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학교에 줄 수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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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학교에 줄 수 있었던 것
  • 임병구
  • 승인 2016.09.2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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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추억속의 가을운동회 / 임병구(인천교육연구소)


말랑말랑’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처음 든 생각.
‘몸은 굳었는데 리듬체조?’,
‘보통 무리가 아니지.’
‘무리라는 걸 알면서 대들어 봐?’,
‘생의 리듬이 끊길 수도 있겠네.’
………

자판을 두드려 본다만 말랑말랑한 얘깃거리, 떠오르질 않는다. 학생들과 직접 만난 게 2년 전 일. 교실을 떠나면서 도통 글을 쓰지 못했다. 글에 대한 책임이 무겁고, 무거울수록 생각도 딱딱해져 왔을 터. ‘말랑’은 자연스러운 어떤 준비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 가깝지 끝 쪽은 아닐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말랑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간간이 철없는 교사를 자처하는 말랑말랑한 어른들을 부러워하는 게 요즘 처지다. 그들의 용기가 아이들과 만날 때 말랑한 교육이야기, 학교이야기가 피어난다. 그런 이야기가 많으면 교육이 흥할 테고 없으면 비극이겠다. 흥을 보태도 시원치 않을 판에 기운 빼는 소리는 피해야 할 텐데, 마땅한 얘깃거리가 없다. 난감하고 면구스럽다. 

남의 얘기를 옮겨볼까 했다. 들려오는 얘기 중 가려듣자면 말랑한 감동이 왜 없겠나. 다만, 옮기는 이로서 내키지 않는 게 문제. ‘잘 빠진 공산품보다 거칠더라도 수제품’이, 이 꼭지의 취지에 맞겠다는 첫 생각을 양보할 수 없다. 소소한 일상을 되짚어가며 굳이, 내 경험과 남의 경험, 우리의 경험으로 나눠 본다. 내 것이라고 우겨도 될 만한 일들조차 공개해서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대안을 제시하거나 제도로 접근해야 마무리가 될 일들이다. 사랑 고백을 하라는데 뒷감당 걱정부터 하는 꼴? 이럴 때 만만한 게 지난 시절 얘기다. 왜 ‘전원일기’가 장수했겠나. 현실은 대책을 요구해도 추억은 품이 넓으니.




운동회는 ‘내 마음의 풍금’처럼 애잔하게 남아 있어서 아름답다. 내 국민학교 시절 가을운동회는 온 마을 잔치이자 축제였다. 소풍도 마을 행사였고 월동준비도 온 동네가 나섰다. 전교생이 꿩 사냥을 한답시고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닐 때도 마을 어른들이 함께 하셨다.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캘 때도 손주들 행사를 할머니, 어머니들이 거드셨다. 행사 하나하나마다 여럿이 어울리다 보니 사연이 넘친다. 준비과정도 진진하고 당일 행사를 마친 후에 뒷말까지 풍성하다. 운동회는 학교와 집에서 함께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여학생들은 큰 육각성냥갑을 구해 부채춤 소품인 족두리 화관을 만들었다. 나는 오재미를 만들기 위해 다 떨어진 양말을 꿰맸다. 완성을 본 건 아니지만 조심조심 몇 바늘로도 박을 터뜨리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솟았다.

점심소쿠리들이 어머님, 할머님들 머리에 얹혀 여기저기서 등장할 때가 장관이다. 오전 행사도 행사지만 점심때 한 바퀴 돌며 맛보는 갖가지 동네 음식이 명절날 저리가라다. 먼 나무그늘 밑에서는 술판도 벌어진다. 여학생들 부채춤과 남학생들의 집단체조,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함께하는 계주가 백미다. 의자에 풍선 놓고 엉덩이로 터뜨리기는 해학 한마당이다. 남의 집 어르신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대놓고 입에 올릴 수 있으니 눈도 흐뭇하고 입도 걸지다. 시상식에서 공책 한 권 못 받은 학생들을 챙겨주는 뒷 인심까지 시골 초등학교 가을운동회는 즐길 거리 별로 없던 시대, 최고 이벤트였다.

