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할아버지와 4명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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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할아버지와 4명의 할머니
  • 김인자
  • 승인 2017.07.1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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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KTX 목포강연
 
장마비가 오락가락하는 이른 아침. 목포에 있는 한빛초등학교에 강연차 내려가는길.
나는 워낙 지독한 길치라 잔뜩 긴장을 하고 길을 나서도 늘상 길을 헤맨다. 오늘도 역시 나는 어김없이 노상 가는 길을 열심히 잘 헤맸고 따라서 이런 일들이 이제 나에게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늘 그렇듯이 지방 강연을 가기 전 날에 나는 궁뎅이를 땅에 붙일 틈 없이 엄청 바쁘다. 심계옥엄니 새벽 4시 30분 목욕도 씻겨드려야하고 아침식사도 챙겨놔야하고 아이들과 남편식사도 챙겨놔야하고 도시락도 싸야하고 이것 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밤새 한숨 못자고 새벽에 운전을 하고 가기 때문에 강연갈 때는 늘 졸음 운전을 한다. 허벅지를 꼬집고 볼따기를 때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노래를 부르고 고개를 휘저어가며 차안에서 근본없는 춤을 막 춰보지만 졸음 귀신은 언제나 나를 이겨먹는다.
 
목포 한빛초등학교. 7~8년쯤 전에 지금의 교장선생님이신 김여선 선생님이 장학사 시절 맺은 인연으로 가게된 목포. 워낙 멀기도 했지만 목감기로 병원을 들락날락거리고 컨디션이 난조인데다 정신까지 혼미한 상태라 도저히 운전할 자신이 없어 ktx를 끊었다. 다행히 목포는 다른 복지 우선학교들처럼 교통이 불편하지 않아 차를 가져가지 않아도 좋았다.
길치값을 하느라 용산서 타야하는 기차를 아무생각없이 서울역에 가서 태연히 30분을 앉아있었다.너무 일찍왔네하면서.전라선 출발역이 용산역임을 깨닫고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이동할때까지 헤매고 돌아다닌 것은 입아프니 생략하고 어찌구 저찌구해서 출발 1분 전에 겨우 용산엥도착해서 기차에 올라탔다.하이고 심장이야.

나는 매일 매일을 이렇게 스펙타클하게 산다. 남들이 보면 드라마 찍는다 할 일들을 일상속에서 매일 매일 겪으며 살지만 그래도 지치고 않고 내가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강연을 핑계 삼아 하는 작은 일탈 때문이다. 강연이 아니면 집밖에 나가지 않는 나는 강연 가는 날이 나의 유일한 휴식이자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다.
온전한 쉼. 나는 기차 타고 가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제시간이 되면 내가 갈 곳에 정확하게 데려다 주니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으니 좋고 내가 아무리 졸아도 옆차에 박을까 불안해 하지않아도 되니 정신건강에 좋고 차안에서 화장을 해도 마스카라 하나를 칠해도 거울 보며 한올 한올 꼼꼼하게 바를 수 있으니 그것도 참 좋다. 무엇보다 생각하고 싶으면 생각하고 멍때리고 싶으면 멍때릴 수 있으니 이것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기차에서는.
그리고 뭣보다 기차를 탔을 때 가장 좋은 건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몇 시간씩 실컷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내가 탄 기차칸에 3명의 할아버지와 4명의 할머니가 타셨다. 두 분은 부부시고 3명의 할머니들은 친구들끼리 결혼식장을 가시는 거고 2명의 할아버지는 각각 홀로 기차를 타셨다. 이럴 때 기차가 입석이며 좀 좋아. 괜히 화장실 가는 척하며 왔다갔다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살펴보는 재미. 이 또한 내가 기차를 탔기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 중 하나다. 오며 가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시는 이야기들을 훔쳐듣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쳐다보시면 씨익하고 한번 웃어드리고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열이면 열 환하게 화답 웃음을 날려주신다. 맛있는 걸 드시면 나눠도 주시고. 오늘은 할머니들이 너무 크게 말씀들을 하셔서 승무원한테 주의 말을 들으셨다. "조금만 조용히 말씀해주세요~~~" 내가 울할무니들 혼나실 줄 알았다. 혼나시는 할무니들 쳐다보믄 안되는데 쳐다봤다가 할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나하고 눈이 마주친 할머니가 혀를 쏙 빼무신다. 아이고 귀여우셔라.
생전 집안에서 말벗 없이 지내시다가 친구들하고 백만 년 만에 기차타고 나들이 가시는 울 할무니들 남들 눈치 안보고 실컷 수다 떠시게 기차안에 수다방 같은게 있었으면 좋겠다. 울 할무니들 원없이 하고 싶은말 실컷들 하시게 ~~~~
 
"저기 이쁜 색시 ~뭔 화장실을 그렇게 자주가? 오줌소탠가분데~ 질경이를 삶아먹으믄 좋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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