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동에 대한 단호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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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동에 대한 단호한 부정
  • 한인경
  • 승인 2017.05.08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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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 공간 ⑩]『나는 부정한다, DENIAL』/믹 잭슨 감독

‘한인경 시인의 시네 공간’은 남구의 예술영화관 ‘영화공간주안’과 한인경 시인의 협약하에 <인천in>에 리뷰하는 기획입니다. 한달에 1~2회씩 ‘영화공간주안’이 상영하는 예술영화의 예술적 가치 및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눕니다. 


“모든 의견이 평등한 것은 아니다.”


개  봉 : 2017.04.26. 개봉 (110분/미국,영국)
감  독 : 믹 잭슨
출  연 : 레이첼 와이즈, 티모시 스폴, 톰 윌킨슨, 앤드류 스캇
등  급 : 12세 관람가



출처 : 영화『나는 부정한다』


미국 에모리 대학의 홀로코스트 연구 권위자 데보라 립스타드 교수(레이첼 와이즈)는 <홀로코스트 부정하기:진실과 기억에 대한 커져가는 비난>라는 책을 출간한다. 이 책에는 어빙(티모시 스폴)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로 언급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신나치즘, 극우파, 인종차별주의자, 반유대주의자인 영국의 데이빗 어빙(David John Cawdell Irving)은 이 책을 출판한 펭귄사와 립스타트를 책의 내용에 자신을 비난하는 부분이 있으며 그래서 자신의 전문가적 존재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죄로 고소한다.

립스타트 교수 강연장,
립스타트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다. 한 학생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대화해야 하는 것이 민주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립스타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의견 즉 왜, 어떻게......등등에 대해선 논쟁할 수 있지만, 홀로코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생각임을 강조한다. 조용히 듣고 있던 어빙은 홀로코스트가 있었다는 증거를 갖고 와 보라고 소리친다.



출처 : 영화『나는 부정한다』


이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홀로코스트’.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부정하는 영국의 역사학자 어빙.
홀로코스트 믿음의 중심에는 이름만 들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곧 아우슈비츠는 홀로코스트 부정에서도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을 잘 알고 있는 어빙은 자신에게 유리할 것 같은 영국에서 고소한다. 영국과 미국은 유죄 입증에 대한 형법의 근간이 완전히 반대이다. 미국에선 무죄추정주의을 원칙으로 한다. 고소를 한 사람이 상대방의 말이 거짓임을 밝힐 책임이 있다. 즉 유죄를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반대로 고소를 당한 사람이 자신이 무죄임을 증명해야한다. 립스타트 교수는 갑자기 피고인 신분이 되어 자신이 한 말들, 즉 책에 쓴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데이빗 어빙의 주장은 거짓이고 즉 홀로코스트는 존재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립스타트는 수십 년 지난 지금 증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David John Cawdell Irving 
영국 대공습(1940~1941, 독일 공군이 영국에 가한 공습) 동안 런던에 폭탄 맞은 건물들 사이로 뛰어다니며 ‘히틀러 만세’를 외쳐댔다고 한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독일어를 배웠다. 정치적 선동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즉 아돌프 히틀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그의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비주얼 화려한 볼거리는 제공되지 않는다. 
영화는 벽과 책상이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변호사 사무실과 32회의 공판이 열린 영국 런던의 왕립 재판소를 오가며 전개된다. 영국 왕립 재판소 배려로 재판의 전 과정은 실제 법정에서 촬영되었고, 오가는 법정 공방도 실제 공식 기록문에서 그대로 발췌했다고 한다. 약 10여 분간 스크린에 나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일부 원경(遠景) 외엔 대부분이 세트라고 한다. 수백만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영화화되었을 경우 훼손될 수도 있는 진실을 지키기 위해 상업적 분위기를 없앴으며,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출처 : 영화『나는 부정한다』


데이빗 어빙은 스스로 소송 당사자가 되기 위해 혼자 변론을 한다. 립스타트 교수 측은 미국 캠브리지 대학의 근대학 교수와 대학원 학생들, 8명의 역사학 전문가 증인, 영국의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변호사로 팀이 짜인다. 세계적 관심 속에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한 후원인들이 보내는 후원금이 모여지며 변호인단은 무료 변론을 자처한다.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기 쉽다. 그래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상상하며 영화를 선택했다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 재판의 결과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영화는 치열한 법정 공방보다는 피고측의 변론에 중점을 두며 피고의 승리로 몰고 간다. 



