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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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에 오르다
  • 서진완
  • 승인 2017.03.01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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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신비로운 문명과, 예상치 못한 고난

서진완 인천대 교수(행정학)는 지난 2013년 1월 3일부터 2014년 1월 2일까지. 365일 간의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왔다. 중·고등학생이던 두 아이와 아내까지. 온 가족이 함께 1년이란 시간을 붙어 있었다. '24시간 365일'을 꼬박 함께 여행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들의 기록을 <인천in>의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마추픽추에 오르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 ⓒ 서진완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미니버스를 타고 올라타이탐보(Ollataytambo)로 가는 동안 가파르게 솟아있는 산과 산이 이어졌고 깊은 산골짜기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바깥세상과는 단절하고 사는 듯 했다. 이곳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로 가야했다. 민간이 운영한다는 이 열차는 일반기차보다는 고급스러웠지만 가격이 이곳 물가를 고려할 때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이곳에서 마추픽추로 들어가려면 자동차로는 갈 길이 없고, 걸어서 가거나 반드시 이 열차를 타야만 했다. 

기차가 도착하자 높이 깎아지듯 솟아있는 산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 역 앞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밀집해 있고 그 사이를 지나 다리를 건너자 조그만 산골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은 1시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았지만 골목마다 특색 있는 가게는 물론 산골마을에서 볼 수 있는 집들은 이국적이었다. 광장 주변으로 연결되는 골목마다 레스토랑이 넘쳤고, 가게의 물건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지라 비쌌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 관광객으로 보였다.


아구아스 칼레엔테스 광장 ⓒ 서진완

잉카(Inca)문명을 찾는 입구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날이 밝았다. 숙소에 배낭을 맡기고 버스에 올랐다. 계곡을 따라 달리던 버스는 안개가 자욱한 산봉우리 사이를 지나 더욱 가파른 산으로 올랐다. 정상 부근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은 안개로 가려져 더 이상 산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마추픽추 입장권과 여권을 보여주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자 산을 감싸던 안개가 사라지면서 산허리를 돌아들어서는 순간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고 깜쪽같이 안개가 사라졌다. 시원한 녹색 잔디와 산봉우리가 눈앞으로 펼쳐졌다. 

“와! 마추픽추다!”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올라갔다. 발아래 계단식 밭이 있는 농경지역과 옆으로 이어지는 도시지역이 확연히 구분되고, 눈앞에 높이 솟은 와이나피추(Waynapicchu)와 뒤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마추픽추 산이 보였다. 사진으로 얼마나 많이 보았던 장면인가! 수 천리 떨어진 절벽 아래로 멀리 강이 흐르는 것이 보이는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다.  


마추픽추 ⓒ 서진완

높은 산들이 둘러싼 이곳은 지상에서는 절대 발견될 수 없는 숨겨진 곳이다. 햇살이 따뜻해서 겉옷을 벗고, 잔디밭에 앉았다. 잉카문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로 약속했는데, 지금 눈앞에 바로 그 잉카의 잃어버렸던 도시가 펼쳐져 있다. 깎아지른 절벽과 하늘을 찌를 듯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이곳은 해발 2,280m 높이다. 그래서인지 정상에 앉아있어도 호흡이 가쁘거나 힘들지 않다. 

잉카는 안데스문명을 낳은 국가명칭이기도 하고 그 당시 지배계층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기원전 1,000년경에 옥수수를 중심으로 농경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하는데, 눈앞에 펼쳐진 계단식 밭에서 곡식을 심었고, 일 년 중 11월부터 우기로 접어드는데 6개월 동안 비가 오기 때문에 따로 관개시설이 필요 없다고 했다. 농경지역 옆에는 수확한 곡식을 저장하는 집들도 보였다. 통풍시설이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들로부터 곡식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는 식물을 두고 그 위에 곡식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곡식을 보관해 왔다고 한다. 


상당한 수준의 도시 계획은 물론 당시의 석공 기술까지 엿볼 수 있다. ⓒ 서진완

위에서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면 이곳이 상당한 수준의 도시계획에 따라 건설되었으며, 석공기술 또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쿠스코의 태양의 신전 담벼락과 이곳 도시의 모습을 보면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궁궐, 신전, 그리고 집들까지 지붕을 제외하곤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는데, 종이 한 장 들어갈 틈 없이 정교하게 다듬어 쌓은 모습을 보면 감탄 할 수밖에 없다. 골짜기에 만든 계단식 밭과 돌로 만든 시가지와 거리, 그리고 지금도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물 등은 이들이 상당한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해준다.

