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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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공감
  • 김기용
  • 승인 2017.07.05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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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공감일화 - 김기용/인천교육연구소


1


지난 삼월 말인가, 사월 초인가, 어느 봄날이었어요. 그날 나는 3학년 어느 반 음악시간에 가창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호진이가 고개를 숙이고 내내 울었어요. 우리 학교는 교육과정에 세월호참사 계기교육도 반영되어 있어 수업의 일환으로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를 배우는 중이었죠. 작년에도 이 노래를 부르며 얼굴이 상기되거나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들이 꽤 있긴 했지만, 남자아이가 조금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쨌든 수업 후 음악실에서 나가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었어요.
 

그리고 다음 음악시간, 음악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물어봤지요.

“지난 시간에 호진이는 왜 그렇게 울었대냐?”

예인인가 서진이가 대답하더군요.

“저......, 선생님”

“?”

“그때 호진이가요....”

“??”

“세월호 노래를 부르다가요, 자기도 모르게 슬퍼졌대요.”

“???”

“그러면서 얼마 전에 죽은 장수풍뎅이 생각이 자꾸 났대요.”

“…….”

“그리고 눈물이 저절로 났다는대요.”

“그래? 그랬구나.”

마침 호진이가 들어오기에 물어봤어요.

“호진아, 죽은 장수풍뎅이는 어떻게 했어?”

“땅에 묻어줬어요.”

“그래, 많이 보고 싶었어?”

“네.”

“호진이는 참 착하구나. 마음도 따뜻하고.”


그날은 아이들이 소란하고 수업에 집중을 못해도 준비물을 안 가져왔어도 이상하게 별로 속상하지 않았어요. 그때의 내 마음을 뭐라 할 수 있을까요? 내내 훈훈하고 따뜻하고 정다운, 지금도 기억나는 그 기분.

세상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던 그 느낌.

 

 

2

 

“혹시 세월호 유가족이십니까?”

그때는 또 언제더라? 아, 맞네요, 이천십사년 십이월. 세월호 사고가 터진 그해 겨울.

어느 주차장에서 갑자기 가슴과 눈 주위가 막막해졌어요. 한참 숨을 고르고서야 운전을 할 수 있었죠.

그 해 늦은 여름에 팽목항까지 몇몇 지인들과 다녀왔었어요. 그때 가서 보고 왔지요.

등대 주위에 놓인 주인 잃은 운동화 세 켤레와 이름표 몇 개. 그 옆에 놓인 초코파이 몇 개. 노란손수건에 쓰인 어느 엄마의 편지, 바람에 날리는 수많은 노란 리본들, 하늘나라 우체통이라고 쓰여 있던 빨간 우체통, 조금씩 사람들 시선에서 멀어지며 외로워하던 항구의 모습??. 그 여름 기행은 모르는 새 내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나중에야 그걸 알게 되었죠.

그날 나는 거북시장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었어요. 출차하려는 데 검산원이 갑자기 나직하게 묻더군요.


“저 혹시 결례가 안 된다면…….”

“?”

“혹시 세월호 유가족이십니까?”


차량 앞 구석에 붙어 있던 노란리본을 보고 그는 몇 번을 망설이다 물었을 거예요. 그런데요, 그 순간 아주 생생하게 살아났어요. 지난 여름, 팽목항에서의 그 감정들이 너무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아주 고통스러웠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더워지고 눈앞이 아찔했어요.

그리고 낯선 사람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고마움, 이건 뭘까요? 당장 차에서 내려 손이라도 잡고 안아주고 싶더라고요…….

 

 

3

 

우리 학교는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라 대부분의 시설들이 새거나 다름이 없어요. 그런데 근래 전입생들이 급증하더니 금방 개교 시 보다 4배 정도로 학생 수가 늘었지요. 그런데 새로 들어온 1학년 땅꼬마들이 비상한 녀석들이 많아요. 여러모로 보통내기들이 아닌 경우가 보이는 데, 예를 들면 급식실에서 밥 먹다 악을 쓴다던가, 복도가 널찍하기는 하지만 자기들 눈에는 한없이 넓은 운동장 같은 지 줄넘기, 달리기, 엎드려 배비비기 등 거칠 것 없는 녀석들이 상당 있어요. 게다가 1학년 교실이 교무실 바로 옆이라 내심 요것들 한 번 혼을 내줘야겠다, 라고 마음먹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은 오늘 걸리는 꼬마 몇은 혼내줘야겠다고 작심을 하고 출근한 날이었죠.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요. 둘러보니 그림인지 글씨인지 작품인지가 몇 장 삐뚤빼뚤 붙어있더라고요. 한참을 봐야 해석이 되는......


자세히 보니 내용이 이해가 되긴 하더군요. 그건 ‘쓰레기를버리지마시다 요파아가구지’와 ‘엘리베이터는피로할데마쓰자’이었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죠?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건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지구가 아파요’와 ‘엘리베이터는 피로할 때만 쓰자’를 표현한 작품이었어요. 최근 실내에서 쓰레기가 종종 보여 선생님들과 함께 지도해보기로 했었는데, 아마 일학년에서 이런 캠페인 활동을 한 모양이었어요. 걸리기만 하면 한 번 혼내주겠다는 마음은 여기서 반이 녹아버렸어요.
 


 



뿐만 아니었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교무실로 가는 복도벽면에는 ‘쓰레기바다게버리먼안X기’(쓰레기 바닥에 버리지 않기)가 눈에 띄게 척 붙어 있고요,




나중에 보니 체육강당에는 ‘전기를 악겨요’(전기를 아껴요), ‘지구을 지키시다’(지구를 지킵시다) 등으로 도배되어 있었어요.


 


 

아미 반이 녹은 얼음장 내 마음은 강당까지 보고서는 완전히 녹아버렸어요. 아마 아이들의 마음이 내 속 어딘가로 들어와 한바탕 휘젓고 간 거겠죠?

 

남의 감정이나 의견에 나도 함께 느끼는 것을 공감이라고 한대요. 호진이의 장수풍뎅이가 내 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내 맘이 푸근해졌고, 나도 호진이의 맘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아마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녀석도 내 호의를 느꼈을 거예요. 주차장에선 너무 당황했지만 낯선 검산원의 한마디는 지금도 고맙고 감사해요. 얼굴은 생각이 안 나지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꼭 손을 잡고 고맙다고 할 거예요. 도리어 그 양반이 “예? 뭐가요?”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요. 일학년 꼬마들은 이제 미워할 수가 없어요. 만날 적마다 악수하고 볼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나오게 되거든요.


나이를 넘어 성별을 넘어 국경을 넘어, 아니 모든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눈으로 찬찬히 둘러보면 모두 정답고 사랑스럽겠지요?

아, 그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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