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지음과 신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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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지음과 신뢰에 대하여”
  • 한인경
  • 승인 2018.01.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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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경의 시네 공간(18)] 다시 주목하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
 

<한인경의 시네 공간>은 지난 1년간 독립영화 12편에 대한 연재를 마치고, 2017년 8월부터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주제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피로를 풀어 주는 청량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인문학적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밖의 다양한 존재의 진실에 대하여 사유하게 해준다. 영화 속 많은 삶의 양상을 공감할 수 있으며 감독과 배우들의 천착(穿鑿)한 철학적 외침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테마가 되기도 한다. 제한된 물리적 크기의 스크린이지만 우리는 무한대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난다. 그 속에서 독특한 재미를 느끼고 힐링하고 비상한다.

 

“인생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

 

개 봉 : 2005. 03. 10. 개봉 (133분/미국) (2017.03.08재개봉)

감 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 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 힐러리 스웽크, 모건 프리먼, 제이 바루첼

등 급 : 12세 관람가

장 르 : 드라마

원 작 : F. X. 툴의 단편집 〈불타는 로프 : 사각 링의 이야기들〉(Rope Burns : Stories From the Corner)


 

출처:영화『밀리언 달러 베이비』


 

겨울이 정점을 찍고 있다.

 

감독이라는 호칭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구성과 깊이 있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능력이 빚어낸 진한 감동이 그대로 녹아있는 수작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들.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여든을 훌쩍 넘긴 거장의 열정이 돋보인 『설리:허드슨강의 기적』(2016), 악마와 영웅 사이의 딜레마『아메리칸 스나이퍼』(2015), 『그랜 토리노』(2009), 『체인질링』(2009), 전쟁의 추악한 이면을 다룬 두 편,『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아버지의 깃발』(2006), 세 남자의 치밀한 심리 묘사가 돋보인『미스틱 리버』(2003) 등등 추천하고픈 명작들이 다수다. 언젠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대한 밀도 있는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는 참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허름한 체육관, 백발이 성성한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를 찾아와 선수로 키워달라고 매달리는 매기(힐러리 스웽크). 30살이 훌쩍 넘은 매기에게 늦은 나이와 여성임을 지적하며 거절하지만 결국 프랭키와 매기의 만남은 부녀지간 이상의 애틋함으로 발전된다. 승승장구. 매기는 첫 회를 넘기지 않고 상대를 K.O.패 시키곤 하며 복싱계에서 자리를 잡아간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충격적인 반전으로, 살짝 영화 『로키』 같던 초반의 분위기를 한방에 불식시킨다.

 

이 영화는 스포츠로서의 권투를 위한 영화나 안락사를 찬성하냐 반대하냐, 존엄사 등의 이슈에 대한 논의를 일으키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사람 간 신뢰와 정을 쌓아가며 혈육 같은 관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진실된 상황들, 그 가운데 벌어지는 아픈 결정에 대한 영화, 휴먼 드라마이면서 가족영화다.


 

출처:영화『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 매기의 별칭이기도 했던 ‘모쿠슈라’의 뜻을 알려줄 때의 그 시점, 각자의 상처를 딛고 서로 보듬고 가족으로 울타리가 되어 주려 했던 두 사람이 뿜어내는 감정의 선, 그 분위기는 마치 엄청난 화산이 폭발하듯 흔히 말하는 ‘올킬 all kill' 그 자체였다.

