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한테는 배추 사서 새김치 해주고 나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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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한테는 배추 사서 새김치 해주고 나한테는..."
  • 김인자
  • 승인 2017.08.25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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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친정어머니 치매약을 타러온 딸들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 싫어요. 싫어도 그냥 싫은게 아니라 진짜 너무 너무 싫어. 정말 싫어요."
병원에 왔다가 친정 어머니 치매약을 타러온 딸을 만났다.

"딸이 고기도 사주고 생선도 사주고 아수쿠림도 사주고 너무 너무 잘한디야."
"그런디야? 그 어무니는 좋겄네."
"좋겄지. 그래도 맨날 맨날 즈그 아들집에 갈거라구 노래를 해. 11월에 아들이 와서 데려간다고. 아들이 철학박사에 서울대핵교에 대학원까지 나와서 돈도 엄청 많이 번다지."
"그렇대? 좋으시겄네."
"좋기는. 같은 소리도 한두 번이래야 좋지. 맨날 똑같은 소리를 허니 누가 좋대냐? 누가 새로 들어오믄 가서 같은 소리 하고 또 하고 자꾸만 하니 여기저기서 숭들을 봐."
"엄니가 그 함무니헌테 살짝 귀뜸을 해드리지."
"뭐라고 귀뜸을 해?"
"사람들이 같은 말 자꾸 하믄 듣기 싫어하니 새로운 말 허시라고."
"그런 말을 뭐하라 허냐? 저 좋아서 하는걸. 할아부지들헌테 가서 춤추자고 하고. 그게 그저 좋은 사람인 것을."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시겠네. 그 할무니 곱고 이쁘시잖에."
"좋아하긴. 들은 척도 안하지. 다른 할무니들도 수군수군 욕하고."
"엄니는 욕하지마요. 아파서 그러시는거야 꾸며서 이야기하시는 병."
"나는 욕 안헌다. 그런 사람 그러려니 하는거지.

요즘은 새며느리 자랑하느라 신났지."
"새며느리?"
"응. 그렇게 잘한대. 서울 사는데 맨날 반찬해가지고 와서 아주 잘해준대."
"잘 되셨네. 그동안 딸 혼자서 밥하고 반찬하고 청소하고 사인하고 힘들었을텐데."
"그러게 딸이 힘 좀 덜었을라나. 딸이 대학교 나와서 과외 가르친다고 그리 자랑하던데."

"일주일에 세 번 와요 서울서. 한 달 조금 더 됐나부다. 7월 1일 부터 왔으니.
애 셋 데리고 들어왔어요. 오빠가 생활비로 오 백을 준다지. 난 그 말 안 믿어. 그렇다고 완전 뻥은 아니고 한 반 절에 반 절 쯤은 사실이고 나머지는 개뻥이고."
"서울서 매일 반찬해 나르는거 보통일 아닌데. 애도 셋이나 있다믄서."
"애 셋 데리고 들어와서 그 정도도 안하믄 양심이 없는거죠. 엄마한테 반찬해서 나르라고 오빠가 차도 사준 모양이던데.
어쨋든 나는 저 정도만 해줘도 감사해요.
저렇게 잘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딱 그만 둬버릴까봐 그게 걱정이죠. 엄마도 이제 겨우 안정이 되가시는데. 그래서 왠만한건 손 안가게 내가 다 알아서 해요."
"잘 하셨어요."
"워낙도 내가 혼자서 다 했었던 건데요 뭐.
그래도 반 절이라도 나눠서 해주니 고맙지요. 먼저번 새언니도 나도 그 누구도 한 번도 안하던 걸 그 여자는 아니 새언니는 해주더라고 우리 엄마한테."
"뭘 해주는데요?"
"엄마 엄마하믄서 착착 앵겨붙더라구요. 우리 엄만데도 나는 살면서 여지껏 한번도 그렇게 살갑게 안 불러봤는데.
그리고 처음 오던 날인가? 엄마집을 홀까닥 뒤집더라고. 쓸고 닦고 한바탕 설레발을 치더라고. 그래봤자 이삼 일 지나면 엄마가 다시 이것 저것 몽땅 끄집어 내서 다시 지저분해지지만. 어찌됐건 여태껏 어느 누구도 안 하던 일을 하더라고요 그 여자가 아니 새 언니가.
"나이가 얼마나 되요?"
"나보다 일곱 살 아래."
"나이도 왠만큼 먹었네요. 잘하실거예요. 그 분이 잘하는 것만 생각해요. 엄니한테 잘하니 고맙잖아요."
"예, 나두 그럴라고요.
처음 왔을 때 같진 않은데. 사람이 뭐 다 그렇지. 안 변하믄 그게 이상한거지. 나는 안 그런가?
동네 할무니들도 샘내서 뭐라하시는 분들도 많고 내 친구들도 언제까지 잘하겠냐? 니 오빠가 돈 줄 때까지야. 하더만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 잘하잖아요. 애 셋 뒷바라지 하면서 자기 살림하믄서 따로 사는 새시어머니 반찬해서 오기 쉽지 않아요."
"그니까... 와서는 반찬 냉장고에 넣고 엄마 주간보호센터차에서 마중하고 딱 십 분 앉았다가 가요. 첨엔 미장원에도 데리고 가고 목욕탕에도 데리고 가고 그러더니. 보여여 변하는게..."
"사람이 늘 처음과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럼요. 그만만 해도 감사해요."

