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서울 정상회의를 성공시키려면…
상태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성공시키려면…
  • 박영일
  • 승인 2010.09.03 1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제시평] 박영일 교수 /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정부는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분에 넘치는 열정과 노력을 기울이고 국민들의 협조를 당부해왔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성공이고, 서울회의에서 논의할 의제와 합의할 과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당치도 않게 ‘국격을 높이는 계기’,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서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 창출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기회’ 등 허황된 구호만 난무한다. 
  
   G20의 개최는 한국의 높아진 국제적 위상을 반영한 것이며, 우리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정부의 당부가 없더라도 국민 모두가 성공을 위해 당연히 협력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호사스러운 회의장이나 연회장을 제공하고 큰 탈 없이 깔끔하게 치르는 것이 성공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국민적 희생은 물론 부담하게 될 비용이 너무나 막대하다. G20의 출범한 배경 성격, 부여된 위상과 역할에 합당하게 세계인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에 티끌 하나라도 기여해야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기 근절을 위해 출범한 G20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이 기존에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해오던 선진 7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및 유럽연합(EU))과 함께 한국,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남아공, 러시아, 터키 등 각 대륙의 12개 주요 신흥국 정상을 초청하여 금융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한 데서 비롯됐다.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에 있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범했다. 일차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를 개혁하여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재발을 근절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경제의 불안정, 불확실성, 구조적 불균형을 제거하여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할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20개 참가국은 전 세계 총생산(GDP)과 교역의 85%를 차지하고 있어 대표성에 있어서나, G7이나 UN과 비교하여 합의 도출의 효율성에 있어 세계경제규범을 논의할 최상위 국제협의체로서 손색이 없다. 특히 지난 한 세대에 걸친 고도성장으로 세계경제의 성장과 구조변화를 견인해온 신흥국들이 선진국들이 제정한 경제규범을 수동적으로 수용해온 처지에서 탈피하여 세계질서 확립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문제는 갈수록 복잡하게 얽히는 세계경제구조 속에서 20개나 되는 많은 국가가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서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이냐에 있다. 위기관리를 위한 일시적 협의체로 끝날 것인지, 세계경제질서를 재구상하고 재구축하는 상설 협의체로 정착될 것인지는 앞으로의 업적과 성과에 달렸다.

   지난 2년 동안 G20은 무엇을 했는가

   앞으로 G20의 위상과 역할을 가늠하기 위해 지난 네 차례에 걸친 회의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자. 금융시장의 붕괴가 실물경제로 급속히 확산되어 공황공포분위기가 고조되었던 2009년 전반까지만 해도 경제회복을 위한 국제공조와 신자유주의적 국제금융질서의 개혁에 이의가 없었다. 1998년 제1차(워싱톤), 2009년 4월 제2차(런던) 회의에서 통화공급 확대와 이자율 인하, 재정지출의 확대 등 경제회복을 위한 국제공조와 금융위기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규제 강화, 금융기관 감독 강화, 국제금융기구 개혁 등 국제금융질서 재편에 손쉽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각국이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위기 확산을 막을 수 있었고 경제회복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었다. 다만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금융과 민간부분의 부실이 정부와 공공부분의 부실로 둔갑하고, 막대한 재정적자가 지속적인 경기회복을 불투명하게 한다는 한계는 있었지만 여하튼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 조처를 끝장내고 은행과 사모펀드,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자본규제를 포함한 국제금융질서 재편의 필요성에도 공감했었다. 예를 들면, 미국은 금융위기 재발방지를 위해 감독기능의 대폭 강화, 영국은 일련의 강력한 자본규제책, 독일과 프랑스는 단기성 외환거래에 대한 과세(토빈세) 도입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회복국면으로 돌아서고 위기의식이 이완되면서 G20의 위상이 비걱거리기 시작했다. 과도한 금융규제가 오히려 경제회복에 해롭다는 이유로 금융자본이 반발하고, 경제회복의 불균형으로 정책의 우선순위에 참가국 간에 견해 차이가 나타났다. 그 결과, 2009년 9월 제3차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는 이전에 공약한 투기자본규제 등 국제금융질서 재편을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에 대해서 어느 것 하나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단지 세계경제의 주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포럼으로 G20의 정례화에 합의했을 뿐이다. 바로 이 자리에서 서울회의가 결정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 6월 제4차 토론토회의에서는 이전의 개혁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G20에 짙은 먹구름이 감돌고 무용론까지 제기되었다. 금융개혁의 구체적 내용인 은행세, 금융거래세(토빈세)의 도입이나 불균형성장의 시정 방안을 놓고 선진국 간, 선진국·신흥국 간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전의 합의사항이 사실상 파기되고 자본건전성, 대형금융기관 감독, IMF·세계은행의 개혁 등 금융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은 물론, 경기회복을 위한 국제적 공조방안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언론은 토론토회의에서 각국이 ‘의견을 달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agree to disagree)고 비아냥댔었다. 결국 각국이 자국 사정에 맞춰 제 갈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협의가 필요 없다고 공식으로 선언한 격이었다.   

   보통 시민들이 무엇 때문에 데모를 하는가

   금융개혁과 투기자본규제에 실패함으로써 G20은 보통사람들의 이익과 기대를 저버렸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 지배의 시대를 끝장낼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반면에 국제공조를 명분으로 각국 정부는 이미 막대한 공적자금(보통사람들의 세금)을 투입하여 금융자본이 입은 손실을 보전해줬다. 그 여파가 긴축재정,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를 낳았고, 종국에는 실업률이 치솟고 임금소득이 줄어들어 보통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게 되었다.   
  
   공정하고 안정된 세계경제질서를 새롭게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던 G20의 구체적 성과가, 의도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진 자(금융자본)에는 축복, 가지지 못한 자(보통사람, 서민)에는 재앙이 돼버렸다. 서민에게서 빼앗아 금융자본가에게 나눠준 꼴이 된 것이다. 더구나 일부국가에서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연결되면서 불황의 더블 딥(double deep)이 우려돼 경제위기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세계경제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리면 빠짐없이 시민단체·노동자·농민의 항의 집회가 이어지는 것이다. 과실은 부자가 얻고 부담은 가난한 자가 짊어지는 불의한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맞선 저항이고 투쟁이다. 런던, 피츠버그 등 G20 회의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토론토에서는 G20의 배신에 분노한 시민단체·노조의 시위가 격렬했었고 규모도 컸었다. 경호비용만 약 1조원에 달했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금으로 도박판을 벌이는 투기자본이나 이를 방관하는 정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정책 기조의 전환부터

   다가오는 제5차 G20 서울정상회의는 이렇게 G20의 위상과 역량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맞는다. 전망도 밝지 않다. 글로벌금융위기가 금융규제의 실패에서 비롯된 점을 상기하면 금융규제강화는 G20에 부여된 지상명령이고 새로운 질서 확립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서울회의의 최우선과제는 금융기관 및 투기자본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통제라고 하는 출범 당시의 모멘텀을 되찾는 일이다.  
  
   의장국으로서 한국 정부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참가국 입장을 조율해낼 수 있는 철학, 유연하고 실용적인 교섭력, 지적 창의성을 지니고 임해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G20의 지향과는 대척점에 있다. 진정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의 근본에 있어야 할 철학, 경제정책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적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고민 없이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만을 믿고 있다면, 국가의 불행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