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과 국민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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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과 국민의 선택
  • 박인규
  • 승인 2016.05.1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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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박인규 / (사)시민과대안연구소 소장
 
지금 세계는 선거로 시끄럽다. 정치가 원래 한정된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기에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권력의 향배를 놓고 다투는 선거가 늘상 시끄러운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조용하면 이상하다. 지난 4월에 우리나라도 총선을 치렀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박’을 내세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여당의 공천은 선거참패로 귀결되었다. 한편 한반도 정세 및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눈앞에 다가왔고, 한때 우리나라와 더불어 오랜 권위주의 통치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였다고 평가받아온 필리핀에서도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왔다.
 
집권을 위한 수단이 되었든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의 무기가 되었든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신의정책이 항상 국민 또는 유권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지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장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기 마련이고 이를 잘 수행하는 정치인을 세상은 유능한 정치인으로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엎고 당선되거나 승리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정책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책과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서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최근 미국과 필리핀의 대선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두 대선 후보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이념적 지향과는 무관하게 유권자의 표를 얻겠다는 포퓰리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퓰리즘은 '소외된 엘리트들'이 ‘기성 엘리트들’을 불신하며 대중에 대해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단순하고 감정에 기반을 둔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선악이분법을 통해서 동정심과 분노를 유발하는 언행을 구사하다.
 
공화당의 유력한 후보들을 줄줄이 낙마시키며 실현불가능해 보였던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기괴한 언행이 도마에 오르며 끊임없이 자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의 자질을 거론하는 것은 그가 단지 경선 기간 내내 주장해 왔던 한국의 방위비 분담문제로 인한 우리나라의 국익훼손 때문만은 아니다. 인류 혹은 미국사회가 오랜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소중한 가치와 정책들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거나 훼손하는 것으로 인해 심지어는 공화당의 주류 정치인들마저도 그의 자질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막말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직설적 화법을 구사하면서 공화당 주류 엘리트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의 식상함에 호소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전통적인 우방국들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유지 비용을 우방국들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겠다고 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이슬람에 대한 배제정책과 인종주의를 은밀하게 부각시키는 불법이민자의 추방을 주장한다. 미군주둔비 부담 문제는 오히려 미국의 국익 확보를 위해 스스로가 무임승차하려는 이기적인 발상에 다름아니다. 이슬람과 불법 이민 문제는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적 가치에 대한 도전에 다름아니다. 여기에 부자증세 등과 같이 공화당의 정책과 정면충돌하지만 대중들에게 호소력있는 정책을 결합시키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전략이다.
 
한편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당선자 역시 ‘필리핀의 트럼프’라 불릴 정도로 과격한 언행으로 눈길을 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국내적으로는 일부다처제 합법화와 부자증세, 치안개선과 부패척결, 민다나오 반군과의 평화적 대화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부다처제의 합법화는 오늘날 보편적인 혼인제도에 반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인권단체들로부터 다바오 시장 재임시 자경단을 조직하여 수천명의 사람들은 재판없이 처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10만명의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는 공약은 필리핀의 치안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더불어 자신이 재임 기간에 필리핀에서 가장 안정적인 치안을 확보한 다바오시의 경험을 고려하더라도 그의 인권의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민주주의의 신념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공약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독재자가 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그 또한 포퓰리즘 논란을 벗어나기 어렵다.
 
필리핀 유권자들은 1986년의 피플파워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소수 가문들의 정치독점과 이로 인한 정치부패와 사회불안정에 염증을 느껴왔고, 이러한 상황이 두테르테를 당선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다. 반면에 필리핀의 대선 결과와는 달리 비록 미국의 적지 않은 일부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한다 할지라도 미국의 집단 지성과 시민의식은 트럼프를 심판함으로써 적어도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포퓰리즘을 비판하며 원칙과 소신을 강조해 온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과 정책들이 20대 총선에서 심판을 받았다. 포퓰리즘에 대한 심판도 반포퓰리즘에 대한 심판도 모두 국민들의 선택이다. 국민들의 무지함을 아무리 원망해도 결국 책임은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 다만 국민들은 자신들이 요구가 근본적으로 무시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충분히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러기에 비록 선거에서 남발된 정책공약들도 다시 점검하여 현실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정쟁과 무능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19대 국회와는 달리 20대 국회는 여야가 상생하고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성숙한 정치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당선자. =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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