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고민하고, 길 위에서 공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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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고민하고, 길 위에서 공부하는 것
  • 서진완
  • 승인 2016.07.20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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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유와 고민은 함께 찾아온다.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 까지, 365일 간의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요르단을 거쳐 터키로! 



요르단 암만의 전경 © 서진완
 

카이로를 떠나 요르단으로 넘어갔다. 요르단 암만(Amman)에서는 그곳에서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 딸 이은이를 만났다. 이은이로부터 요르단 생활 이야기를 듣고, 덕분에 제대로 된 요르단 음식도 소개받았다. 이색적인 음식은 물론 후식으로 먹은 아랍식 아이스크림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아쉽고, 그곳에서 잘 생활하는 것을 보니 장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잘 지내는 걸 보니 친구네 부부가 큰 딸을 잘 키웠구나 싶다. 

어딘가 가야하는 날은 긴장을 하게 되고 잠을 설치게 된다. 아침 6시 30분 하루 한 번밖에 없다는 버스를 타기위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사막기후인 이곳은 아침엔 날씨가 쌀쌀해서 외투 없이는 한기가 들었다.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무사히 페트라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국제학생증을 제시했지만 할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만 15세 미만인 작은아이는 입장료가 무료였다! 결국 되돌아가 환불을 받아왔고, 그 덕분에 8만원되는 입장료를 아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애즈시크(As-Siq)로 접어들었다. 애즈시크라는 좁은 계곡 사이로 난 길은 1.2km에 이르고 길고 깊은 협곡이 끝나는 지점에는 너무나 유명한 보물창고 알카즈네(Al-Khazneh)가 나타났다. 영화 인디애나존스에서도 나왔던 바로 그 장면으로 어떻게 고대에 이런 수준의 건축양식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우리 모두 아무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이 만큼의 높이의 바위 돌을 깎아서 이런 수준의 작품을 만들다니!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웅장함과 정교함, 그리고 화려함은 한 동안 말없이 그 불가사의한 작품을 지켜보게 만들었다. 폭이 30m 그리고 높이가 50m의 정면 조각문은 페트라를 상징하는 그 자체이며, 이곳 전체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하기도 하다. 우리는 한 동안 이곳에서 앉아 있었다.



페트라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으며 가족 모두 매 순간 크나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 서진완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일반적으로 가는 쉬운 코스를 중심으로 우리가 선택한 트레일을 추가하였다. 추가한 트레일은 언덕위에서 사람들이 걷는 중심 길을 내려다보면서 걸을 수 있어서 전체 페트라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루 종일 많이 보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트레킹을 하면서 얘기도 많이 하고 많이 웃었다. 

큰아이는 함께 배낭을 지면서 이제는 내가 의지해도 될 만큼 의젓하게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여행을 시작하고 난 이후, 오늘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다. 아침에 길을 걸을 때는 해를 등지고 걷게 되어 사진을 찍기에 좋았고, 오후에는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이번에는 역광을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군다나 페트라에서는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반사되는 빛에 의해 어떤 방향에 서 있는지와 관계없이 새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가는 방향에서도 뒤를 돌아봐야하고, 돌아올 때도 뒤돌아서 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매 순간, 모든 장소에서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이 밀려왔다. 페트라를 본 오늘 하루 행복했다. 아이들도 이제는 여행을 즐길 줄 아는 것 같다. 큰아이는 사진을 찍을 때 훨씬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이제는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과 영어로 얘기하는 중간에도 적당하게 들어와서 함께 대화에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제는 작은아이 차례다. 작은아이도 이전보다는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암만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사해를 찾았다. 사해는 정말 몸이 둥둥 뜨는 곳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곳에 우리 가족 모두 앞으로도 누워보고 뒤로도 누워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바닷물이 너무 짜서 채 두 시간도 못 놀고 샤워를 하고 돌아와야 했다. 바닷물이 입술에 살짝 닿기만 해도 너무 짜고, 바닷물이 묻은 손으로 눈이라도 만졌다간 사단이 난다.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전부 소금코트를 입고 있는 것처럼 변했다. 그래도 요르단에 가면 꼭 해보고 싶었던 사해에서의 수영을 경험했다. 수영을 하지 않겠다던 큰아이가 제일 신이 났고, 우리 가족 모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코란을 흥얼거리는 택시기사의 차를 타고 무사히 공항까지 올 수 있었고, 그렇게 터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해에선 모두가 물 위에 동동 떠다닐 수 있었다. © 서진완
 
터키에 도착한 우리는 터키 구석구석을 다니기 위해 3일 동안 이곳 이스탄불에 있는 주요 박물관 9개를 모두 볼 수 있는 패스를 구입했다. 소피아성당을 시작으로 우리는 동서양이 만나는 이곳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어떻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작은아이가 신이 나 하는 과학박물관을 시작으로, 지하저수조가 있는 ‘지하궁전’, ‘모자이크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후엔 갈라타탑(Galata Tower)와 노면전차가 다니는 이스티크랄(Istiklal)거리를 걸었다. 꽤 오래 걸어서인지 가족 모두 지쳐버렸다. 큰아이는 물집이 잡혔다고 하고 작은 아이와 아내도 지친 표정이다. “그래 쉬자!” 힘들 때는 동서양이 어떻게 만났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터키, 쿠사다시



