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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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 ”
  • 한인경
  • 승인 2017.09.19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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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 공간 ⑭] 다시 주목하는 영화 『폰 부스, Phone Booth』


<한인경의 시네 공간>은 지난 1년간 독립영화 12편에 대한 연재를 마치고, 2017년 8월부터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주제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피로를 풀어 주는 청량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인문학적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밖의 다양한 존재의 진실에 대하여 사유하게 해준다. 영화 속 많은 삶의 양상을 공감할 수 있으며 감독과 배우들의 천착(穿鑿)한 철학적 외침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테마가 되기도 한다. 제한된 물리적 크기의 스크린이지만 우리는 무한대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난다. 그 속에서 독특한 재미를 느끼고 힐링하고 비상한다.


“인간의 도덕적 목적, 행복”

개 봉 : 2003. 06. 13. 개봉 (90분 /미국)
감 독 : 조엘 슈마허
출 연 : 콜린 파렐, 포레스트 휘태커, 키퍼 서덜랜드(목소리)
등 급 : 12세 관람가
장 르 : 미스터리 스릴러

 

출처:영화『폰 부스』


영화 『폰 부스』
먼저, 콜린 파렐이라는 배우에 주목한다. 그의 연기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러닝 타임은 90분으로 다른 영화에 비하여 짧은 편이지만 그간 할리우드의 스타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콜린 파렐이라는 배우의 진면목을 보여 준 영화, 콜린 파렐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좋겠다.
그리고
폐쇄된 공중전화 부스를 수단으로 인간의 가식적이고 비도덕적인 이중적인 속내에 대해 경고를 한다.

주인공 스투 세퍼드(콜린 파렐 粉)는 별 생각 없이 받게 된 공중전화 한 통으로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일방적으로 들려오는 남성의 낮은 톤의 차분한 목소리. 스투의 가슴에서 빛나는 붉은 레이저 포인트는 총부리가 스투를 향해 정조준 중임을 수시로 상기시킨다. 목소리(키퍼 서덜랜드粉)는 스투의 생명을 담보로 세상을 향해 너의 잘못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스투는 처음엔 장난 전화로 생각하고 가볍게 받아 넘긴다.
스투의 애인 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기혼자임을 밝히고 아내의 의심을 피하고자 휴대폰이 아닌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아내 캘리에겐 자신이 바람을 피웠다고 말하라고 한다.

전화 속의 남자가 애인 팸과 부인 캘리의 전화번호 외에도 자신의 사생활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음에 놀란 스투는 점차 긴장하게 된다. “조준 망원경이 달린 라이플이 널 바라보고 있어, 전화를 끊으면 넌 내 손에 죽어.” 협박과 함께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발사를 위한 노리쇠 젖히는 소리까지, 스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거리의 여인들이 자신들의 영업장이나 다름없는 공중전화를 왜 이리 오래 사용하냐고 부스를 부술 듯이 두드리고, 스투의 딱한 사정을 알 리 없는 그 여자들은 힘세 보이는 사나이를 데려오는 등 어수선한 상황. 목소리는 사나이를 조준하여 살해하고 만다. 실제 사람이 눈앞에서 죽자 스투는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의 부인 캘리와 애인 팸까지 뉴스를 보고 사건 현장에 오게 된다. 전화부스를 둘러싼 경찰들. 형사 반장은 스투가 사나이를 죽인 줄 알고 자수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스투는 경찰의 권유대로 전화를 끊고 부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뉴욕 거리 수많은 고층 빌딩 어느 곳에서 자신을 정조준 중인 협박자는 시종 차분한 음성으로 스투의 살아온 시간에 대하여 스스로 고백하게끔 압박한다.

 

출처:영화『폰 부스』


범인은 자신은 스투가 키운 삼류 배우라고. 연극 몇 편하다 쫓겨난 할 일 없는 배우가 창밖의 공중전화를 엿듣게 되면서 스스로 판단하여 사회악에 대한 응징을 해왔다. 그 예로 포르노 왕과 부패 기업인을 살인한다. 그런 범인의 잣대에 걸려든 사람이 연예 홍보대행업자인 스투다. 평소에 과장과 거짓과 비싼 옷과 화려한 가짜 시계를 차는 등 가식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범인의 ‘처리 대상’에 걸린 것.

차츰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 형사 반장은 전화 도청, 감식반을 가동하면서 1등 사격수, 옥상 공격조들을 건물마다 배치하고 전화 속의 범인 색출에 들어간다.

급기야는 달려온 부인 캘리의 이마에 붉은 레이저 포인트가 정조준된다. 그러자 스투는 금방이라도 발사될 것 같은 불안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스 밖으로 나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목소리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자기를 쏘라고 목이 터지도록 외친다. “Take me, take me. Come on, take me."
일촉즉발이란 단어가 생각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던 긴장감 최고의 장면이다.
오로지 스투 역의 콜린 파렐의 연기만으로 이 모든 긴장과 몰입을 최고조로 끌어 올린다. 명감독 조엘 슈마허의 콜린 파렐이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와 그의 최고의 연기가 탄생시킨 명장면이었다.

그리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출처:영화『폰 부스』


그러면 스투가 진땀을 흘려가며 힘들어했던 상황 즉, 목숨을 위협받는 원인이 되었던 스투의 그간의 ‘잘못’을 들어보자.

