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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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의 기적
  • 최원영
  • 승인 2016.12.1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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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16)



풍경 #29. 세이코사의 포기
 
심리학 용어로 조건적 신념과 무조건적 신념이라는 게 있습니다. 조건적 신념은 ‘이러저러한 조건만 있으면 나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이고, 무조건적 신념은 ‘어떤 일을 해나가다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미련 없이 그 일을 버릴 수 있는 신념’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조건적 신념을 갖고 있지만 무조건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동안 들인 노력과 비용을 생각하면 쉽게 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 시계회사인 세이코사는 세계적인 시계제조업체입니다. 1945년도에 하토리 쇼우지가 사장에 취임했습니다. 그 당시는 일본이 패전을 했고, 이 충격으로 회사도 극심한 경영부진으로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하토리 사장은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품질 분야에 사운을 걸었습니다. 목표는 세계 시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스위스 업체들을 따라잡는 것이었지만, 십 년이 지나서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토리 사장은 기로에 섰습니다. ‘품질경쟁을 계속할까?’ 아니면 ‘다른 활로를 찾을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어요. 품질로는 스위스를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십 년 동안 그렇게 해왔는데도, 격차는 여전했으니까요. 그래서 세이코사는 그때까지 스위스 회사와 경쟁하던 기계식 시계 분야에서의 품질경쟁을 포기하고 새로운 제품 개발에 수년 동안 사운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제품이 세계 최초의 ‘수정 손목시계’였습니다. 당시 스위스 롤렉스사의 시계는 한 달에 약 100초가량의 오차가 생겼지만, 세이코사의 수정시계는 15초 정도의 오차에 불과했습니다. 1970년에 세이코사가 이 제품을 출시하자마자 세계 시장은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 1970년대 후반에는 세이코사가 마침내 세계 판매량 1위로 올라섭니다.

여태까지 해오던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두렵고 모호하지만 새로운 길을 선택했을 때 이렇게 행운의 미소가 손짓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풍경 #30. 상하이에서의 기적
 
‘내’가 울타리 안에서 있을 때는 안전할 겁니다. 동료들이 지켜주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울타리 밖은 왠지 무섭고 불안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새로운 창조의 기회는 아마도 울타리 밖의 불확실성 속에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모두가 불확실하다고 여기는 곳이나 모두가 두려워하는 그곳에 보석이 숨겨져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어느 가난한 시골에서 성장한 두 친구가 도시로 나가 살기로 작정하고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한 친구는 베이징으로, 다른 한 친구는 상하이로 가는 기차표를 산 후,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을 수 있었어요.

어느 사람이 “상하이 사람들은 계산적이라서 누가 길을 물으면 돈을 받고 가르쳐주지”라고 합니다. 또 어느 사람은 “베이징 사람들은 참 착해. 그래서 배고픈 사람을 보면 밥도 그냥 주더라”고 했어요.
베이징으로 가려고 했던 청년은 상하이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계산적이라면 자신도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서로 표를 바꾸어 길을 떠났습니다.
상하이로 간 청년은 빈병을 주워 팔면서 돈을 모았어요, 또 교외에서 흙을 가져다가 나뭇잎과 섞은 후 봉지에 담고서는 ‘화분흙’이라며 팔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일 년 후에는 화분흙을 파는 작은 회사를 차렸습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길가의 상점 간판들을 보았어요. 간판에는 먼지가 자욱해서 도저히 상호나 전화번호를 식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간판 청소 회사를 차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회사를 차렸고, 150여 명의 직원이 있는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베이징에 소재한 청소 전문 업체들의 현황을 파악하려고 베이징으로 간 그는 우연히도 길거리에서 어느 걸인을 만났습니다. 걸인은 맥주 한 병 살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요. 청년은 깜짝 놀랐습니다. 바로 5년 전에 헤어진 그 친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전을 택하느냐?’와 ‘위험을 택하느냐?’는 것은 순전히 각자의 몫일 겁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전함이나 익숙함 속에서는 새로운 창조나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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