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보아도 좋은 '나이아가라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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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보아도 좋은 '나이아가라 폭포'
  • 서진완
  • 승인 2016.12.21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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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리운 사람들과의 반가운 재회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Pelley 교수 부부와 함께 ⓒ 서진완

 
Palley할머니와...


케이프 코드 별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서진완
 

Palley교수 부부는 매년 여름이면 보스턴 남쪽에 위치한 케이프 코드(Cape Cod) 별장에서 지내곤 했다. 유학시절 이후에도 몇 차례 초대를 받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이곳에 오지 못했다. 마침 이번에 케이프 코드에 계시다면서 우리 가족 전체를 초대해주었다.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르라고 했지만 우리들의 일정이 있기 때문에 하루 밤만 머무르기로 했다. Palley교수는 유학시절 내내 나에게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대해주었던 지도교수이다. 메릴랜드대학교 교수였던 남편과 함께 한국에도 여러 차례 오셨고, 그때마다 우리 집에 모셨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두 분은 자상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기억되는 분들이시다. 
 
우리를 데리고 보여줄 곳이 있다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셨는데, 작은아이는 망설임 없이 수영을 하겠다며 함께 호수로 나갔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만이 이용한다는 호수였다. 물이 무척이나 맑고, 주변에 숲이 우거진데다 모래밭까지 있으니, 개인 해변이 따로 없다. 나뭇가지에 옷을 걸어놓고 Palley교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아내와 나는 그동안 근처를 산책했다. 이곳은 독특한 지형을 갖춘 곶이지만 이렇게 숲속을 걸으면 한적한 시골마을에 와 있는 듯했다. 호숫가로 돌아와서 우리도 물에 발을 담갔다. 금세 더위가 가실 만큼 시원해졌다. 
 


물은 맑았고 우리들도 신이 났다. ⓒ 서진완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Palley 교수는 아내를 부엌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아내를 며느리 대하듯 다정하게 해주셨다. 아이들도 말이 많아졌다. 그녀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오늘 세심하게 보았다며,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녀의 웃음은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한다. 

지금처럼 항상 건강해야 할 텐데... 숲속에 있는 집이라 저녁에는 풀벌레소리만 들려왔다. 잠자리에 들었고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Palley 교수 부부는 우리를 위해 커피와 아내가 좋아하는 메뉴의 아침식사까지 준비해 주었다. 한국에서 우리 집을 방문 하셨을 때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 둔 것이다. 그녀의 기억력 하나만큼은 언제나 알아줘야한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겼다. 차에 짐을 모두 옮기자 우리를 바닷가로 안내해주었다.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언덕이 멋진 백사장이 펼쳐진 곳인데, 겨우 서너 대의 자동차만 주차할 수 있다. 넓은 백사장에 몇몇 백인들만 보이고, 유색인종은 우리 밖에 없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선 한 동안 남은 얘기를 나눴다. 아침햇살에 비친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지만,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 안아주며 남은 여행기간동안 건강하길 기원해 주는 두 분과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메인 주를 지나 캐나다로 가자!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옥색빛 호수 ⓒ 서진완
 

캐나다와 인접해 있는 메인(Maine)주로 들어오자 역시 캐나다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우리 옆방에 머물렀던 두 명의 캐나다인들은 오토바이로 온타리오(Ontario)주에서 왔고, 아침 식사 때 만난 부부도 캐나다 퀘벡(Quebec)에서 왔다고 했다. 뱅거(Banger)에서 아카디아(Acadia)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많고 가재가 많이 잡히는 지역답게 여기저기 가재요리를 알리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보였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바다가 보이고, 그 위에 낮은 섬들이 아기자기 뭉쳐 보였다. 이곳은 미국 사람들이 다시 찾고 싶은 국립공원으로 가장 많이 추천되는 곳다. 2만 년 전에 대륙빙하 지형이 침강해서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에 섬 곳곳에 호수와 해안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해안가로 이어지는 드라이버길을 따라 가면, 옥색빛 호수를 만나게 된다. 호수를 보러가는 숲속 길에는 우리처럼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여유가 있다면 이곳에서 카누를 타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호수 전체를 한바퀴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멋진 광경은 한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공원에서 해발 466m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은 가능한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그곳에 올라서면 섬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펼쳐진 바다는 잔잔한 호수라고 해야할 것 같고, 해변의 절벽은 깍아지른 듯 서 있고, 그리고 뒤로는 옥색빛 호수가 발 아래에 동시에 펼쳐져 있다. “왜 사람들이 이곳을 꼭 가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네요!” 아이들이 가자고 할 때까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호수, 숲, 그리고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은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을 확 트이게 해준다. 



아카디아 국립공원에 올라 내려다 보면 절경이 펼쳐진다. ⓒ 서진완


캐나다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아뿔싸! 퀘벡을 입력했는데, 내비게이션에 캐나다 지도가 없다. 다행히 국경선까지 가는 길은 외길인지라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국경에 도착했다. 캐나다 관리는 여권을 확인하고 조심해서 남은 일정 잘 다니라고 덕담을 건네주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린데다 표지판이 모두 프랑스어로 적혀있어 더욱 긴장되었다. 