“우쭐한 기분에 비서를 데리고 다녔고, 부려만 먹었고 거짓말만 했습니다.
친구도 속였고, 매스컴에 거짓말을 팔아먹었죠. 속고 속이는 것이 내 생활이었소.
열등감을 감추려고 비싼 옷과 시계로 날 감췄어요. 시계도 가짜고 나도 가짭니다.
난 소중한 것을 무시해 왔고 겉만 중요시했어요.
전화할 땐 반지도 뺏어요. 캘리, 쟤가 팸이야. 팸은 잘못이 없어. 내가 미혼인 줄 알아.
당신 보기가 부끄럽군.
나는 지금껏 허상에 매달려 나 자신을 과대 포장해 왔어요. 자업자득입니다.
결혼반지 뺀 것은 양심에 찔려서였어. 이젠...... 잘해보고 싶지만 더 이상 내겐 선택권이 없어요. 정말 미안해.” 울부짖는 스투......


잠시 숨을 돌려 관련 영화 두 편을 기억해본다.
『폰 부스』처럼 한정된 공간에서의 공포와 스릴을 보여준 한국 영화가 있다. 대략 폰 부스보다 10년 후에 만들어진 하정우 주연의 『더 테러 라이브(2013)』다. 유명 앵커와 그의 귀에 꽂은 이어폰이 폭파 장치가 되어 있음을 무기 삼아 역시 전화로 협박이 이어진다. 긴박한 상황에도 특종을 선점하고자 하는 방송국 내부의 권력 관계와 시청률까지 뒤엉켜서 순식간에 국민 앵커 하정우는 스투처럼 고단한 늪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영화 『세븐(Se7en,1995)』을 주목한다.
영화 『세븐』은 『폰 부스』의 전화 목소리처럼 한 개인의 판단으로 성서에도 나오는 7가지 대 죄악에 해당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차례차례 죽인다. 자신의 살을 스스로 베어내게 하는 등 엽기적인 고통을 가하면서 서서히 목숨이 끊어지게 하는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피트 주연의 범죄 스릴러 영화다. 영화 속 장면들은 상상조차 끔찍하다. 탐식, 정욕, 탐욕, 나태, 교만......등의 죄악으로 범인에게 걸린 사람들은 차마 보기 힘든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출처:영화『폰 부스』


다시 『폰 부스』로
그러면 그간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온 조엘 슈마허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법보다 앞서는 폭력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인간의 속내를 건드리고 싶었기에 사용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철학자 니체는 인생을 줄타기하는 광대에 비유하였다. 밧줄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어쩌면 그래서 흔들리기 쉬울 수도. 정의와 불의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상대적 박탈감에 또는 빗나간 영웅심, 정의감에 세상을 향해서 ‘나만 왜?’, ‘너희들 똑바로 살아라.’라며 각혈하듯 토해내고 싶은 외침이 있을 것이다. 또는 사람에 따라서 법보다 앞서기 쉬운 주먹을 움켜쥐기도 할 것이다. 스투는 폭행, 강간, 살인 기타 흉악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에서 소외된 한 사람이 쳐놓은 '사회정의'라는 그물에 단단히 걸렸다. 폭력은 선에 앞서지 못한다. 가끔 흉악범 관련된 뉴스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저런 놈은 사형시켜야 해.”라고 울분이 섞인 음성이 함께 들린다. 물론 끔찍한 범행에 너무 화가 나서 하는 말일 것이다. 악의 제거를 위하는 일이라고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법질서, 사회질서를 무시하고 법이 사회정의 실현에 역할을 못 한다며 스스로가 흉악범을 죽이고 폭력을 행사한다면 더 처절한 폭력이 난무하는 황무지 같은 세상이 기다릴 것이다.

 

출처:영화『폰 부스』


스투가 비뚤게 살아온 지난날을 강압에 의해 말하긴 했으나 그 내용은 범인이 미리 써놓은 글이 있지도 않았고 범인이 불러준 대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대낮, 뉴욕 거리, 좁디좁은 전화 부스에서 절절매고 있는 한 남자의 생각지도 못한 인생 고백이 터져 나온다. 심지어 자신의 인생은 가짜로 얼룩졌다고 울부짖는다. 살인 사건 현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숙연해진다. 어쩌면 스투가 토해낸 내용들이 자신들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 아니었기에 놀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영화 『폰 부스』는 사회적 성공과 인간의 도덕적 목적과의 모순되는 이중성을 환기시킨다.

자존감.
영화에서 공중전화 부스는 폐쇄된 공간으로서 스투의 갇혀있던 자아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단지 성공이라는 사회적 허상을 쫒다 보니 짓눌려있었고 어쩌면 잊고 살았던 자아를 되찾기 위해 스투라는 한 사람은 힘든 자기 고백과 사선을 넘나드는 공포를 견뎌야만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 간, 직장 내, 형제, 친지 간, 이웃 간에 혹시 열등감이 있다면 조금만 부러워하면 어떨까. 나머지 결핍은 자신을 보듬고 존중해가는 자아 존중이라는 근육을 건강하게 키워 보자. 가식적인 생활은 비눗방울처럼 점점 부풀어져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허무한 세계다. 위와 아래, 가난과 부, 빛과 어둠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풍요와 결실 그리고 사색이 어울리는 계절 가을이다. 너무 앞만 보며 달렸기에 숨이 가쁘다면 시간을 내어 대지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법에 저촉되진 않았을 양심의 죄를 반성해본다. 인간의 도덕적 목적은 행복이다.
 
한인경/시인·인천in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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