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장 역사…"7개 테마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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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개항장 역사…"7개 테마로 떠난다"
  • 이병기
  • 승인 2010.07.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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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국제도시를 열다…행정/외교


개항 초기 인천항

취재: 이병기 기자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인천. 그 중에서도 중·동구 지역에는 서양식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시민을 비롯한 국내외 방문객들이 인천의 역사적 배경지식을 알고 지역을 둘러볼 수 있도록 일곱 테마로 떠나는 개항장 답사 - '인천 개항장 역사 도보여행' 수정본을 최근 발간했다.

이 책자는 철도가 지닌 근대적 상징성을 고려해 인천역을 출발점으로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을 돌아볼 수 있게 구성됐다. 지난해 발간된 초판의 내용상 오류를 정정했다. 책 뒤편에는 문화유산 외에 인천 개항장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행정보도 추가했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1883년 개항은 인천에 교육과 종교, 여가 등 각 방면에서 새로운 문화가 흘러들어 시민 생활이 전반적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나타냈다"며 "특히 청국과 일본 등 각국조계지가 있었던 개항장 일대의 경우 외국인들의 활동이 활발해 국제도시의 성격이 돋보였다"라고 평했다.

그는 "본문에서는 근대 인천의 모습을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조사 가능한 대부분의 장소를 소개하고자 했다"며 "이미 사라져버린 곳도 많지만,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장소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인천 개항장 역사 도보여행'의 구성은 중·동구 일대 근대문화유산을 행정·외교·교육·경제·주거·종교·공공시설·위락 등 7개 분야로 나눠 동선에 따라 체계화했다. 또 각 장소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주소를 나타냈고 사진을 첨부했다.

답사코스의 순서를 뜻하는 번호는 초행자들의 편의를 배려해 작성됐다. 더불어 장소별 관련 인물고사나 문헌자료 상의 일화들을 소개해 답사자들의 이해를 돕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문화재단 관계자는 "길을 따라 걸으며 답사장소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다 보면 근대 개항장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질 것"이라며 "이 책이 인천 개항장 일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1~5코스. 러시아영사관에서 일본영사관까지


도보여행 출발점인 인천역

<인천in>은 각 분야로 나뉜 개항장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직접 둘러보았다.

인천역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100m 정도 가다 보면, 고가도로가 나온다. 바로 왼 편 중구 선린동 57-3번지가 옛 러시아영사관이 있던 자리다. 1902년 10월 세워진 러시아 영사관은 당시 각국공원(현 자유공원)을 설계했던 러시아 측량기사 사바찐이 맡아 건축했다.

러시아영사관 











그러나 러일전쟁(1904~1905)에서 러시아가 패한 후 영사업무가 종료되고, 관사는 체신국인천출장소(1912~1915), 인천해사출장소(1915~1945) 등으로 사용하다가 1974년 철거됐다. 현재는 그 자취를 찾아볼 수는 없으며 일반 회사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가 신포동 방면으로 걷다 보면, 우측에 파라다이스호텔인천이 나온다. 이곳이 두 번째로 둘러볼 영국영사관 터. 영국영사관은 1884년 설치된 이후 1897년 지금의 파라다이스호텔 부지에 신축했다.

영국영사관  현 파라다이스호텔












당시 이곳에는 외국 선박의 출입상황을 알리는 봉화대가 있었다. 당시 전환국 직원이자 <인천잡시(1893)> 저자인 요코세 후미오는 이곳을 "산허리에 공관의 깃발이 나부끼고, 붉은 난간 흰 벽이 높다랗구나"라고 묘사했다. 지금도 호텔 뒷편에서는 인천 앞바다와 항구에 정박해 짐을 싣고 있는 대형 선박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호텔 언덕을 내려와 중부경찰서 방향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우측으로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탑이 나온다. 그 맞은편이 옛 인천해관 터다. '해관'은 오늘날 세관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1883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해관이 설립됐다.

인천해관 










초대 총세무사는 영국인 스트리플링으로 경기와 충정, 전라, 황해, 평안도 등 5도를 관할했다. 총세무사의 임명권은 갑오개혁(1894)까지 청국에서 장악했으나 을사늑약(1905) 이후 일본인 메가타 타네타로가 총세무사를 겸임한 뒤 세관으로 개칭된 것으로 책자는 설명하고 있다.

