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구실도 못하는데. 굶어서 죽을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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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실도 못하는데. 굶어서 죽을꺼다."
  • 김인자
  • 승인 2017.11.0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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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아주 힘든 날

와장창
배가 너무 아파서 핫팩을 하고 잠깐 눕는다는 것이 고새 졸았나봅니다.
사발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주방으로 뛰어가보니 심계옥엄니가 설겆이를 하시다가 그릇을 깨셨나봅니다.
냉면기 하나랑 일본에서 사온 다기가 깨졌습니다.
부엌바닥에 산산조각이 났군요.

"엄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발 다치니까 그 자리에 가만히 계셔요."
"할머니 괜찮아?"
밥을 먹고 있던 작은 아이가 놀라 얼음이 된 할머니를 토닥토닥하며 모시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심계옥엄니가 사랑터에 가시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늘 긴장상태입니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기라도 하면 큰 일이 일어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남들이 쉬는 주말이 제게는 제일 바쁜 시간입니다. 주말엔 심계옥엄니가 밤에 주무실 때까지 바짝 신경을 쓰고 챙겨야합니다. 껌딱지처럼 왠종일 심계옥엄니 뒤를 따라다녀야합니다.
가만히 앉아 계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시기도 하고 잘 걷고 계시다가 휘청하시기도 하고 식사를 하시다가도 갑자기 목에 걸려 쓰러지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서도 나오실 때까지 무슨 소리가 나는지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합니다.

"쌀 씻어논거 있어?"
"예, 아직 많아요."
'많아요'를 심계옥엄니는 '더 씻어야 돼요'로 알아들으시나 봅니다.
"많아?뭐가 많아. 넉넉하게 씻어 놔야지." 하시며 심계옥 엄니가 씻어 놓은 쌀이 냉장고에 여섯 바가지가 됩니다.
깨진 사발 조각들을 깨끗이 치우고 심계옥엄니 식사를 챙깁니다.

"엄니, 식사 하셔요."
그런데 심계옥엄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으십니다.
몇 번을 불러도 심계옥엄니가 나오시질 않습니다.
방에 들어가보니 심계옥엄니가 벽을 보고 누워계시네요.
"엄니, 식사하세요."
그래도 아무런 대답이 없으십니다.
"엄니, 식사하시라니까."
"안먹는다. 나 같이 쓸모없는 바보 멍충이 살아서 뭐하냐? 사람 구실도 못하는데. 굶어서 죽을꺼다."
"엄마, 무슨 말을 그르케 해요."
"왜 내가 못할 말 했냐? 너도 내가 구찮을 거 아니냐?
나도 내가 싫은데 너는 자식이라도 내가 귀찮을 거 아니냐고."

'엄마 쪼~~옴'
'엄마도 힘들어'
'나도 힘들어'

속으로 삼킨 나의 말들...

"엄마 염색하고 와. 한결 기분이 좋아질거야."
큰딸이 오만 원 두 장을 쥐어주며 토닥토닥 해줍니다.

그런데 나오니 막상 갈 데가 없습니다. 고양이 엄마에게 전화를 겁니다.
집이 아니랍니다.
이럴 때 이렇게 속상할 때 전화해서 차 한 잔 마시자 할 사람이 없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나 여태 뭐하고 산거니...
미장원에 갔더니 원장님이 쇼커트도 염색도 파마도 안해줍니다. 지금이 예쁘니 하지말랍니다.
나는 머리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닌데...

미장원에서 나와
상가에 있는 옷 수선집에 갔습니다.
바쁘신데 염치불구하고 그저 앉아있었습니다.
수선아줌마의 정성스런 손놀림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그동안 큰딸에게서 전화가 계속 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나도 화낼 줄 안다.
나도 힘들다.
알리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요...

집앞 공원에 갔습니다.
나무를 보니
길을 보니
단풍을 보니
이 마음이 저 마음을
또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속 썪이고 상처 주는 자식놈 끝까지 사랑으로 품는 울 엄니들 마음이 이런거겠지요.
당신몸이 자유로이 놀려지지 않아서 속상해서 그런 말씀 하신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들고 서글픈걸까요.

추운줄 모르고 걷던 늦가을
손이 시렵고 너무 추워서 마트에 갔습니다.
아이들 먹을거
심계옥엄니 드실거
사고 있는데
걱정하는 큰 딸이 마트로 찾아왔습니다.
"할무니 저녁 드셨어.
엄마 힘들지.
그래도 엄마같이 이렇게 잘 해내는 사람 없다."
혼잣말 하듯이 이렇게 말하며 큰아이가 자기 가방에 내가 산 물건을 집어넣습니다.
"머리 하러 가라니까... 엄만 갈 데가 마트밖에 없어?"
"그러게... 갈 데가 없네.엄마는..."
"근사한데 가서 차라도 마시지."
"그럴걸 그랬나... 무거워. 내가 맬께."
"엄마보다 내가 힘이 더 쎄."
"우유랑 요거트는 빼자. 너무 무거워."
"이 무거운걸 엄마는 다 들고 가려고 했잖아. 안 무거워. 엄마가 들면 안 무거워?"
큰 가방을 매고 씩씩하게 걸어 가는 큰 아이 뒷 모습을 보며 또 다시 힘을 내봅니다.

You can do it?
나는 할 수 있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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