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부처 우리 형 - 고정욱 장편 동화 <아주 특별한 우리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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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부처 우리 형 - 고정욱 장편 동화 <아주 특별한 우리 형>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5.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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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제28회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요. 불행해지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행복은 좇을수록 멀리 달아나는 것 같아요. 남들 다 피하는 고달픔을 온몸으로 안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해 보일 때 우리는 참다운 행복이 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당장 제 좋기만 하려고 이기심을 채우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람은 참 꼴불견입니다. 늘 그렇게 제 것만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모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쭐거리고 폼을 잡아도 누구 하나 감동시킬 수가 없는 겁니다. 폼이 나면 얼마나 나겠어요. 돌아서면 다들 흉보는데 말입니다.

수고로움을 귀찮게만 여겨 피해 온 사람, 아픈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될까봐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 욕심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잠시 눈속임을 할 수도 있고 운이 좋아 신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요. 아플수록 속이 깊어진다는데 한 번도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속이 얼마나 얄팍하겠어요. 그러니 이기심과 욕심이 빤히 들여다보이게 되는 겁니다. 누군들 자기 것만 챙기고, 자꾸 귀찮아하기만 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고 싶겠어요. 그러니 아픈 건 피하고 신나는 것만 좇아온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기는커녕 손가락질만 받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형제지간 이야기입니다. 자라면서 처음 시기심이 발동할 때가 아마 동생이 생길 때일 겁니다. 그러니 사람의 시기심은 집안 형제간의 다툼으로 형성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시기심을 다루는 심성이 형성된다고 해야겠지요. 이 다툼의 과정을 통해 인격이 성숙해지는 법인데 이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태가 좀 걱정이 됩니다. 외동으로 자라면 버릇없다는 옛말이 있는데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이 말을 새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만 낳아 기르는 경우가 많으니 애지중지 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늘 되새겨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 것만 알고 남 생각 못 하는 자식하고 부대끼는 것만큼 사람 속 태우는 일도 없거든요. 사춘기 즈음이 되면 후회막급이래도 뒤늦은 일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시기심을 도덕적 잣대로 질타한다고 될 일도 아닙니다. 먼저 공감이 필요합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은 형제간의 시기심을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는 데 좋은 동화입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큰애가 이상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해진 게 아니고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니 타인과의 갈등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걸 안 배우면 나중에 정말 고생합니다. 혼자 귀여움을 독차지 하면서 자라면 갈등의 기회가 많지 않아 이기심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이기심을 다루지도 못하는데 이타심은 어떻게 기르겠어요. 영 꼴불견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아기 때부터 형제가 함께 자라면 더불어 지내는 심성을 조금씩 자연스럽게 기를 텐데 외동으로 부모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지내다가 난데없이 형이 나타나면 그 충격이 대단할 겁니다. 그 형이 장애를 갖고 있어 부모님의 관심이 형에게 쏠리니 정말 견디기 힘들겠지요. 가족이 다 꼴 보기 싫고 집 나가고 싶고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봐야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종민’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형이 나타납니다. 아주 특별한 형입니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고 팔 다리도 뒤틀려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외아들로 애지중지 귀염을 독차지 하며 커왔는데 난데없이 형이라니요. 게다가 그 형이 남들 보기 창피한 장애인이라니요. ‘종민’이는 감당이 안 됩니다. 친형이 있다는 걸 감추어온 엄마 아빠한테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가출까지 하게 됩니다. ‘종민’이가 형 ‘종식’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집안 형제가 서로 티격태격하며 지내는 모습은 소설 속의 ‘종민’이 ‘종식’이 형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옛날부터 형제간의 우애를 가정교육의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해온 것도 그만큼 형제간은 돈독하기 쉽지 않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른들도 형제간에 재산 다툼 하느라 볼썽사나운 짓들을 하는데 철부지 아이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사람의 시기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득도(得道)를 해서 해탈을 해야 시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에서는 가출했다가 돌아온 ‘종민’이가 형 ‘종식’이 써준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 형을 위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쉽게 시기심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예수님, 부처님처럼 고행을 통해 욕심을 극복하는 일도 내 주제로는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은가요.

부처님 오신 날 법륜 스님의 말씀을 다시 들으며 참다운 행복은 어떻게 누리게 되는지 실마리라도 잡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행은 기대가 크기 때문에 찾아온다.” 스님의 이 한 마디 말씀을 되새기면서, 비교하면 시기심이 생기고 시기심이 욕심을 부추기며 욕심 때문에 우리가 불행해진다는 뜻으로 곱씹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마음이 돌아설 수 있는가, 공감이 잘 안 된다 싶기도 했지만, 행복은 진정으로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에서 싹튼다는 설법(說法)을 염두에 두니 ‘종식’이가 형을 불쌍히 여기면서 시기심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훨씬 감동적으로 읽혔습니다. 발이 닳도록 온 천지를 다니는 고행을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어쩌면 그렇게 해맑은 웃음이 늘 만면하신지 스님을 대면하는 그 자체가 큰 배움이라는 걸 공감하게 되고, 참다운 행복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어렴풋이 변죽을 울린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공감에 제 마음이 한결 훈훈해지긴 하는데 혹시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을 염치없는 철부지를 꾸짖을 장광설로 메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 봐라. 자기보다 못난 형을 두고 시기하는 욕심이 얼마나 밉냐. 사람은 자고로 마음을 곱게 써야 하느니라. 넌 ‘종식’이하고 뭐가 다른지 반성해 보아라. 이렇게 훈계할 거면 이 작품은 참 나쁠 수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종식’이처럼 쉬 성숙해질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아이의 그릇됨을 저울질 하는 잣대로 이 작품이 언급된다면 작가 ‘고정욱’ 씨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소개하는 저도 참 낯 뜨거워집니다. 사랑받으려는 욕심이 우리를 불행하고 만들고 사랑을 베풀 때 우린 진정으로 행복해진다는 깨우침이 먼저 필요한 듯합니다. 그렇다고 가르쳐 깨우쳐 주리라 기대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건 아이의 배움을 가로막으며 나도 불행하게 만든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공동체 이웃과 함께 영주 ‘내성천’을 찾았습니다. 안동 ‘화회마을’ 영주 ‘회룡포’, ‘무섬마을’로 유명한 곳입니다.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강에는 굽이굽이 모래사장이 곱게 펼쳐져 있고 강물은 맑디맑은 곳이었답니다. 그런데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이 아름다운 강이 오염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모래가 쓸려나가 강바닥은 돌밭이 되고 군데군데 물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고운 모습이 남아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를 알 만했는데 아이들이 섶다리를 건너다 강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 곱고 행복한 모습을 곧 잃게 된다는 게 원통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욕심이 이 행복을 다 앗아가는구나 싶어 수심에 젖기도 했습니다. 행복이란 게 이렇듯 아무 욕심 없이 천천히 낮은 데로 가는 것이구나 되새기게 됩니다. 못난이 바보 형이, 저 무심한 모래가 바로, 기려야 할 부처가 아닙니까.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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