인천해관 역시 옛 모습 대신 현재는 선구사와 공업사들이 들어서 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면 바로 맞은편 공원으로 조성된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탑을 잠시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는 기념탐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안내소도 있어 더 자세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다.

청국영사관인천화교소학교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청국영사관 터다. 이곳에는 현재 인천화교소학교와 중산중학교가 들어서 있다. 청국은 인천에 조계를 설치한 1884년 이곳에 영사관을 세웠다. 그들은 청국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보국과 순포청(경찰서)을 내부에 뒀고 시내에 분청을 설치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청국영사관의 옛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영사관 회의청과 초대영사 쟈원옌이 쓴 현판 '만국의관(萬國儀觀)', 조선인중화 총상회가 설치(1922)한 현판 '낙선호시(樂善好施)'가 건물 정면에 걸려 있다. 

지금은 삼국지 거리로 더 알려진 이곳은 화교소학교와 맞은편 건물 담장에 삼국지 내용을 담은 벽화들이 길게 늘어져 관광객들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옛 일본영사관 터, 현 중구청

현 중구청은 일본영사관이 있었던 장소다. 등록문화재 249호로 지정된 이곳에는 1882년 일본이 인천에 영사관을 개설했다. 이듬해 중구청 자리에 영사관 용도로 2층 목조건물을 신축했다.

건물은 1910년부터 인천부 청사로 사용했으며, 1933년 현 모습으로 신축됐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인천시청으로 사용하다가 1985년부터 인천 중구청으로 변경됐다.

6~10코스. 인천우체국 ~ 화도진지


인천우체국

둘러본 옛 기관 건물 중 가장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인천우체국이다. 중구청에서 아트플랫폼 방면으로 내려와 좌측 신포동 큰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1884년부터 우편업무를 시작한 일본영사관은 1896년 영사관 내에 인천우편국을 신설했다. 1905년 이후 통감부 통신관리국 소속으로 대한제국의 우편업무를 담당하다가 1923년 현재의 인천중동우체국 자리에 신축됐다.

인천감리서터현 스카이타워









신포사거리에서 자유공원 방면으로 상가가 줄지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층으로 지어진 스카이타워가 나온다. 이곳이 일곱 번째 순서인 옛 인천감리서터다. 조선은 1883년 8월 인천과 부산, 원산 등 개항장의 통상업무를 담당하는 감리서를 설치하고 운영에 들어갔다.

개항장의 감리는 판관 역할도 겸했다고 알려진다. 초대 감리는 조병직이 맡았다. 을사늑약 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일본은 모든 감리서를 폐지했다.

인천경찰서현 옹진군선관위 부근












감리서터에서 인성여중 방면으로 300m 정도 지나면, 중구 송학동3가 6-5 현 옹진군선거관리위원회 근처에 옛 인천경찰서 터가 나온다. 1882년 일본은 자국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영사관 내 경찰서를 만들고 1923년 인성여고 맞은편에 2층 건물을 신축해 이전했다.

홍예문을 지나 쭉 내려가다 보면, 인천전환국 터가 나온다. 현재는 동인천동주민센터로 이용되고 있다. 1891년 은본위 화폐제도를 공포한 이후 인천전환국에서는 은전과 백동전, 적동전, 황동전 등 5종의 화폐를 제조했다.

인천전환국자리의 인천고등여학교현 동인천동주민센터








전환국은 1883년 서울에 설치했으나 제조기술의 부족과 재료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천으로 이전(1892)된 이후 경인철도 완공(1899)으로 화물운송이 편리해지면서 다시 용산으로 이전(1900)했다.

동인천동사무소에서 중구문화원과 화평동 냉면골목을 지나면 화평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1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우측으로 위치한 공원 내에 마지막 답사 코스인 화도진지가 있다.


화도진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된 화도진지. 화도진(花島鎭)은 개항에 대비해 부평 연안에 있는 연희진(連喜鎭)과 연계하는 포대로 설치됐다. 어영대장 신정희와 강화유수 이경하가 축조를 시작해 1879년 완공했으나 갑오개혁으로 군제가 개혁되면서 없앴다고 전해진다.

인천시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아 화도진을 복원하고 <화도진도>를 토대로 화도진공원을 조성했다.

'개항장 도보 여행'은 위에서 소개한 열 곳의 발자취 외에도 각국지계시공서(신동공사) 터와 거류민단사무소 터, 균평사 등 추가로 '기타장소'를 소개해 답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제공: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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