16세기 후반 잉카인들은 이렇게 신비로운 도시를 버리고 더 깊숙한 오지로 떠났다고 하며, 그 뒤 약 400년 동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다가 1911년, 미국의 역사학자에 의해 다시 발견됐다고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충분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우리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이곳의 유적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멕시코에서 본 아즈텍 문명에 이어 이곳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성장한 잉카문명은 안데스산맥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추픽추를 보고 내려오는 길은 버스 대신 걷는 길을 선택하라. 계단을 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길을 걷다보면 이런 곳에 어떻게 이런 도시를 건설할 생각을 했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게 한다. 


호수 위에 사는 사람들


'매일 새롭게', 우로스 섬 ⓒ 서진완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 푸노로 가는 길은 리마에서 올 때와는 다르다. 산을 넘는 꼬불꼬불한 길이 아니라 계속 산과 산사이로 펼쳐진 분지 위를 달렸다.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7시간을 보내자, 눈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푸른빛의 호수물이 바다처럼 시원하게 보이는 이곳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3,820m)에 위치해 있는 티티카카호수다. 호수를 끼고 언덕 위에 있는 푸노 시내를 걸을 때면 여전히 호흡이 불편했다. 배낭을 메고 걸으면 호흡이 더 가파르고 힘이 들었다. 숙소계단을 이용할 때도,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도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뜨거운 물이 안 나와요!” 배낭여행객이 머무는 숙소의 경우, 어떤 하나가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적어도 한가지 꼭 있다. 이곳 숙소는 대체로 깨끗하고, 부엌을 사용할 수도 있으며, 직원들도 친절하고, 인터넷도 방안에서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어제부터 뜨거운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숙소 주인인 Fernando는 미안하다면서 오늘 아침에는 틀림없이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고치더니, 결국 미안하다며 오후에는 분명히 괜찮을 거라고 했다. 뭐든지 문제없다고 시원시원하게 말을 하는데, 되는 것은 없다. 
 


티티카카 호의 모습. 멀리서 보면 파랗고 아름다운 호수지만, 가까이 보니 녹색 부유물이 잔뜩 떠있었다. ⓒ 서진완

샤워하는 것을 포기한 채 미리 예약해둔 티티카카호 관광에 나섰다. 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가자, 파랗게만 보였던 호수에는 녹색 부유물들이 잔뜩 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새롭게’라는 뜻을 가진 우로스(Uros)섬에 도착했다. 우로스라는 인공섬은 해마다 갈대를 베어다가 썩어버린 바닥 위에 다시 쌓아서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만들었는데, 물과 닿는 갈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썩기 때문에 우기에는 일주일에 한번, 건기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새 갈대를 위에 덮어준다고 했다. 

갈대의 일종인 토토라(Totora)로 만들어진 움직이는 섬 위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스페인 침략을 피해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이들은 갈대를 엮어 떠다니는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망루와 집을 짓고 거의 600년 이상을 이렇게 살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집, 의자, 곤돌라 모양의 배 등 모든 것이 갈대로 만들어져 있다. 호수에 떠 있는 70여개의 섬에는 약 2,0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으며, 작은 섬은 두 가구 정도가 살기도 하지만 큰 섬에는 병원, 우체국, 박물관, 학교 등도 있다. 갈대 섬 위에는 그물망을 만들어 잡은 물고기를 양식하고, 화덕이 있어서 불을 사용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티티카카호를 보고 나와 아르마스(Armas)광장에 내렸다. 이곳도 여느 도시처럼 광장을 중심으로 구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성당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 호흡하는 것이 더 불편하고 어지러움 증세마저 더 심해졌다. 아내와 아이들을 앞에 먼저 보내고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아내는 길을 걷는 동안 계속 힘들어 하는 나 때문에 불안해했다. 천천히 움직이고, 요령껏 호흡을 해야 했다. 해발 3,900m에 위치한 라파즈로 가는 버스표를 보자 걱정이 앞섰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정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도시 라파즈


걸어서 볼리비아로! ⓒ 서진완

아침에도 Fernando가 약속한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샤워를 못한 채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푸른색 호수와 푸른색 하늘이 맞닿은 이곳 호수는 너무나 깨끗해 보였다. 멀리 볼리비아 쪽으로 설산들이 보이고, 주변의 산에는 나무들이 없고 황량하여 푸른색 호수물이 더욱 푸르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호수를 따라 언덕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달렸다. 국경에서 다다르자 모두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 다행히 출국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지키는 경비도 없고, 사람들이 그냥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국경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볼리비아 입국심사도 여권만 확인할 뿐 아무런 질문 없이 끝났다. 승객들의 입국심사가 끝나자 바로 버스는 출발했다. 볼리비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휴양도시 코파카바나(Copacabana)에서 우리는 다시 라파즈행 버스를 갈아타야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코파카바나 재래시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장사를 하는 볼리비아 아낙네들은 특이한 검은색 모자를 쓰고 망토를 걸치고 있다. 망토는 페루에서 본 것과 유사했지만, 모자는 중절모 같은 형태로 햇빛을 가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머리 전체를 덮지도 못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그래도 모자를 쓴 아낙네들의 활짝 웃는 모습과 잘 어울린다. 


