구이에 늦도록 소주를 마시며.
                      내 소설의 한 순간 – 윤대녕 ‘3월의 전설’ <한국일보> 1999.3.31.
 
가슴 뜨거운 여행자라면, 섬진강의 꽃소식에 홧홧하게 얼크러진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법. 헐겁게 꾸려온 배낭을 민박집에 홱 던져놓고 남해금산과 지리산 일대를 헤매 다니며 개불과 참게, 은어 회에 소주를 마시며 소설가의 흉내를 내야 하는 것. 흉내를 내다가 어느덧 꽃의 여행자가 되어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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