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대표하는 동시상영관 '인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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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대표하는 동시상영관 '인천극장'
  • 디비딥 장윤석 블로거(인천in 객원기자)
  • 승인 2015.04.07 10: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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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비딥의 인천이야기] 21


방학이 되고 보면 기분은 날아갈듯이 좋지만 단 며칠이 지나고 나면 일상은 너무너무 단조로워진다.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 싫증이 날 때 쯤에는 어머니께 받은 용돈 천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고 슬리퍼를 끌며 집을 나선다.

홍예문을 거쳐 인일여고를 지나 그렇게 터벅거리며 걷다보면 화평동이 나오고 이제 걷는것이 조금 지칠 때 쯤이면 어느새 남루한 극장 앞에 서있는 까까머리 내가 보인다. 나의 어린시절...무료함과 호기심을 달래주던 놀이터였던 그곳, 바로 인천극장이다.


지명의 이름을 딴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인천극장은 말하자면 삼류극장... 동시상영관이었다. 내가 화평동 쪽으로 갈 일은 오로지 인천극장과 고등학교 때 화도진도서관 이외는 없었다고 보면, 이곳도 꽤나 외진 낯선 곳이 아니였나 싶다.

 

당시에는 어떤 영화를 하는지 보려면 극장 포스터들이 붙어있는 곳을 찾아가야 했는데 거기까지 갈 바에는 그냥 혹시나 재미난 영화를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극장 앞까지 걸어가는 편이 나았다.
 

한 편은 개봉 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그리고 다른 한 편은 대부분 에로영화가 한 세트였다. 입장료는 오백원 ... 입장을 하면서 고민이 시작된다. 나머지 오백원으로 군것질을 하며 럭셔뤼하게 영화를 볼 것인지 아님 잘 두었다가 담에 영화를 보러 올 껀지... 하지만 두 편의 영화를 맨입으로 보기에는 내 인내와 집중력은 얄팍했던 거 같다.

 

수많은 영화를 여기서 보았음에도 지금 기억나는 것은 제목이 '적도의 꽃'이었나 하는 영화였는데... 주인공은 장미희와 안성기... 맞나 모르겠네... 맞은편 아파트에서 짝사랑 하는 여인을 몰래 보면서 스토킹하는 이야기 였던 거 같다.


영화를 보고있어도 "어리다"며 뭐라 하는 어른이 없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싶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두 번씩 온종일 보고 나면 해가 지고 저녁먹을 시간... 여유롭게 걸어온 것에 비해 갈 때는 발걸음을 급히 재촉한다. 늦게 들어가면 어머니가 추궁을 하실 꺼고 또 공부 안 하고 극장에서 하루를 보낸 걸 아시면 가만두지 않을 터...

 

이제 인천극장은 사라지고 없다. 다만 그 자리에 마트가 들어서 있고, 예전에는 사우나도 같은 건물에 있었는데 지금은 하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이곳을 자주 지나치며 그 마트를 바라보면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영화를 보고 나와 집으로 급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보인다. 어린 시절 .. 단돈 오백원의 행복... 지나고 보면 추억으로 얻는 일상의 작은 행복이다.

 

 

1955년 3월에 이민 씨와 김태훈 씨가 연극전문 극장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이듬해 1956년 4월 24일 화재가 일어나 전소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 시민극장에서 인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해오다 2001년 9월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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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이 2015-04-14 12:25:40
인천극장 맞은편 "무비 프라자"는 가 봤는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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