라파즈 시내로 들어서다 ⓒ 서진완

라파즈행 버스에 오르고, 잠시 후 모두 차에서 내렸다. 페리를 이용해서 티티카카호수를 건너야 했다. 볼리비아에서 보면 코파카바나가 있는 쪽은 페루 쪽 영토에 붙어 있는 위치인지라 마치 섬과 같이 페리를 이용해서 호수를 건너는 것이 훨씬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버스가 호수를 건너고 나자, 다시 버스에 올랐다. 호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척박한 대지가 이어졌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단조롭기만 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뜨자 주변에 짓다 만 건물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날리고, 콘크리트색이 그대로 드러난 건물이 이어졌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과 낡은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달리다가 내리막길에 접어들면서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아빠, 보세요!” 갑자기 산 아래 계곡사이로 펼쳐진 엄청난 규모의 도시가 보였다. 

회색빛으로 보였던 건물들이 점점 낡고 초라한 집들로 드러났고, 시내로 들어서자 도로는 좁고 군데 군데 패여 있으며, 차량은 엄청난 매연을 뿜어내고,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려댔다. 매연으로 공기는 탁해서 숨 쉬기 힘들고, 건조한 탓인지 입술은 타는 듯했다. 사람들이 도로를 천연덕스럽게 건너고, 거리는 지저분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고풍스러운 스페인식민지 시대의 건물로 시설 자체는 만족스럽다. 마룻바닥을 걸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 자체로도 오래된 건물에 대한 운치로 느껴졌다. 아내는 피곤한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에 나도 잠을 청했다. 그러나 호흡이 불편했기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어지 못했다. 답답한 느낌이 들 때는 순간적으로 더 힘들다.


라파즈 시내에서 ⓒ 서진완

숙소에서 시내중심가로 가는 내리막길을 따라 걸을 때는 그나마 괜찮다. 그래도 가능한 천천히 걸었다. 근처에 있다는 한국식품점을 찾아 한국음식점 소개도 받고 필요한 정보도 구했다. 이곳에서 20여년을 생활하셨다는 교포 한 분은 우리에게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분이 알려준 은행을 찾아 볼리비아에서 사용할 현금을 인출했다. 지난번 카드분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내 주변을 감싸고 망을 봐 준다. 

푸노에서 찢어진 큰아이 배낭도 이곳에서 버리고, 새로 구입할 겸 재래시장을 찾았다. 라파즈의 도시 구조가 평지가 아니라 언덕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어서 걸어서 다니는 것이 쉽지 않다. 아내도 이번에는 조금 호흡하는데 힘이 든다고 했고, 나는 여전히 힘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언덕으로 올라가야 해서 택시를 이용했다. 샤워를 하고 잠시 침대에 누어서 쉬려고 했지만 호흡이 더 불편해서 일어나야 했다. 이곳에선 무언가에 집중하기도 힘들다. 

밤이 깊어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이 바로 한가위! 보름달을 보면서 함께 소원을 빌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이번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라파즈에서 보름달을 본다는 기분은 남달랐다. 여행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면서도 잘 이겨왔다. 오늘까지 260일 동안 여행하면서 지치지 않고 잘 이겨내 준 가족 모두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더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숙소 앞 도로에서 보름달을 쳐다보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하면서 자기들도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왜 보는지 아마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밸리. 황폐한 사산에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로 둘러쌓여 있다. ⓒ 서진완

다음날 라파즈 외곽에 있는 문밸리(Moon Valley)를 찾는 길에 근처에 있는 한국식당을 찾아갔다. "맛이 이상해요!" 아이들은 한국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했다. “정말 그러네.” 잘한다고 추천을 받고 찾아왔는데, 생각보다 음식 맛이 신통찮았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이라 어지간하면 괜찮을텐데, 기대 밖으로 별로였다. “너무 비싸요!” 

버스를 타고 도착한 문밸리는 황폐한 산에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로 둘러 쌓여있는 곳이다. 규모는 작지만 브라이스캐년과 터키의 카파도키아의 모습을 조금씩 닮았다. 라파즈 시내보다 600m 낮은 곳에 위치한 덕분에 이곳에서 호흡하는 것이 한결 편안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자 탁한 공기와 건조한 날씨 탓에 눈이 따갑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물을 마시며 입술을 적셔보지만 잠시 뿐이다. 여전히 호흡은 불편하고, 집중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정리 = 이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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