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두 받았으니 갚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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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받았으니 갚아야지요"
  • 김인자
  • 승인 2017.09.2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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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아기와 할머니
 
계속된 지방강연 후유증으로 바닥난 체력에 힘을 주고자 병원에 갔다. 병원 엘리베이터앞에서 만난 아기와 할머니.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의 키가 크다. 유모차 밖으로 발이 나왔다. 다리가 긴 아가. 유모차에 앉아있는 걸 보면 개월수가 어린 아가일건데 아가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어린 아가 같지가 않다. 네 살 쯤 되보인다. 키도 크고 얼굴도 야물지다.
 
"안녕, 아가야."
아가가 제 손을 열심히 빨다가 - 유모차 속의 아가는 손가락을 빠는게 아니라 주먹진 자기손을 맛있게 빨고 있었다 -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없이 나를 보며 방실방실 웃는다.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얼굴은 아니나 웃으니 귀엽다.
"할머니랑 병원에 왔어? 귀여운 아가야 어디가 아파서 왔어?"
"할무니가 아파서 왔어요~"
아가 대신 할머니가 대답하신다.
"아가가 키가 크네요. 씩씩한 사내 대장부가 되겠어요."
"손녀딸이에요."
"아 손녀시군요. 죄송해요, 머리가 짧아서 남자 아긴줄 알았어요."
"괜찮아요. 남들도 다 사내앤줄 알아요."
"예? 아가가 키가 크네요."
"예 즈이 언니보다 커요. 덩치도 크고. 그래서 그런가 즈이 언니보다 모든 면에서 늦되네요.
즈이 언니는 이맘 때 잘 걸었는데 얘는 걷는게 느려요."
"아가가 몇 살이에요 할머니?
"몇 살처럼 보여요?"
할머니가 어디 한 번 알아맞혀 보라는 얼굴로 웃으신다.
"네 살?"
"하하 다들 그리 보시네."
"아, 너무 많이 봤나요? 그럼 세 살?"
"ㅎㅎ 14개월이에요."
"예? 정말요? 와 ~~"
"이제 돌 지난지 두 달쯤 됐어요.
다들 너댓 살로 봐요~"
14개월 아가가 4살 된 언니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나 형님이에요 멋지죠?~
하는거 같다.
 
"할머니가 힘드시겠어요. 아이 안고 업고 하실 일도 많으실텐데 허리 조심하세요."
"맞아요. 나 허리 아파서 잘 업어주지도 못해요. 큰 애보다 덩치도 있고."
"그래도 할머니가 돌봐주시니 아이는 좋겠어요."
"좋은지 뭔지 큰 손주때는 겁없이 다 해줬는데 하루볕이 다르다고 힘이 드네요."
"그렇게 힘드신데 기관에 맡기셔도 좋을텐데요. 요즘 아가들도 어린이집에 일찍들 보내던데요."
"에구, 그게 또 마음이 그렇지가 않아요.
나두 받았으니 갚아야지요."
"갚아요? 누구한테 갚아요?"
"나두 울 엄니가 우리 아이덜 다 키워줬거든요. 나도 엄니헌테 받았으니까 나도 베풀어야지요."
엘리베이터가 왔다.
"안타여?"
"할머니 먼저 타셔요."
 
선한 할머니가 아가랑 엘리베이터에 오르셨다.
사람이 많아서 나는 엘리베이터 대신 층계로 올랐다.
'받았으니 나도 베풀어야한다.'
할머니 말씀이 나랑 같이 계단을 오른다.
우리 할머니들의 단순하지만 정확한 계산법.
그러나 더하고 빼면 늘 넘치게 남는 울 할머니들의 사랑과 희생.



 
어 안녕?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14개월 아가와 할머니를 병원진료실 앞에서 또 다시 만났다.
 
할머니가 유모차 앞에 쪼그리고 앉으셔서 아가에게 뭐라뭐라 하신다.
 
"할머니~~~"
아가가 큰 키만큼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부른다.
그러자 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여기서는 그렇게 크게 말하면 안되.
작은 소리로 말해야되." 하며 아기 얼굴에 대고 조용히 그렇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가만 가만 할머니가 하던 말을 듣던 아가가 이번엔 작은 소리로 할머니~하고 부른다.
그러자 할머니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으응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을 한다. 고요하지만 따뜻하게 아가의 얼굴을 보며 으응 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엄마 웃음이 저절로 피어난다.
이번에 아가가 할머니를 보며
'오리'하고 말한다. 그러자 할머니가 서슴없이 '꽥꽥' 하고 답을 한다. 고요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이어서 할머니가 아가를 보며 '강아지' 하고 말하니 아가는 할머니를 보며 '오리' 하고 답을 한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아가 얼굴을 보며 '강아지'하고 다시 또 말하니 아가는 이번엔 큰 소리로 할모니~ 하고 오리처럼 꽥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깜짝 놀란 할머니 쉬 하며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댄다.
쉬~
아가가 할머니를 따라 쉬하며 검지손가락을 눈에 갖다 댄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귀여워 웃으니 아가가 나를 보며 쉬하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댄다. 나도 아가 따라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쉬~했다.
 
아이는 할머니를 보며 배운다.
그리고 어른은 아이를 보며 배운다.
할머니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아이는 저절로 배우고 실천하고 가르친다.
이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격대교육이다.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교육.
오래오래 건강하시라. 울 할머니 할아버지. 오래 오래 당신들의 지혜를 따라 배우고저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꼬옥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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