체육관에서 일하는 전직 복서 에디(모건 프리먼)의 내레이션이 영화 전반에 깔린다. ‘지혈(止血)’에 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 프랭키의 전직이 지혈사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권투와 더불어 지혈이란 행위의 속성을 부각시킨다.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끔찍한 걸 좋아해, 교통사고 나면 시체 보려는 인간들, 그 인간들이 복싱이 좋다는데, 뭘 제대로 알고 그러겠어? 복싱엔 존중이란 게 있어. 자기 것을 지키며 상대에게서 그걸 뺏는 거지.’, ‘어떤 상처는 너무 뼈에 가까워서 아무리 애써도 지혈이 안 될 때가 있지. 자신만 볼 수 있는 꿈 때문에 모든 걸 거는 거지.' (에디의 내레이션 中)

 

프랭키는 매기를 가르치면서 ‘자신부터 보호하라.’는 제1 규칙을 강조한다. 유혈이 낭자한 사각의 링에서 트레이너이자 전직 상처 전문가, 최고의 지혈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된 시간, 그것도 수십 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 동안만 피를 멎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오로지 복서의 몫. 딸과의 소원해진 관계, 수년째 반송되고 있는 딸에게 보낸 편지들, 23년간 빠짐없이 미사를 드리지만 여전히 방황하는 신앙, 돈을 좇아 소속사를 옮기는 복서들, 트레이너로서 선수 보호 등 프랭키의 일상은 무겁기만 하고 긴장의 연속이다. 마치 링 위의 복서처럼. 프랭키는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설 수 있는 권투와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는 현실을 오버랩시킨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픈 간절함을 '지혈'이란 장치를 통해 내보이지만 통제된 치유라는 한계성에 안타까워한다. 결국엔 자신은 스스로 보호해야 하며 자신을 지키는 길은 강건해지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자신만의 삶의 방식에 매기가 성큼 들어온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매기. 차츰 프랭키의 철벽같은 마음에 아버지로서의 보호 본능이 일기시작하게 되며 소중한 딸처럼 여기게 된다.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매기는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전신 마비 상태가 된다.

 

욕창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다. 혈육의 정을 갖게 된 매기를 끝까지 보호하고자 하는 프랭키. 매기는 혀를 깨물며 세상을 떠나려 한다. 매기의 마지막을 신부님과 상담하는 프랭키. 자신을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이고 당신을 파멸시킬 것이고, 평생 후회할 것이니, 프랭키, 당신은 빠지고 하느님께 맡기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깊고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는 프랭키의 뒷모습을 보며 과연 차후에 누가, 어떻게 또는 무엇이 저 사람을 동굴에서 꺼낼 수 있을까?

 

출처:영화『밀리언 달러 베이비』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호스피스 전문의인 오츠 슈이츠의 글 중에서 한 부분을 발췌해본다.

 

‘사실 삶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삶 자체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고, 그 일은 온전히 나만의 몫이다.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대신 찾아 주는 것도 아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의 습관’ 中에서)

 

매기는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꿈을 위해 모든 걸 걸었고 그 꿈을 이뤘다. 너무 일찍 찾아온 삶의 끝자락에서 매기는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결단을 한다. 시골 출신,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하며 손님이 남기고 간 접시 위의 고기 조각을 먹어 가면서도 오로지 권투만이 삶의 희망이었던 매기. 그 좋아했던 권투를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했고 가져 보았으며 그것을 빼앗기게 하지 마라 달라 한다. 팬들의 환호 소리가 안 들릴 때까지 여기 누워있게 하지 말아달란다. 프랭키는 더는 바랄 게 없다는 매기의 슬픈 소원을 들어 준다.

마지막 씬. 희미한 프랭키의 모습이 보인다. 매기와 레몬 파이를 먹었던 그 레스토랑. 프랭키가 너무도 맛있어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여우 주연상, 남우조연상)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이상의 글에서 스포일러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못 보신 분들께 꼭 보시길 권해드린다. 매기와 프랭키의 밀리언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뜨거운 눈물과 매기의 꿈을 향한 열정을 느껴 보고 인생의 의미를 정의해보자.

 

출처:영화『밀리언 달러 베이비』

 

*밀리어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1센트짜리 물건만 모아놓은 1센트 상점에서 백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찾아낸다는 1970년대 미국 노래 가사에서 따온 것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보물을 얻는다는 뜻을 갖는다. (출처: NAVER 두산백과)
 

한인경/시인·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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