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앉으셔요. 암만해도 자리가 좀 좁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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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앉으셔요. 암만해도 자리가 좀 좁으시죠"
  • 김인자
  • 승인 2017.06.3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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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전철 좌석

나는 전철을 타면 꼭 가서 서는 자리가 있다. 바로 노약자석앞이다. 노약자석은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내맘 대로 실컷 볼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테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하고도 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야기 보고의 장소다. 그런데 이것도 몇 년 전의 얘기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벙싯벙싯 웃음이 나와 아무리 먼 거리를 서서 가도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타는 지하철은 노약자석에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아계시는 경우가 드물어서 어느 순간부터 나도 궂이 노약자석을 찾아가며 신경써서 타지 않았다.

합정서 점심 약속이 있어 서울 가는길.
출퇴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전철안이 콩나물시루는 면했으나 그래도 앉을 자리는 없어서 좌석 앞에 가서 섰다. 내옆에는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서 계셨다. 연세도 있으신데 앉아계신 분 중에 누가 자리 좀 양보하지. 하며 좌석을 둘러보니 빈 자리가 있었다. 그것도 두 자리가 있었다. 여행을 갔다오는지 아님 가는 중인지 큰 트렁크 한 개는 통로에 나와 있고 아주머니 한 분이 삐닥하게 앉아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똑바로 앉으면 두 사람이 충분하게 앉을 두 자리를 그 아주머니는 삐닥하게 앉아 한 자리는 자기가 또 한 자리는 자기 손가방에게 떡하니 내 주고 있었다.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앞에 서 계시는 걸 분명히 봤을텐데. 그 아주머니는 못 본 것 인지 모른 체 하는 것인지 핸드폰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후~~~ 하며 큰 숨을 힘겹게 내쉬는 할아버지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너무도 죄송스런 마음에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에게 깊숙히 고개 숙여 죄송하단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가볍게 목례로 답을 하셨다. 할아버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안스럽고 너무도 죄송했다.

"할아버지 힘드시죠~" 하며 입밖으로 소리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살짝 여쭈니 할아버지가 역시 소리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괜찮아" 하셨다.
할아버지가 선한 웃음으로 하얗게 웃으시는데 갑자기 뼝!뼝!뼝!하는 아주머니의 핸드폰 게임기 소리가 귀에 심하게 거슬렸다.
내가 지하철을 타면 궂이 자리에 앉는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심술쟁이처럼 일부러 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못생긴 아줌마 때문에.
일단은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아줌마 무릎 위에 손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랬더니 게임에 집중해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줄 알았던 아주머니가 내손을 탁하고 쳤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좁은 자리에 비비고 앉았다. 그때까지도 그 못생긴 아줌마는 가방을 치우지도, 똑바로 앉지도 않았다.
대신 자기옷을 뭐 묻은 것 처럼 탁탁 털었다. 나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할아버지팔을 끌어 자리에 앉혀드렸다.
할아버지가 나 한번 쳐다보고 못생긴 아줌마 한번 쳐다보고 됐다며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신다.
나는 "할아버지, 앉으셔요. 암만해도 자리가 좀 좁으시죠." 하니 그제서야 못생긴 아줌마는 똑바로 앉더니 자기 가방을 무릎위에 놓는다.
그리고는 그 못생긴 아줌마가 갑자기 안 예쁜 눈을 뱀처럼 가늘게 뜨더니 나를 짝 노려본다.
그러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며 불안한 얼굴로 자리에서 다시 주섬주섬 일어나시는거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화가 났다. 아놔 이 아주머니 나의 잠자는 전투력에 불씨를 땡기시네.
나는 할아버지를 다시 자리에 앉혀드리고 나도 눈을 최대한 가늘게 모아서 짝 째려주었다. 최대한 아주 무우섭게!!

(그러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수구리시고 푸~~하며 웃으셨다.
왜요? 왜요? 할아버지 나 안 무서워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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