터키의 블루모스크 © 서진완


터키 쿠사다시(Kusadasi)행 버스는 이스탄불에서 해협을 건너 아시아지역에서 출발한다. 터키에서는 많은 여행객들이 기차보다는 야간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버스는 편안했다. 쿠사다시로 오는 길 전체는 에게문명과 크레타문명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에게문명과 그리스 자연철학의 중심지였으며 당시 선진적인 도시들로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이다. 이오니아의 학문과 예술이 꽃피었을 그 곳에 지금도 남아있는 유적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니, 더욱 궁금해졌다. 


“바로 이 맛이야!” 
 


쿠사다시 거리 © 서진완

 
숙소는 빨간색 지붕에 흰색으로 칠해진 아담한 2층 펜션이었다. 눈앞으로 에게해가 보이고, 탁 트인 전망을 가진 테라스가 있는 곳이라 이곳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기엔 최적이었다. 비수기여서 관광객이 뜸하긴 했지만, 여름이면 대형유람선이 들어오고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숙소에 짐을 두고나와 슈퍼마켓에 들러 물과 식자재를 구입해서 돌아오는 길에 산책하면 좋을 것 같은 곳을 봐두었다. 신선한 빵과 과일, 맥주도 구할 수 있는 곳도 파악해 두었고, 그날 저녁 아내는 부족한 재료로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마술을 부렸다. 이 낯선 곳에서 닭볶음탕을 먹다니!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바로 이 맛이야!”

하늘은 맑고 에게해 바다는 더 없이 푸르다. 전설상의 아테네왕 아이게우스 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성지 아이가이에서 비롯되었다는 바로 그 에게해다. 이 지역은 위치상 아시아와 유럽의 접촉점에 위치하고 고대문명이 꽃핀 이집트에도 가까웠기 때문에, BC 1500년경부터 이 해역을 중심으로 에게문명이 생겨났으며, 고대 후기에는 그리스문화의 중심부가 되었던 곳이다. 플라톤이 "연못 둘레에 살고 있는 개구리"에 비유했던 것처럼 그리스인은 이 바다의 연안을 생활무대로 삼았으며, 지중해와 흑해로 이어지는 교통상의 중심적 위치로 인해 지금 바라보는 이곳 에게해는 주변 민족들 간의 잦은 충돌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 당시로서는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문화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도시라고 하지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모든 것이 다 있다. 아기자기한 가게와 집들이 예쁘게 늘어서 있다. 큰아이에게 지도를 맡기고 나와 작은아이는 뒤에서 걸었다. 시청도 보고, 에페소스(Ephesos)로 가는 미니버스 돌무쉬(Dolmus)가 출발하는 곳과 가격, 그리고 시간도 알아두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아내가 필요로 하는 빨간색 머그잔도 구했다. 아내는 숙소에서 잠시 자고 일어나서 훨씬 얼굴이 좋아보였다. 역시 아이들이 예상했던 대로 아내는 빨간색 머그잔을 좋아했다. 해가 지려는 시간에 맞추어 다시 해변으로 갔다. 현재는 육지와 연결된 이 섬 가운데 성채의 흔적이 남아있어서 고풍스럽다. 작은 물고기들이 보일 정도로 바닷물은 맑다. 큰아이는 방게를 잡았고, 물고기를 손으로 잡으려다 놓치기도 했다. 뜰채가 있었다면 바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물고기들이 많았다. 멀리 쿠사다시 항구가 보이는 이곳에서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에 잡았던 방게를 다시 놓아주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비가 약간 내리더니 점점 바람이 거세어졌다. 창문사이로 바람소리가 꽤 크게 들려 창문을 닫았다. 큰아이는 작은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쳐준다며 소리를 높이고 있고, 아내는 사진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올릴 글들을 작성했다. 나는 전자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신간서적을 다운로드 받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온 급한 일 때문에 서류를 작성하여 보냈다. 좁은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북적거리며 떠들고 지내는 것이 재미있다. 노래인지 랩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입에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날 때는 좋은 일이다. 아내는 컴퓨터에 담아둔 ‘나가수’ 음악을 틀었다. 모두들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며 신이 났다. 나는 읽다만 책을 다시 읽었다. 귀를 파달라고 오는 아이들과 아내가 침대에서 구르며 장난을 친다. 오후 늦게 바람이 잦아들었다. 거리에는 차들도 통행을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고양이와 개들이 가끔 거리에 모습을 보일 뿐 시가지 전체가 조용하다. 잘 먹고 잘 놀고, 그리고 잘 쉬고, 이곳에서는 우리는 잘 사는 법을 제대로 실천한다.


고대도시 에페소스


버스는 에페소스의 남쪽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북쪽 입구와 달리 개인적으로 찾아오면 이곳 남쪽 입구를 이용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잠시 걸어가자 눈앞에 유적들이 보였다.


