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자들의 피맺힌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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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들의 피맺힌 소리가 들린다"
  • 권혁진
  • 승인 2015.07.08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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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흐른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하고


 
지난 7월2일 동료들과 부평역사 CGV 영화관 10시에 개봉하는 제1연평해전을 관람하였다. 머리가 흰 실버들도 많아 다행이다 싶어 시청 2관 자리에 앉았으나 뜻하지 않게 젊은이들도 많았다.
 
얼마 전 흥행한 국제시장과 명량해전을 관람하였다. 두 영화 모두 역사의 한 흐름을 그린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쓰라린 경험을 온 국민의 힘으로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애국충정에 나라를 구해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는 지도자의 리더로 오늘날 우리의 국방력 증강과 경제력 향상을 이루었다. 현재는 이를 계기로 세계의 선진대열에 오르게 된 부강 한국의 모습을 영화를 통해 실감하였다.
 
명량해전은 5백 전 당파싸움으로 국방력이 열세한 상태에 왜적의 침입을 당하는 상황에서 단 12척의 배로 왜적을 무찌른 감동적인 해전의 영화였다. 그런가 하면 국제시장은 조국의 근대화에 온 국민의 잘 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 일어날 당시 외화를 벌기 위해 독일의 광부로 간호사로 파견되어 혹독한 고생을 겪은 우리 세대들이다.
 
특히나 월남전이 한창일 때 국군과 군무원, 민간인들이 전쟁터에 파견되어 우방을 도우며 피나는 고생을 겪은 가운데 외화를 벌어 우리의 조국 근대화에 근간을 마련하였던 기록 영화이다. 기자도 파병용사로 그 일부를 담당했다.
 
그러나 이번 제1연평해전은 좀 다른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해전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불과 13년 전의 일이다. 우리의 해군함정에 탑재한 무기가 적보다 우세한 가운데도 전사자와 고속정이 침몰하는 불행한 역사의 영화이다.
 
이 영화의 무대인 제2차 연평해전에서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 정장을 포함한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을 뿐 아니라 고속정마저 침몰한 불행한 역사이기에 이를 영화로 촬영하기란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참수리호에 보직을 받은 정장(함장) 윤영하 대위와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 해군 정장을 입고 선임들의 텃세 속에 서로 인사를 나누며 함정 내부 모습 안내를 받는다. 윤영하 대위는 병사들의 작전 상태를 점검하는 비상 훈련을 한다.
 
27초 만에 전투태세를 완비한 병사들의 보고를 받은 윤 정장은 만족하며 월드컵 4강 신화의 중계방송 시청을 허락하면서 피보다 진한 전우애로 모든 병사는 하나가 된다.
 
윤영하 정장은 북한의 무전 감청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어 상부에 보고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침울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참수리호는 북한함정과 충돌한다. 적장을 사로잡았으면서도 상부의 작전 통제 속에서 교전규칙준수란 의무이행으로 적장을 풀어주고 선제공격도 할 수 없이 밀어내기식 전술로 용감하게 적과 싸우면서 적의 무차별 공격에 우리 병사들은 전사자와 부상병이 속출하였다. 늦게나마 교전규칙에 따라 대응 사격으로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그래도 계속 이어지는 전투에서 북한 경비정 지휘관을 포착한다. 바로 일전 생포했다 풀어준 두 명의 북한 지휘관이다. 이들은 우리 경비정의 시설과 포신만 등을 관찰하고 돌아가 그들의 경비정에 탱크포를 보강하고 우리의 참수리호 조타실 근접 포격으로 실제 전투와 똑같은 30여 분 정도의 전투가 벌어진다.
 
윤영하 정장을 포함한 모든 장병은 온 힘을 다해 적과 싸우면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보고 눈물이 나왔다. 윤 정장은 자신의 총상에도 불구하고 지휘권을 놓지 않고 적과 싸운다. 조타실의 모 상사도 부상을 당해 피가 낭자한 가운데 배의 방향을 조절하며 적과 교전한다. 의무병 박동혁 상병은 자신의 몸도 부상한 것을 모른 채 전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치료하는 모습에 감동을 한다.
 
영화 속의 장면을 본 전사자의 부모나 남편을 잃은 아내 그리고 그 자식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특히나 윤 정장의 아버지는 해군 선배 장교 출신이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벽에 걸린 아들의 해군 정장 옷을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극장 내는 모두 숙연하며 흐느끼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나 또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옛 월남전에서 전사한 동료들을 생각해 보며 손수건을 꺼내고야 말았다.
 
이들과 내가 흘린 눈물은 내 자식 같은 장병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애통해서 흘린 눈물이며. 항상 적화야욕을 노리는 북한에 대한 증오의 눈물이다. 박동혁 의무병은 병상에서 먼저 간 전우들에게 경례하고는 혼수상태에 빠져 군의관들의 인공호흡도 허사로 돌아가 곧 숨을 거둔다. 그 옆에서 말을 못하는 농아 어머니는 통곡하며 우는 눈물은 하늘을 찌를 듯 슬픔과 분노의 눈물이다.
 
경고방송 후에도 북한함정은 퇴각하지 않았다. 왜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30분이라는 긴 시간이 있는데 공군은 왜 출격을 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교전규칙은 북방한계선을 지키는데 선제공격을 하지 말고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격퇴하며 전쟁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전투규칙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월드컵 경기가 한창인 시기에 해군 전사자들은 유명을 달리했다.
 
이는 마치 적이 총칼로 무장 월경하면 우리 아군은 몸으로 적을 막으라는 닭싸움과 같은 교전규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적의 위험에 처하면 선제공격 후 보고라는 규칙으로 변했다 한다. 다행한 일이다. 우리 국군장병들의 용맹스런 국토방위에 우리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연평해전 영화가 실화라면 해전의 원인이 고의인지 우발인지는 모르지만 아까운 젊은이들이 전사했다. 연평해전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국군수도병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다. 유가족들의 오열 속에 영면을 빌며 합동 영결식이 막을 내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부인사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전사자와 부상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다른 사건에 비해 너무 소홀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시 팽목항에 2번이나 방문 했으나 유족의 반대로 분향 조차 하지 못했다. 국토방위가 아닌 다른 사건으로 사망한 분향소는 지금도 시청 앞에 마련되었다.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이들의 일반 분향소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이다.
 
연평해전 유족 중 일부는 울분을 참지 못해 이민을 떠났다고 한다. 이 영화 속의 마지막 단계에서 생존한 사람들과 유가족들의 육성이 방영된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전사자에 대한 대우를 늦게나마 과감히 개선해 주면 어떨까? 이들의 죽음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할 것을 잊지 말라는 6명의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피맺힌 소리를 이 영화는 나에게 전하는 것 같았다. 영령들이요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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