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 제주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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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수
  • 승인 2016.03.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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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팩션] (12)오멸 감독 영화 『지슬』

나라 살림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자들 대부분이 친일파 집안의 후손들이니 그들이 거들먹거리고 있는 정치판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민중의 고통을 좌시할 수 없어 정치 일선에 나서고자 하는 분들의 앞길이 진창일 게 뻔하니 힘내라고 응원하기도 무람합니다. 그렇지만 손을 더럽히지 않고 구정물을 치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늘은 제주 4.3사태가 일어난 지 68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4.3사태 때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한 지휘자가 집권당의 총선을 이끌고 있는 유력 정치인의 인척이라니 4.3의 비극을 떠올리며 4.13 총선을 치르는 일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습니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해온 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떵떵거리고 있으니 이 나라 해방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싸워온 독립투사들의 한을 풀어내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 할 듯합니다. 먼저 비극의 역사를 되짚어 봅시다. 보름 전 3.15 때에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총질을 해댄 악한의 종말을 되돌아 봤습니다. 그 권력자는 처음 권좌를 차지할 때에도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해방은 커녕 일본놈보다 더 끔찍한 동족 불한당의 만행을 견디어야 했던 이 땅 민중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영화 『지슬』을 보면 해방 조국의 백성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죽어갔는지 그 끔찍함에 가슴을 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지슬 동굴.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881pixel, 세로 494pixel
마을 사람들이 동굴에 피신한 장면
 
영화 『지슬』은 1948년말부터 시작된 제주도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을 배경으로 한 사극입니다. 제주도 북서부 동광리 주민 120여 명이 ‘큰 넓궤’ 동굴에서 40여 일 숨어 지내다 토벌대에게 발각되어 총살당한 실제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담아낸 장면들이 너무 끔찍하여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노라 말하는데 제가 이리 저리 조사하여 알게 된 실상에 비하면 영화 『지슬』이 저에게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비칠 정도였습니다. 추운 동굴 안에 둘러앉아, 두고 온 돼지 사료 걱정, 동네 총각 장가 들 처녀 얘기로 화기애애한 모습이,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비극의 아이러니로 읽혔습니다.
 
토벌군이 마을에 들이닥친다고 다 늙은 ‘할망’을 뭐 어찌 할까 싶어 남아있던 노인까지 처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일본이 과거 만행을 사죄하지 않아 된통 욕을 얻어먹고 있는데 제주에서 일어난 참상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 다들 모르쇠 할까요. 정말 저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요.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배경인 북촌리 ‘너븐숭이’에는 수많은 애기무덤이 널려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읍 관덕정 마당에서 열린 3·1절 기념집회 때에는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 말굽에 짓밟혀 크게 다치기도 했습니다. 공비를 토벌한다고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할 때에는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남아 있는 주민들을 모조리 죽였고 산 속으로 도망간 자의 가족은 대살(代殺, 대신 죽임)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떠날 때 혼자 남아 양식거리라도 챙기라며 지슬(감자)을 싸주던 할머니를 빨갱이라며 칼로 난자해 죽이는 서북청년단 토벌 지휘자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악귀였습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지슬.2012.720p.KOR.HDRip.H264-Canrel.mp4_000740688.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33pixel, 세로 691pixel
영화 [지슬]을 만화로 그린 김금숙의 작품
 
눈 덮인 ‘용눈이’ 오름 분화구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제주의 산야는 무고한 주민들이 끔찍하게 죽어간 무덤 천지가 되어버립니다. 해방 직후에 이념 갈등이라고 해봐야 뭐 그리 심했겠으며 동포들끼리 무슨 원한이 사무쳐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걸까요. 영화에서 ‘백일병’은 차마 ‘순덕이’를 쏘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동족상잔의 제물이 된 제주도, 더 크게는 외세에 의해 쪼개어진 조국의 아픔을 상징합니다. ‘백일병’의 눈에는 ‘순덕이’가 그저 순박한 처녀일 뿐입니다. ‘백일병’이나 ‘순덕이’나 다 같은 동포이거든요. 이 순박한 사람들을 서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지옥으로 내몬 자들이 누구인가요.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지슬.2012.720p.KOR.HDRip.H264-Canrel.mp4_002342235.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43pixel, 세로 559pixel사진 찍은 날짜: 2016년 03월 24일 오후 12:55
백일병이 순덕이를 겨누는 장면
 
‘백일병’은 갇혀있는 ‘순덕이’에게 삶은 지슬이라도 건네주러 갔다가 자기를 겁탈하는 오는 줄 알고 놀란 ‘순덕이’가 쏜 총에 맞아 죽습니다. 순박한 처녀 총각이 무슨 원한으로 서로 총질을 하겠습니까. 일말의 가책도 없이 제주 주민을 사냥감인 양 마구잡이로 살육한 자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서청단 간부는 ‘순덕이’ 젖가슴을 칼로 난자하며 겁탈을 하는 끔찍한 짓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순덕이’를 구하려고 마을로 숨어들었던 ‘만철이’는 ‘순덕이’의 죽음을 목격하고 눈물을 흩날리며 저무는 오름을 뛰어오르는데, ‘만철이’가 뛰어오른 오름 자락에 순덕이 시신이 오버랩되는 장면은 제주의 비극을 함축하는 명화(名畵)였습니다. 그 끔찍한 장면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감탄과 연민과 모멸감이 한데 뒤엉켜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습니다.
 