에페소스에는 여전히 많은 고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서진완

에페소스는 기원전 6,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BC431-404)의 틈바구니 속에서 스파르타를 돕게 되었고, 이후 스파르타와 협력하기도 하고 대항하기도 한 역사를 가진 도시국가로서 당시 지중해의 모든 도시국가가 경험했듯이 이후 로마의 공격을 받았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는 로마의 아시아 행정구역 중 가장 중요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현재의 유적은 기원전 300년 전에 조성된 곳으로, 당시의 인구가 20만 명 정도의 규모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알려졌다고 하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도시계획에 의해 정교하게 조성된 도시다. 남쪽 입구에 경기장이 보이고, 이어서 매표소를 통과하면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대극장이 웅장하게 서 있다. 당시 최대 규모라고 하니 이곳이 얼마나 번창한 곳이었는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대리석거리를 지나가면 아름다운 도서관이 보이고, 바로 옆에 신전들이 있다. 아고라에서는 아이들과 토론하는 흉내를 내 보기도 했다. 큰아이는 법조문을 읊으면서 마치 법관처럼 판결을 내렸다. 종교와 정치 회의가 열렸다고 하는 이곳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토론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까 궁금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이곳에서, 당시 이곳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아이들과 함께 그 흔적을 찾아보았다. 신전과 도서관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작품, 공중화장실, 목욕탕, 주택, 우물, 그리고 아고라 등도 그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해서 굳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충분히 옛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낮의 더위 속에 길을 걷고 구경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어 쉽게 지쳐버리곤 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잘 떠났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 “10년 후 3년 정도 세계일주 여행을 할 생각”이라고 쓴 글을 보고, 먼저 여행을 감행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여행을 가게 하는 이유보다는 못 가게 하는 이유가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다. 누군가 현대인은 길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거세당한 채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원래 우리는 유목민처럼 마음껏 떠돌아다니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해진 규범과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포기하고 무엇을 위한 삶인지 모를 만큼 우리는 우리를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에서 고민하고 방향을 찾기 위해선 그저 이렇게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수많은 일정, 원고와 강의로 매일 긴장과 준비의 연속으로 그동안 정신없이 살았지만, 여행을 떠난 후부터는 이렇게 여유롭게 살 수도 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들 소식도 듣고 때로는 상담을 해 주기도 하면서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한다. 


여유와 고민은 이렇게!


“바다에서의 아침은 세상의 처음을 보는 것과 같다”_알베르 까뮈(Albert Camus)

새소리가 들리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쬔다. 바다의 색깔은 더욱 짙어졌고, 간간이 들리는 돌무쉬 지나가는 소리를 제외하고 주위가 조용하다. 이곳에 머물면서 "바다에서의 아침은 세상의 처음을 보는 것과 같다"는 알베르트 까뮈Albert Camus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테라스에서 있다 보면 매번 새로움이 느껴진다. 바다의 색깔은 수시로 달라진다. 지금은 수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해변에 앉아 있거나 물에 발을 담구는 사람들만 눈에 띈다. 큰아이는 그동안 학교에서 게을리 했던 부분과 앞으로 공부하고 싶은 전공 등에 대해 얘기를 시작했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것은 자신이 선택해야 하고 스스로 현실을 자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큰아이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자유롭게 해주었을 때 잘하는 부분과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어야 더 잘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아빠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동안 작은아이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분명해진 반면 큰아이는 향후 진로에 대해 여전히 고민이 많다. 아이가 내 의견을 물으면 이런저런 대답을 해 주지만, 그래도 스스로 결정하게끔 했다. 아이에게 “무엇을 할지 고민스럽다면 이번에는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도 생각해보라”고 했다. 큰아이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햇살이 강한데다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서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두고, 어제 읽다 만 책을 다시 꺼냈다. 차도 한 잔 끓였다. 요즘은 커피보다 홍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짜이를 즐겨 찾게 된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아내가 침낭을 덮어주는 줄도 모르고 잠이 들었다가 몇 시간 지난 후 깨고 보니,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작은아이는 테라스에서 머물면서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양의 과학과 수학문제를 풀었다고 자랑했다. 큰아이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서둘지 말라며,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한 번도 공부를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하지 않는 공부는 어떤 경우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아이는 테라스에서 누가 시킨적도 없는 수학문제 풀이에 열중이다. © 서진완
 
이렇게 여유로운 여행이 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아했다. 우리 부부는 수학이나 영어 공부보다는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살아가면서 더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산 위에 손을 잡고 올라가서 산 아래에 펼쳐진 넓은 들과 강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세상이 참으로 넓고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도전해 볼만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어떤 일을 택할지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다시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주위는 어두워졌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에게해를 다시 보러 나갔다. 차가워진 아내의 손을 잡았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있는 것을 확인했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일기예보에는 내일 흐리고 한 차례 비가 온다고 했다. 바람이 거세져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어둑해진 밤바다를 눈에 담기에는 충분하다. 쿠사다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으로 오랫동안 이 바다가 생각날 것 같다. 

<정리 = 이미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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