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초 세 번째 장편소설, '여자여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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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초 세 번째 장편소설, '여자여름' 출간
  • 배천분 시민기자
  • 승인 2016.07.15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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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가슴속에 스며들었을 그런 이야기


 

2016년 제6회 한국소설 작가상을 받은 김진초 소설가의 세 번째 장편소설 '여자여름'이 발간됐다. 지난 13일 굴포문학 동인들과 함께 출판기념 축하의 자리에서 문학 동료들의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이전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김진초의 소설은 특유의 문체로 주변의 사소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여자여름’이란 초가을의 며칠 동안 한여름처럼 볕이 따가운 날을 이르는 중앙아시아 우리 동포들의 짧은 계절 이름이다. 김진초 작가는 연애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여자여름』은 단순히 연애에 관한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는다. 자경, 규호, 명주, 정태 안에 내재돼 있는, 아니 우리 가슴에 나도 모르게 저장된 간절한 어떤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느닷없이 사라지는 막막함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가슴속에 스며들었을 그런 이야기를 펼쳐낸다.
 
빨랫줄에 매달린 A가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빨래를 물고 있을 땐 V로 꼿꼿하던 빨래집게가 덜덜 흔들린다. 역할이 없으면 사람이고 물건이고 흔들리며 존재증명을 하나보다. 형태상으로 볼 때 A는 안정감 있고 V는 불안하다. 한데 정작 흔들리는 건 A다. A가 고정되려면 필히 V가 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빨래집게 A는 홀로 꼿꼿할 방법이 없다. 빨래를 물고 지탱해야 고정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거꾸로 매달려야 한다. 불안정한 자세로 무언가를 물고 그 무게를 견뎌야만 고요해지는 운명인 것이다. 존재의 슬픔이 저기 매달려 흔들린다. A로 흔들린다.

낟알을 익히는 햇볕이 따가운 ‘여자여름’이다. 한 여자가 짧은 계절을 쬐며 무망한 낯빛으로 물을 준다. 쩨쩨한 불륜에 물을 준다. 먹다 남은 물이 든 생수병을 함부로 버리면 페트병이 볼록렌즈 역할을 해 산불이 난다고 한다. 때때로 물은 불과 동거한다. 몬스테라에 물을 주는 여자의 심중에도 분명 불이 들어 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언제부턴가 이 땅은 네 개의 계절 중 두 개를 잃었다. 봄이 올 때가 됐는데, 설레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고, 올가을엔 단풍놀이 좀 가야지, 벼르자마자 느닷없이 코트를 꺼내야 할 겨울이 들이닥치곤 했다.
봄가을은 기다리다 놓치고, 여름 겨울은 늘 준비 없이 맞는 것이다. 우리사이에도 두 개의 계절만 존재하는 걸까? 오래전 포기한 계절에 아무런 예고 없이 불타는 여름으로 쳐들어왔다가 단풍도 들기 전에 훌쩍 자기를 거두어 간 그. 그는 정말 떠난 것일까?’라며 느닷없이 사라지는 막막함을 얘기한다.

작가는 그 막막함을 주인공을 통해 명징하게 보여주려 하지만 그렇다고 대처할 어떤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면한 현실을 한발짝 한발짝 짚어 걸어가는 수밖에.
 
지각한 사랑을 견디는 법
 
빨랫줄에 A로 매달려 흔들리는 여자의 포기를 모르는 로맨스 판타지다. 추억이 많은 사람은 얼어 죽지 않는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와의 추억으로 갈증을 달래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몬스테라에 사나운 물줄기를 흩뿌리며 구멍을 뚫는다. 아름다운 상처를 조각한다. 이미 오래전 사랑에 도착했으니 다 이루었다고 자신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기다림이다. 사랑의 생로병사에서 ‘생로병’까지는 몰라도 ‘사’는 아직 아니라고, 뚜껑을 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고 우긴다.
아무도 모르게 들여놓고 사는 식구 하나가 여자를 살게 하는 에너지다. 결국, 삶의 에너지는 사랑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그것이 현재 진행형 사랑이든 옛사랑이든, 떳떳한 사랑이든 숨은 사람이든, 신통한 사랑이든 쩨쩨한 사랑이든, 맞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저자 김진초 소설가는 저서(총 8권)경기도 송추 출생으로, 1997년 계간 『한국소설』 신인상에 「아스팔트 신기루」가 당선되어 데뷔했으며 1999년 한국소설문학상에 단편 「귀먹은 항아리」가 추천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소설집 『프로이트의 목걸이』, 『노천국 씨가 순환선을 타는 까닭』, 『옆방이 조용하다』와 장편소설 『시선』, 『교외선』을 출간했다. 이노블타운에 장편 「머플러」를 연재했고, 우주항공 과학소설 「우주로 날아간 가마우지를」 공동 집필했다. 2004년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수혜 했고, 2006년 제17회 인천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Green 서구]와 [한국소설] 편집위원이다.
 
김 작가는 “20년이나 지각한 여자여름이다. 오래 기다린 여자여름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틈입하는 또 하나의 계절 여자여름. 이렇게 멋진 계절이름을 창조한 중앙아시아의 우리 동포들과 그 이름을 이 땅에 전해준 윤후명 선생님과, 『여자여름』을 책으로 엮어내게 해준 인천문화재단에 감사드린다.”라며 올해도 어김없이 따갑게 쳐들어올 여자여름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올여름은 『여자여름』을 읽어보자. 누구나 한 번쯤 가슴속에 스며들었을 『여자여름』 같은 계절을 꺼내보고 싶은 소설로 다가올 사랑을 마중하고, 지나간 사랑을 배웅하는 것도 또 하나의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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