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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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 최원영
  • 승인 2017.09.04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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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봉황은 썩은 쥐를 탐하지 않는다”

 

풍경 #56. “봉황은 썩은 쥐를 탐하지 않는다!”

 

요즘 뉴스를 보면 권력과 재물, 지위가 무척 좋은가 봅니다. 그것을 손에 쥐기 위해 온갖 편법과 불법까지 동원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고위 공직자 후보자 명단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 중에 과거의 행적이 깨끗한 사람들의 수가 무척이나 적더군요. 그런 후보자들의 민낯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절망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갑질 역시 권력과 재물과 지위를 잘못 사용해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요? 권력과 재물과 지위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걸 추구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비쳐질까를 생각해봅니다. 아마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쯤으로 여길 겁니다. 그래서 갑질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겠지요.

 

2천여 년 전, 장자는 이를 두고 경계하는 이야기를 잔잔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장자에게는 혜자라는 벗이 있었는데, 혜자는 무척이나 똑똑해서인지 장자와 자주 논쟁을 했다고 합니다.

혜자가 양나라에서 재상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장자가 혜자를 만나러 양나라에 도착하자, 어느 사람이 혜자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자가 선생님 대신 양나라의 재상이 되려고 온 겁니다.”

어느 면에서 보나 장자의 학식과 깨달음이 자신보다 더 깊고 넓다는 것을 안 혜자는 두려워졌겠지요. 그래서 군사를 풀어 장자를 잡아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장자는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도 혜자를 찾아가 만납니다. 그리고 이런 멋진 비유를 들려줍니다.

 

“남쪽 나라에 원추라고 불리는 봉황이 있네. 이 새는 남해에서 북해까지 날아가는 동안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와 쉬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고, 달콤한 맛이 나는 샘물이 아니면 마시질 않네. 원추는 이렇게 성스럽고 정결한 새일세.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 부엉이 한 마리가 썩은 쥐를 발견했지. 부엉이는 곧 주위를 살피다가 우연히 원추를 보았어. 부엉이는 자신이 발견한 썩은 쥐를 빼앗길까봐 원추를 향해 ‘훠이, 훠이!’ 하며 위협하는 소리를 질렀지.

지금 자네가 병사를 동원해 나를 찾은 모양인데, 양나라 재상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훠이 훠이’하고 위협하는 소리를 지른 게 아닌가?”

 

그랬습니다. 장자는 재상 자리 따위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혜자는 자신보다 출중한 장자가 오는 것을 자신의 지위를 빼앗으려는 것으로 착각한 겁니다. 봉황처럼 고고하게 살아가는 장자는, 자리 욕심에만 눈이 먼 부엉이 같은 혜자의 삶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너무도 잘 알았을 겁니다.

 

장자가 보는 아름다운 세상은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일 겁니다. 그러려면 장자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 겁니다.

권력이나 재물이나 지위 따위에 자신의 삶을 내맡긴 부엉이 같은 사람들에게서 그 어떤 평화로움이나 자유로움, 또는 평화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풍경 #57. 두 개의 거북이

 

동양 최고의 이야기꾼 중의 한 사람인 장자가 던지는 화두는 자신이 감추고 있는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할 때는 자신의 마음속을 그득 채우고 있는 욕망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을 ‘돈’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돈과 연관 지어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겠지요.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다른 사람들을 권력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 부호를 보고, 목사님은 ‘십자가’라고 하고, 수학자는 ‘덧셈부호’라고 하고, 약사들은 ‘약국’으로 여기곤 합니다.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예화 중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혜자가 재상으로 있던 양나라보다 훨씬 더 큰 나라인 초나라에서 장자에게 재상자리를 권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자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초나라 신하들이 와서는 예를 갖춘 후, 초왕이 자신들을 보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재상자리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장자는 하고 있던 낚시를 계속하면서 이렇게 답을 줍니다.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한 마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소이다. 그 거북이는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는데도, 초나라 왕이 상자 속에 잘 싸서 종묘에 보관하고 있다더군요. 말씀을 해보시구려. 두 분이 만약 거북이라면, 죽은 뒤에 뼈를 남겨 사람들에게 종묘에 갇힌 채 귀한 대접이나 받겠소? 아니면 종묘는 아니더라도 이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아서 돌아다니기를 바라겠소?”

 

대신들은 “당연히 살아서 진흙탕 속에서 돌아다니고 싶습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장자는 마지막 말을 던집니다.

“그럼 됐소이다. 두 분은 이제 돌아가시오.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면서 살 수 있도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시란 말이요.”

 

계란파동 뉴스를 보면서, 농수산부 퇴직 공무원들이 관련된 단체에 취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법조계 역시 판검사를 그만 둔 변호사들에게 전관예우를 한다는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그들이 장자의 경고를 받아들였으면 참 좋겠다 싶습니다.

평생 공직에서 많은 일을 했고, 또 그 지위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박수와 존경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퇴직 후에는 자신의 경륜을 불우한 이웃들을 돌보면서 남은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생 동안 국가로부터 녹을 받아 이만큼 명예롭게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여기면, 그 이후의 삶은 그 마음을 더 낮은 곳에 살고 있는 병든 사람들, 또는 슬픔에 젖은 사람들을 다독이며 사는 일이 훨씬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부엉이보다는 ‘봉황’이 되어 살거나 또는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경험해보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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