순덕이 시신이 오버랩되는 장면
 
제주 4.3 항쟁의 도화선이 된 1947년 제주 관덕정 3.1절 행사 경찰 발포 사건은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의에 의해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해방은 신탁 찬탁, 좌우 분열로 치달았고 단독 정부 수립으로 나라가 쪼개질 판국이라 우국(憂國) 열기는 날로 심악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경찰 말발굽이 어린 아이를 짓밟았으니 불구덩이에 기름을 들이부은 셈이지요. 그런데 경찰은 들끓는 민심에 총질을 해댔습니다. 제주 4.3사태 과정을 되짚어 보면 무슨 대단한 반체제 저항인 양 조작해낸 구석을 여럿 보게 됩니다. 경찰의 횡포에 항의하는 주민들에게 총질을 한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제 경찰보다 더 악독한 짓을 서슴지 않는 해방 조국 경찰을 대하는 제주 주민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게 되었을까요.
 
그 원인을 간단하게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 선언으로 만주 독립군의 국내 진주가 무산되고 남한에는 미군정이 들어섭니다. 해방이 됐으니 당연히 독립 투쟁을 해왔던 분들이 인민의 지지를 받아 민주 정부 구성을 주도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국적으로 인민위원회가 자생적으로 성립되었고 그 연합체가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군정은 자생적 민주적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고 ‘건맹’은 해체되고 맙니다. 미군정은 친일 매국노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지배 체제를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남한을 관리하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과 분단 고착화를 위해 남한 내 신탁통치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 일소하려고 했습니다. 제주도에 반공 폭력배 서북청년단을 투입하여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게 한 배후에는 미군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4.3 유혈사태를 중단시킨 4.28 평화협상이 무산되도록 만든 ‘오라리 방화사건’은 제주도 주민의 대다수를 빨갱이로 몰아 몰살시키려는 초토화 작전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미군이 사주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미군은 무장 공비가 방화 주범이라고 선전하는 ‘제주도 메이데이’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 ‘서북청년단’이 방화 주범이라는 조사 결과를 보고한 ‘김익렬’ 6연대장을 전격 해임하였으며 미군 수뇌 딘(William Dean) 소장은 5.10 선거 전에 무장대를 완전 소탕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제주 4.3 학살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이는 서북청년단을 토벌 작전에 동원한 작전참모 ‘최치환’입니다. 이 자는 일제시대 때 만주 신경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육군 중위로 복무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내무부 치안국에 소속되어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했고 4.3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진압경찰의 지휘관 작전참모로 제주에 파견되어 큰 전과를 올렸다고 합니다(내무부 치안국의 기록 ‘한국경찰사’, 최치환 추모회 ‘금암회’에 기록된 약력). 그는 이렇게 반공 정권에 의해 인정을 받아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고 유신 시대에는 경향신문 사장, 전두환 정권 때에는 삼성반도체 사장,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그야말로 이 나라 권력의 심장부였습니다. 제주도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서북청년단는 그의 지휘를 받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고 ‘최치환’의 지휘를 받은 서북청년단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보급이 부실하다며 제주도청 총무국장 ‘김두현’을 패 죽이고 보도를 제대로 안 해준다며 신문사 사장을 두들겨 패는 등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지슬』에서는 서청 단원이 젊은 처녀 ‘순덕이’의 가슴을 난도질하며 겁탈하고 ‘김상사’라는 자를 아편중독자로 그리고 있는데 이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토벌대로 들어온 9연대 정보참모 ‘탁성록’이라는 자는 아편중독자에다 같이 살던 여인을 살해하기도 한 정신병자였습니다. 이런 자들에 의해 제주도 도처에서 죄 없는 양민이 끔찍하게 학살당했는데 『지슬』이 그리고 있는 동광리 학살은 그 중 소소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설가 현기영이 그린 북촌면 오라리 마을 학살 사건은 끔찍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주도 토벌대원 셋이 한동안 심심했다 / 담배꽁초를 던졌다 / 침 뱉었다 / 오라리 마을 / 잡힌 노인 임차순 옹을 불러냈다 영감 나와 / 손자 임경표를 불러냈다 너 나와 / 할아버지 따귀 갈겨봐 / 손자는 불응했다 /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 경표야 날 때려라 어서 때려라 / 손자가 할아버지 따귀를 때렸다 / 세게 때려 이 새끼야 / 토벌대가 아이를 마구 찼다 / 세게 때렸다 / 영감 손자 때려봐 /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때렸다 / 영감이 주먹질 발길질을 당했다 / 이놈의 빨갱이 노인아 / 세게 쳐 / 세게 쳤다 /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와 손자 / 울면서 / 서로 따귀를 쳤다 / 빨갱이 할아버지가 / 빨갱이 손자를 치고 / 빨갱이 손자가 빨갱이 할아버지를 쳤다 / 이게 바로 빨갱이 놀이다 봐라 / 그 뒤 총소리가 났다 / 할아버지 임차순과 / 손자 임경표 / 더 이상 / 서로 따귀를 때릴 수 없었다 / 총소리 뒤 /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 <오라리 詩 고은>
 
어찌 저리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은 ‘서북청년단’이 재건된다고 합니다. 재건위원장이라는 자가 “김구 선생 암살은 의거”라고 했다고 합니다. 무고한 제주도민 학살 주범 ‘서북청년단’을 이끌었던 우두머리가 지금 집권당 우두머리의 인척이랍니다. 4.3 기념일 열흘 뒤에 있을 선거에서 승리하리라 장담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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