나는 엉덩이로 풍선 터뜨리기를 세 번이나 실패했었다. 급한 마음에 끝까지 꾹 눌러 앉지 못했다. 한 번 안 되니 얼굴이 화끈대고 모두 다 내 엉덩이만 쳐다보는 듯해 속이 탔다. 두 번, 세 번, 결국 혼자만 남아 꼴찌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내 마음의 풍선’은 질기게도 오랫동안 마을 화젯거리였다. ‘아무개네 손주 누구누구’로 가을운동회 스타로 등극했다. 가는 곳마다 풍선하나 못 다루는 엉덩이라며 여러 손이 와 닿았다. 엉덩이를 쓰다듬는 감촉보다 수그린 얼굴에 와 닿는 눈길이 더 따가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가을운동회가 사라지는 추세다. 몇 주 동안 오후 수업을 전폐하고 운동회 연습을 시키는 일은, 이제 민폐다. 여럿이 힘을 모아 집단체조를 익힌다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선생님들에게도 운동회 준비는 억지로 해야 하는 잡무가 되었다. 행사장에 나와 천막을 치고 간식거리를 만들어 내는 부모님들이라고 운동회가 반가운 건 아니다. 이전처럼 온 동네가 함께 어울리는 운동회는 일부러 의미를 실어 준비해야 가능한 특별 이벤트가 되었다.

가을운동회가 사라져도 학교 행사는 차고 넘친다. 체험 학습이 다양해 졌고 학예발표 수준도 일취월장이다. 학부모 참여를 요구하는 행사가 많아 오히려 민원이 생길 지경이다. 동네마다 축제가 생겨 학교가 구심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공연장과 공원, 광장은 물론 상업화된 시설들이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학교운동회가 없어도 가을 하늘아래 모이고 웃고 떠들썩한 자리는 많다. 헌데, 옛 가을운동회가 안겨주던 푸근한 맛은 없다.

학교가 변해야 마땅하듯 운동회가 바뀌는 걸 뭐라 할 순 없다. 추억의 가을운동회는 사라질만하니까 사라지는 것이다. 학생들끼리 오순도순 꾸려가는 운동회가 필요하면 새 방식으로 남을 것이고 나름의 추억이 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학교와 동네의 간극이다. 학교운동회는 학생들이, 선생님들이, 학부모님들이 나서서 살리거나 없앨 수 있다. 근데 그건 학교만의 일이다.

추억속의 운동회는 마을이 학교로 들어와 있었다. 교실은 늘 동네 문화공간이었다. 몇 칸 안 되는 작은 학교였지만 두 세 교실을 트면 예식장이 되었다. 동네어르신 환갑잔치도 교실바닥에 잔칫상을 펼쳤다. 마을과 학교 사이에 경계가 없었다. 담장도 없는 학교가 사방으로 동네와 닿아 있었다. 가을운동회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학교와 마을이 나누며 쌓아온 교감의 정점이었다. 가을에 결실을 보듯 가을운동회로 학교에 대한 동네의 마음을 거둬들였다.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의 풍선’이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동네의 눈길이 풍선에 모여 집단의 기억이 되었다. 그 기억이 내게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추억 속에서는 부풀어 오른 채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풍선이 가을 보름달만큼 찬란하다. 가을운동회가 사라져도 마을이 학교에 줄 수 있는 마음은 남기를 기원한다. 그게 꼭 운동회가 아니어도, 품이 많이 드는 큰 행사가 아니어도 좋겠다. 저녁노을을 배경 삼은 학교음악회도 좋고, 하루 밤을 교정에서 새우는 캠프여도 좋겠다. 공유할 얘깃거리로 남아 언젠가는 이렇게 써먹을 수도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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