퀘벡 주 의회건물을 지나 성곽 안으로 들어가는 문부터 퀘벡의 윗동네(Upper Town)가 시작된다. 도로를 따라 예쁜 건물들과 가게들이 이어졌다. 고풍스러운 외형에 테라스에는 예쁜 화분으로 장식한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의 간판 또한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특이한 모양까지 하고 있으니, 시선을 딴 곳으로 옮길 수 없다. 이곳 거리에서 화가들의 그림도 볼 수 있고, 예쁜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할 수 있다. 거리를 나서면, 음악가들도 만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들과 색소폰을 부는 사람들, 그리고 기타를 치는 사람들 덕분에 골목마다 생음악을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거리는 활기에 넘쳤다. 
 



퀘벡 거리 곳곳에는 특이하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 서진완


아랫동네(Lower Town)로 내려가면, 더 멋진 거리가 나타난다. 계단에서 바라보는 전체 골목길은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쁘다. 골목을 걸으면서 가게마다 내 건 멋진 장식들을 보는 재미도 큰 즐거움이다. 우리는 가게마다 기웃거리면서 걸었다. 참 예쁘다. 윗마을에서 아랫마을까지 둘러보다 보면, 프랑스의 어느 마을을 걷는 것 같아 낯설지 않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풍스럽다. 퀘벡은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바로 그런 곳이다. 

토론토(Toronto)로 들어서는 시작 지점부터 오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Ontario) 호수가 이어진다. 호수 주변으로 길게 뻗은 시가지에는 트램이 달리고 거리는 소박하게 느껴졌다. 호수를 바라보며 섰다. 비린내가 나지 않고 큰 파도가 치지 않을 뿐 여기는 사실상 바다다. 해변에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보면, 여유롭게 수영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아이들은 마냥 모래위에서 놀고 있다. 하늘은 눈부시게 밝고 멀리 호수위에는 요트들이 떠다닌다. 그저 이런 환경을 부러워할 뿐이다.


유리바닥이 설치되어 있는 토론토의 CN 타워. 내가 다 아찔하다! ⓒ 서진완
 

CN Tower는 시내 중심에 있다. 입장권을 구매하고도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한참을 기다렸다. CN Tower의 높이는 약 554m의 TV와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탑으로 1976년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캐나다 국영철도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이 탑의 전망대에서 맑은 날이면 120km 떨어진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일 정도라고 했다. Tower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외부와 바닥에 유리 창문이 있어서 올라가면서도 발아래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타리오 호수 전체가 다 보였다. 

큰아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싫어하는 반면 작은아이는 오히려 신나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눈앞에 호수가 펼쳐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고, Tower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호수 멀리 요트들이 떠다니고, 구름 넘어 미국 땅이 손에 잡힐 듯 했다. 북쪽으로 고층빌딩 숲이 이어져 토론토대학교 캠퍼스가 눈 아래에 보였다. 아래층에는 CN Tower를 찾는 사람들이 꼭 경험해야 한다고 했던 바로 유리된 바닥이 있다. 유리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으며,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아찔하다. 작은아이는 유리 바닥에 누었다. "오빠도 같이 해봐!" 


양쪽 다 좋은데요? 


나이아가라 폭포와 무지개 ⓒ 서진완
 

캐나다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위해 하루를 더 머무르기로 했다. 폭포가 흐르는 중앙에 고트(Goat)섬이 있고, 이를 사이에 두고 한 개의 폭포(Horseshoe Falls)는 캐나다 쪽에, 다른 폭포(American Falls)와 가장 작은 또 다른 폭포(Bridal Veil Falls)는 미국 쪽에 위치해 있다. 폭포로 흘러내리는 물은 나이아가라 강을 이루어 이리(Erie)호에서 온타리오 호로 흘러간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문을 열자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폭포가 보였다. 언덕아래에 있는 공원에서 미국 쪽으로 바라보는 폭포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미국에서 바라보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든다. 이것 때문에 캐나다쪽에서 폭포를 봐야한다. 큰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어서 근처에 가면 비를 맞은 듯 옷이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물과 함께 일어나는 물보라를 보는 것과 직접 맞아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절벽 위에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강 위에는 유람선이 사람들을 태우고 폭포(Horseshoe Falls)아래까지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우리도 유람선을 타러 내려갔다. 절벽 아래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선착장까지 쉽게 내려갈 수 있다. 나누어준 비옷을 입고 배에 올랐다. 배가 폭포로 가까이 접근할수록, 50m 높이의 폭포에서 분출하는 엄청난 물보라로 인해 앞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이제 물보라는 소나기로 변해 배 주위는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나는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었다. 배가 돌아서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물살도 잠잠해지고 물보라도 그쳤다. 

