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작게 끙끙 앓는 소리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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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작게 끙끙 앓는 소리만 낸다
  • 김국태
  • 승인 2016.10.19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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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아이들의 자기발견을 위하여


하교시간, 교문을 나서는 우리 반 여학생들이 몰리면서 주변은 금방 떠들썩해진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여학생들이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그런데 소란스러워 들을 수밖에 없는 그 대화 도중에 항상 들려오는 말이 있다. 십대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라고 해봐야 학교와 학원, 어제 본 TV 프로그램과 아이돌에 대한 얘기가 전부인데, 그 모든 얘기를 잇는 말이자 중간중간 들어가는 추임새가 한결같이 “x라”이다. 몇몇 학생만 쓰는 게 아니고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앞 다투어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옆에서 듣는 내 귀에는 “졸x 졸x 졸x 졸x ……” 마치 시냇물 소리처럼 들린다. 그 말은 좋을 때에도, 싫을 때에도, 뭔가가 맛있거나 멋있어도, 그리고 슬프거나 아플 때에도 튀어나온다.
 
왜 이렇게 욕을 내뱉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면 우리 반 아이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습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아이도 “지저귀가 젖어서 x라 불편해” 라든가 “이 이유식은 x라 맛있어!”라고 말하며 크지 않는다. 말은 사회적 표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말의 범람에는 사회적 원인이 이다. 분명 청소년 시절에 내가 욕을 했던 이유는 아마도 세어 보이고 싶어서다. 거친 상소리를 하면 친구들보다 세다는 착각에 빠진다. 지금의 우리 십대의 욕설 문화 역시 또래 집단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경쟁적인 과시의 측면이 커 보인다. 그런데 실은 강해 보이고 싶다는 것 자체가 턱없이 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심리는 한마디로 ‘불안’이니까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욕의 뜻을 알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많은 욕으로나마 자신을 방어하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불안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십대들보다 욕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은 지금의 십대들의 처지가 더 처절하다는 뜻일지 모르겠다. 철저하게 서열화된 학교와 무자비한 학원 사이를 뺑뺑 돌며 시달리는 와중에 욕이라도 없으면 무엇으로 불안을 견딜까 싶다. 늦은 저녁 파김치가 되어 학원버스에서 내리며 나지막이 내뱉는 그 ‘x라’ 소리가 마치 숨통을 틔우려는 마지막 절규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제는 작게 끙끙 앓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경쟁해서 성공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확률이 거의 없는 성공을 위해 행복을 희생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이제 교육은 성공에 관한 것이 아니 아니라 행복에 관한 것이다. 성공은 극소수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지만, 행복은 누구나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디학교의 양희규 교장은 <10대 너의 행복에 주인이 되어라>라는 책에서 교육이 행복에 관한 것이라면 교육은 무엇보다도 ‘자기발견’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발견에 이르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쉽다. 각자가 가진 적성과 재능을 마음껏 계발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과정이 변하지 않는데 있다. 참으로 안타깝다.
 
현재 우리의 교육과정은 다양한 재능과 적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한두 가지 종류의 지능에 치우쳐 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에 따르면, 인간의 지능은 최소한 8가지이다. 그것들은 언어, 논리수학, 자연탐구, 음악, 공간, 신체운동, 인간친화, 자기 성찰, 자연 친화 등이다. 그런데 인간 지능의 종류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아마 수십 혹은 수백 가지가 될지 모른다. 우선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 입각하여 지금의 교육과정을 보자. 인간친화, 자기 성찰, 그리고 자연 친화 지능 등은 현대의 교육과정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음악, 공간, 신체운동 지능은 각각 음악, 미술, 체육 등에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교과들은 주변 교과로 간주되어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대의 교육과정아래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과 적성을 무시당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늘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되어 자기 발견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오늘날 공교육에서 대다수 아이들이 불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수밖에 있는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을 자기 발견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교사인 나는 이제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치유, 코디의 역할을 해야겠다. 우선, 치유다. 치유 없이는 자기 발견으로 가기 어렵다. 아이들은 열등감이나 패배 의식 그리고 어른들에 대한 분노에서 회복시키고,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해야만 이들이 자신을 알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코디이다. 자기 발견을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의 관심과 적성과 능력에 맞는 배움을 선택해야 하고 교사는 그것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미래사회는 이제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필요나 능력에 맞게 스스로 무엇을 배울지 결정하는 ‘평생학습자’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의 채널에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가 모든 관심과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다. 어디에서 답을 얻는 것이 좋을지 알려주면 되는 것이고,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에 조언자가 되면 되는 것이다.
 
행복, 자기발견, 치유, 코디 다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거대한 공교육의 학교 구조 안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확실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공교육에서 29년간 교사를 해 왔으나 뒤에 공교육을 떠나 홈스쿨링의 전도사가 된 존 테일러 가토 선생의 조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메시지를 주었다. “만일 당신이 공개적으로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하려면 당신은 얼마가지 않아 미쳐 버리거나 가족이 파괴되거나 하고 말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당신은 마치 비밀 요원처럼 독립적이고 비밀리에 행동해야 한다. 게릴라처럼 신속하고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거대한 조직을 와해하는 방식이다.” 라고.
 
참고로, 인천교육연구소는 이런 게릴라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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