출처 : 영화『나는 부정한다』


판결을 앞둔 공판에서 판사는 리차드(톰 윌킨슨) 변호사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반유대주의자, 극단주의자라면 그는 정말 반유대자일 수도 있겠죠? 저분은 자신이 말하는 걸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핵심이고 그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패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판사는 위 질문을 던진 후 이틀 후 최종 공판에서 어빙이 제시한 자료들에서 명백한 오류와 왜곡이 있고 거짓 증거임을 이유로 피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거짓에 대한 응징이다. 침묵하는 진실은 위태롭고 퇴색될 수 있다.

변호인단은 조직적인 팀워크를 보이며 자료 검증과 변론에 일사분란하다. 감정과 신념과 사회적 믿음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인 사실만 증거 자료로 제시한다. 심지어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기억일 수밖에 없는 증언도 거부한다. 오로지 팩트로 어빙의 오류를 공격한다. 
이 재판은 4년간 32회의 공판 끝에 2000년 4월11일 피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역사적으로 누구도 의심치 않는 팩트를 어떤 사람은 없었다고, 거짓이라고 부정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증명해 보이라고 고소까지 한다. 
본인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믿음,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는 기억하고 확신한다. 그러나 갑자기 어느 부분이 거짓이니 사실이라면 증명해보라는 공격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게 한다. 립스타트처럼 어쩌면 유리한 환경에서 당당히 응대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모든 상대가 거짓에 대한 사회적 신념만을 믿고 버텨낼 수 있을까? 진지해진다. 믹 잭슨 감독의 제작 의도가 읽혀진다.

볼거리.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다.
관록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배우인지 실제 인물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고 영화 내용에 집중하게 한다. 립스타트 변호인단의 얼굴에는 성취감과 그에 따른 만족감으로 에너지가 느껴진다. 먹잇감을 발견한 순간 오히려 침착하게 다가가는 맹수의 지혜로움을 보는 듯하다. 그들은 느낌과 목적과 동기가 뚜렷하다. 자신들이 역사적 획을 긋는 판결을 끌어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마치 영국의 법정에 참관 중인 듯한 착각이 든다. 어빙의 기울어진 역사관에 대한 정확한 팩트 인지, 오류에 대한 증명, 거짓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빈틈없는 논리와 간간이 보여 주는 인간적인 울림, 그러나 감정의 과부하 없이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역사적 기록을 왜곡한 것은 의도적이었으며 그런 사건들을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믿음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렇게 함에 있어 역사적 증거를 왜곡하고 조작함과 관련이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피고 승소 판결을 내린다.”



출처 : 영화『나는 부정한다』


재판 관련 수작 한 편을 추천한다. 1995년도 개봉된 마크 로코 감독의 『일급살인』이다. 이 영화도 실화에 근거한다. 실화의 주인공인 헨리 영 때문에 많이 우울했고 그 역할의 배우 캐빈 베이컨의 명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던 영화다.

먼 나라 실화가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은 끈질기게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신념만으로 그들의 역사적 거짓 폭력에 침묵 또는 소극적 응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을 한다. 신념과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이 사실을 지키기 위해 국민 대다수의 응원 가운데 많은 분이 팩트 위주로 거미줄 같은 논리로 대응 중이라 알고 있다. 위안부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비단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역사적, 사회적 믿음에 대하여 어이없게도 증거를 갖고 와보라는 폭력적인 주장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과 어떤 점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일까?
홀로코스트가 존재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재강조하기 위해서? 아니다. 거짓에 대한 부정 즉, 침묵하지 말고 맞서야 함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란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 말이 거짓이어선 안된다. 책임이 따르는 권리다. 언론의 자유란 것을 수단으로, 방패막이로 삼아 어떤 파괴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영화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비슷한 사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위로가 될 영화다. 

“모든 의견이 평등한 것만은 아닙니다.”

판결 후 기자 회견장에서 립스타트 교수가 보내는 단호한 메시지다.

한인경/시인·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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