자기의 아픈 이야기를 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도 친한 친구도 아니고 치매엄마를 둔 딸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일까 치매보호자 모임서 두 번쯤 만났을 뿐인데, 엄마의 치매 약을 타러온 딸은 진료 기다리고 약타는 그 짧은 시간에 자기의 깊고 아픈 속내를 솔직히 꺼내 보여주었다.

"나는 엄마가 진짜 싫었어여.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는지 몰라.
오빠는 끔찍히 위하고? 내가 오빠보다 잘나서 그게 싫었나? 정말 끔찍히 미워했어요 나를. 어릴때 부터
우리 애들 세뱃돈 주는 것도 차별을 했으니까. 오빠네 애들은 3만 원씩 척척 아낌없이 주면서 우리 애들은 만 원 짜리 한 장도 줄까 말까 벌벌 떨었으니까. 지금도 기억 나. 이건 내가 아마 죽을 때 까지 잊지 못할거야. 무슨 김치였나 그게... 그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처음으로 엄마한테 그 김치를 해달라고 했어요. 생전 뭐 해달란 소리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그날은 내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몰라...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믄 혀를 깨물고 싶어 내가.
그런 나한테 엄마가 무슨 김치를 해줬는지 알아요?... 우리 오빠한테는 배추 사서 새김치 해주고 나한테는 노랗게 곰팡이가 핀 시어빠진 김치를 주더라고요. 먹을 수도 없이 폭삭 시어버린 김치를... 주더라고...나한테... 가져와서 버렸어요. 그리고 얼마나 울었나 몰라."
"그런데 지금 왜 이렇게 잘해요 엄니한테..."
"잘하지도 못해요. 그냥 하는거지."
"잘한다고 하던데. 할머니가 딸 자랑 엄청 하시던데."
"우리 엄마가요? 내 자랑을 한다고?
살다살다 벨. 우리엄마가 내 칭찬을 한다니 세상이 개벽을 하겄네.
뭐가 제일 힘드냐면요. 우리 식구들이 우리 엄마를 저만큼 싫어하거든요. 애들도 내가 엄마한테 뭘 하기만 하면 아주 쌍지팡이를 들고 싫어해요. 응원을 해줘도 힘든데 내 가족이 싫어하니 그게 제일 힘들어요. 중간에서...
"예 ?"

혼자 사시지만 가스불도 못 켜서 같은 아파트 단지내에 사는 딸이 밥을 해서 나르고 반찬도 다 해다가 냉장고에 넣어드리고 엄마는 아기처럼 딸이 해주는 것만 먹는 아기가 되어버린 엄마.
우리 딸이 고기도 사주고 생선도 사주고 아주 잘해요 하며 딸 자랑을 하시는 엄마, 꾸며서 이야기 만들기를 잘하는 엄마, 새며느리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윗집 새댁보고 왜 아직 집에 안 갔냐고 묻는 엄마.
그런 엄마를 밉다면서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딸.
"미운데 왜 이렇게 잘하냐구요?
내자식들이 보고 배우라고. 나한테 잘하라고.
내가 첨에 우리 엄마 모셔올때 기도했어요.
내자식 00학교 붙게 해주면 엄니 모셔오겠다고 울면서 기도했어요. 그렇게 물고 빨며 애지중지 이뻐했던 아들도 절대 안 모신대잖아. 엄마를...
그랬더니 내 기도를 들어주시더라고요. 우리 애가 00에 턱 허니 붙었어요. 그래서 내가 엄마를 모셔왔지요.
그래도 얘기하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거 같네. 첨 해봐요. 이런 얘... 고마워요.
아무 말 없이 다 들어줘서."
엄마의 약봉지를 들고 과외시간에 늦었다며 서둘러 뛰어가는 딸을 보며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힘내요 착한 따님...
온 세상에 있는 착한 딸들 씩씩하게 힘내요...
그리고 저 딸들의 아픈 엄니들도 조금만 더 힘내요.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많이 아파하시지 않기를 두손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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