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움소리와 코푸는 소리... 영화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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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움소리와 코푸는 소리... 영화가 끝났습니다
  • 김인자
  • 승인 2016.06.17 0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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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영화보는 날



"여보세요~"
"네, 선생님~"
"아직 안 오셔서여~"
"아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 지금 가고 있어여.
그런데 선생님 두 시까지 아니예요?"
"아, 오늘은 영화보기로해서
한 시 반까지 오시기로 했어여."
"이런 그르셨구나. 얼릉 먼저 시작하셔여. 저 다 왔어요."

한 달에 한번 모이는 치매센터 사랑터의 보호자모임.
매달 매달 좋은 프로그램으로 보호자들의 마음을 살펴주시는 사랑터 선생님들.
이번 달엔 보호자들이 모두 모여 영화를 보기로 한 날입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모두 함께 영화관에 직접 가서 영화를 보기로 했으나 치매할무니하부지들 송영시간을 맞추지 못할거 같아 사랑터에 교육실을 영화관처럼 꾸미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는 사회복지사선생님 말씀입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저는 때빼고 광내고 빼닥 구두에 샬라라 원피스를 차려입고 사랑터에 갔습니다.
교육실에 들어가니 암막처리가 완벽하게 되어 있고 보호자분들이 영화를 몰입해서 보고 계셨습니다. 팝콘도 있고 과자도 있고 오징어도 있고 진짜 영화관같습니다. 구준회 할아버지 옆에 가서 조용히 앉았습니다. 영화상영중이라 반갑게 인사도 못드리고 목례만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영화제목은 '계춘할망'입니다.
윤여정씨가 계춘할무니로 나오고 김고은양이 손녀딸 혜지로 나오는군요.

우리 손지 혜지.
내가 너편 해줄테니 니 원대로 살라.
우리 손지 혜지.

나한테
할머닌
바다야.

선생님 그림으로도 고백같은거  할 수 있어여?

할망 ~
밭일할 때 썬크림 많이 발라여.
(너무 많이 발랐나ㅡ혜지가 자기 선크림을 계춘할무니에게 발라주며)

"오래 살고 볼일이다. 새끼헌테 잔소리도 다 듣고.
근디 몰 이렇게 많이 발러?
물자 귀한 줄 모르고."
"많이 발라야 돼.
그래야 효과가 있어."
"손지 덕에 호강한다."

마스카라까지 꼼꼼하게 바르고 이뿌게 화장하고 왔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저 오늘 화장 진짜 잘 받았는데 팬더 되겠습니다. 엉엉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모두들 우시나봅니다.

훌쩍훌쩍
팽~
울음소리와 함께 코푸는 소리와 함께 영화가 끝났습니다.

불이 켜지고 마음 여린 센터장님의 큰 눈도 새빨갛게 용가리눈이 되었습니다.

이게 누구야아~~
아유우,얼라네 얼라.
딸이 시집갈 나인데 이케 애기 같이 이쁘믄 우짜여.
김간호사 선생님이 놀리시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고, 이렇게 하고 다녀요 맨날 선머슴처럼 모자 푹 눌러쓰고 다니지말고.
이뿌네에.
요양사 선생님들도 다들 한마디씩 하십니다.
평상시에 제가 사랑터 갈때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나봅니다.
하긴  티셔츠에  청바지 캡모자
이 삼종을 늘 교복처럼 입고 다니긴 했지요.

"아이고, 누군가 했다."
정준회 할아부지십니다.
"못쓰겠다. 이르케 하구 다니믄‥"
정준회 할아부지가 제 어깨를 툭 치시며 말씀하십니다.
"왜여 할아부지? 숭해요?"
"아니, 너무 이뻐서어. 이르구 다니믄 객적은 것들이 귀찮게 쫓아댕긴다."

엘리베이터안
정준회 하부지 짝꿍인 영혜 할무니가 제볼을 자꾸만 자꾸만 쓰다듬으십니다.
"할무니~ 우리 영혜 할무니 그동안 못 뵌사이에 더 이뻐지셨네에~
오늘 화장물 몇 개 바르셨어요?"
"응, 두 개 발랐떠."
"아이구 그래서 이르케 이뻐지셨구나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차타러 나오는길.
영혜 할무니가 제 손을 꼭 잡고 걸으십니다.
택시를 세워 영혜 할무니와 구준회 할아버지를 태워드렸습니다.
"할아부지 한 달 후에 뵈어여.
영혜 할무니 건강하게 한 달 후에 뵈어요.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아프지말고 아라찌여~"
차문을 닫고 손을 흔드는데
금방 창문이 열립니다.

"언니야~
예쁜언니야 ~
어여 타아"

영혜 할무니가 저보고 택시에 타라고 손짓을 막 하십니다.
준회 할아버지는 어쩔줄 몰라하시고
저보고 얼릉 가라 손짓하십니다.
"미안해, 김선생. 이 사람이 자기 언닌줄 아나봐. 얼릉가여. 고마와."
문이 닫히고 차는 출발하는데
영혜 할무니 뒤돌아서 나보고 오라고 계속 손짓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
나는
영혜할무니의
예쁜 언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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