해가 지고 불꽃놀이를 하는 시간에 맞추어 나이아가라폭포를 다치 찾았다. 해가 완전히 지고 폭포 주변으로 조명이 비춰졌다. 이 야경은 캐나다 쪽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색깔의 조명이 폭포를 비추면 하얀 물보라가 다양한 색상으로 반사되어 폭포 주변 전체가 멋진 조화를 이루게 된다. 하늘에 폭죽이 터졌다. 야경 속에서 바라보는 불꽃놀이는 또 다른 추억거리가 된다. 좋다!


캐나다에서 바라본 폭포 ⓒ 서진완
 

미국 쪽 나이아가라폭포로 들어왔다. 고트 섬으로 들어가는 것이 편리했던 기억을 더듬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가장 규모가 큰 폭포(Horseshoe Falls)로 걸어갔다. 거칠게 내려왔던 물살이 발아래에서 폭포를 이루고 까막득하게 떨어진다. 미국 쪽에서는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옆까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서 낙차가 큰 폭포가 밑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장면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아빠, 무지개!" 폭포 위에 무지개가 선명하게 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발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쳐다보면 마치 나도 아래로 빨려 내려가는 듯 한데, 그 순간 하늘은 무지개로 화려해졌다. 폭포의 끝자락에 위치한 전망대에 서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엄청난 물소리와 거대한 물줄기, 발 아래 떼를 지어 나르는 새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한 무지개까지 보면 자연이 만든 위대한 장관에 숙연해진다. 

아이들도 카메라로 이 순간을 열심히 담았다. 강 너머 캐나다 쪽 언덕 위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 본 캐나다 쪽 풍경과 오늘 본 미국 쪽 풍경은 어디가 더 좋은지를 논할 필요조차 없다. "양쪽 다 좋은 것 같은데요!" 맞는 말이다. 캐나다 쪽에서는 폭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이곳에서는 발아래 떨어지는 폭포를 직접 볼 수 있어 좋다. 모두 큰 즐거움이다. 


제자도 만나고 대학도 보고...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자를 만나러 인디애나 주의 블루밍턴(Bloomington)으로 향했다. 중부지방의 고속도로는 끝없이 펼쳐진 직선 길을 한없이 달렸다. 인디애나폴리스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오는 내내 옥수수 밭을 제외하고는 특징적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자는 박사과정을 이곳에서 시작한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고, 얼마 전에 종합시험을 마치고 난 후여서인지 한결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인디애나대학교 캠퍼스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지금은 방학이라 학생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개강을 하면 이곳 캠퍼스에서도 활기가 넘칠 것이다.


내쉬빌 밴드빌트대학교에 있는 밴드빌트의 동상 ⓒ 서진완
 

이제 다음 목적지는 작은아이와 약속했던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고향마을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가는 길에 내쉬빌(Nashville)에서 아내에게 컨트리 음악의 느낌을 아이들에게는 밴드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를 보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쉬빌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아담한 거리와 건물들 때문에 조그만 시골동네에 온 듯 다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흔히 생각했던 대도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이라는 내쉬빌에서 처음 본 것은 이들의 명예의 전당이었다. 밖에서 보면 실내체육관처럼 생겼지만 이곳이 음악의 도시라는 애칭에 부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도로를 따라 밴드빌트대학교를 찾았다. 마침 방학 중인지라 캠퍼스 내를 들어서자 너무나 조용했다. 잠시 차를 세워두고 잔디밭을 걸었다. 1873년 밴드빌트가 설립한 대학으로 남부의 하버드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사립대학이다. 학생 수는 약 7천명이 조금 안 되는 정도지만 엘고어 부통령이 이 대학 출신이며, 여러 분야에 걸쳐 명사들을 많이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다. 대학 본관 앞에 서 있는 작은 동상의 인물이 바로 이 대학을 설립한 밴드빌트였다. 생각보다 작은 동상을 보면서 왜 이렇게 작게 동상을 만들었을까 물었다. 

밴드빌트는 록펠러(Rockefeller)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 갑부가 된 사람으로, 남북전쟁 이후 사람과 재화의 물동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시기에 선박과 철도를 이용한 운송업에 뛰어들어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당시 가난했던 중남미 국가의 이권사업에 관여하여 엄청난 이득을 취해서 훗날 이들 국가에서 반미 반제국주의 운동을 일어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 면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했다. 또한 그의 자손들이 건설한 호화저택이나 공직자 매수, 과도한 인수합병 등으로 자본가의 나쁜 선례를 남긴 집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위 악덕 자본가의 이미지와 달리 그가 거액을 출연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이 대학교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동상을 작게 만들었을까요?"
"글쎄, 양심이 있어서였을까?" 

길을 나서면서 마침 USB에 담아둔 팝송 중에서 컨트리 음악을 틀었다. 아이들은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다른 음악을 듣자!" 볼륨을 높여서 Puff Daddy와 Faith Evans가 부른 "I'll Be Missing You"를 틀었다. 뒷자리에서 음악에 맞추어 고개를 흔들고 따라 부른다.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에 와서 힙합음악이라!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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