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먼저 청년을 담을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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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먼저 청년을 담을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 김경남
  • 승인 2017.11.2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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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경남 / 마을활동가




 청년이 되면 누구나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중에 한 사람이다. 우리는 언제나 일상에서 익숙한 것을 찾는다. 요즘 내 운전 실력은 일상의 익숙함을 닮아 가고 있다. 운전을 시작했을 때 차의 작동법을 알지 못했고, 나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내 눈을 착각할 정도로, 가을날 도로에 은행잎이 노랗게 쌓인 것인지 황색 줄인지 모르는 길을 가로 지르는 동안 사물들이 내 곁을 지나가는 속도감을 느꼈고 몸은 모든 시간들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요즘 나의 일상은 ‘정지’가 아니라 ‘속도감’을 느낀다. 운전을 처음 배웠을 때 낯설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몸은 자동차와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노란 낙엽이 황색 줄로 보이는 착각의 순간들이 사라지고, 은행나무의 은행잎을 볼 수 있고 밟고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처럼 내게 익숙한 것과 낯익은 모습들은 나의 상황적 몸과 일치한다. 어린 시절 골목을 다니며 뛰어놀던 그 자리와 골목길 흙내음 그리고 작은 나에게 커보였던 문방구,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던 시장 치킨집, 크게만 보였던 학교 운동장, 어린 시절 몰래 먹었던 엄마의 활명수, 그리고 박카스 사먹던 약국, 전봇대, 가로등, 오르막길, 숨바꼭질과 같은 흔적들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옛 시간을 옮기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상황적인 공간을 포함하는 지역이 많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곳을 잘 찾지 않는다. 찾지 않으면 지역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그곳은 살아 숨 쉬는 곳이 아니다. 자기만의 독특한 상황적 공간이 아니라면 그곳은 생명이 없다. 이 생명을 숨 쉬게 하기 위해서는 함께 심을 수 있는 나무가 필요하다.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보살필 그러한 생명이 필요하다. 

 생명은 곧 ‘청년’이다. 이러한 생명이 되어줄 청년들이 마을 공동체에 필요하다. 그러나 소통할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있다. 우리는 청년에게 지역공간이 아닌 그들만의 상황적 공간으로서의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마을을 필요로 할까? 청년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있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입장에서 자신만의 꿈을 꾸는 친구들이 있다. 청년만이 느끼는 것 그리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으로 새로운 길에 도전한다. 반면에 세상의 삶에 그리고 정해진 방식에 맞게 제도적으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패러다임을 사회의 눈으로 맞추는 청년들이 더욱 많다.

  우리에게는 지역 안에서 청년과 어떻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이 필요하다. 지역공간은 살아있지 않다. 지역공간은 낡았고 시간이 흘러 낙후된 건물과 오래된 흔적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실에 미루어볼 때 청년들이 지역을 공감할 수 있을까? 또한 그곳을 삶의 자리로 이끌 수 있을까? 청년과 마을, 마을과 청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주체도 객체도 아닌, 상호주관적인 관계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계성은 지역공간이 변하여 하나의 상황적 공간으로, 동시적으로 주어져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적 공간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청년들이 자신만의 상황적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역공간을 새롭게 느끼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 운전이 익숙해진 것처럼 낯설던 공간이 체화되어 내 어릴 적 뛰놀던 곳에서 청년과 마을이 낯설지 않은 공간이 되는 것이다.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갈 때 호흡이 있고, 공간이 살아 움직인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변화다. 변화가 일어나는 곳! 그곳에서 청년과 마을이 함께 하는 것이다.





 대부분 청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적 장소가 마을이라 여길 것이다. 몇몇 청년들이 들어가서 마을을 살리자는 이야기가 본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들리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 마을을 원도심으로 한정하고 이야기한다면, 청년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과 마을에 청년들을 살게 하고자 한다면 먼저 마을이 청년을 담을 준비가 되었으면 한다. 반대로 청년이 마을을 살리고자 한다면 자신이 그 마을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두 번째가 가장 힘들 것 같다. 자신의 삶에 평생을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과 없이 끝날지도 모른다.(성공이라는 것이 정해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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