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박종철 열사 그리고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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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박종철 열사 그리고 개헌
  • 박인규
  • 승인 2018.01.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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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박인규 / (사)시민과대안연구소 소장


지난해 연말 개봉한 ‘1987년’이라는 영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뜨겁다. 이영화가 서슬퍼런 5공화국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무너뜨린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다루고 있고, 1년전 겨울에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민혁명의 의의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으로 다시 후퇴하고 있었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되살리고자 하는 촛불시민의 요구가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 목숨을 희생한 열사가 생전에 추구했던 삶의 정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4.19혁명, 6월민주항쟁 그리고 촛불시민혁명과 같은 시민항쟁의 배경에는 예외 없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하여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강력한 국가권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비상한 시기에는 국민의 생명과 기본권 및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헌법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새로운 내용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국민적 관심과 공감대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난 대선시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 경쟁적으로 개헌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그 시기도 오는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실시하자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지금 개헌의 시기를 둘러싸고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일부 야당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선공약마저 파기한 채 지방선거와의 동시실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헌의 핵심 내용인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지방분권과 국민기본권에 관한 개헌만이라도 이번 지방선거와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향을 밝혔다.

 

권력구조개편이든 지방분권이든 또는 국민 기본권이든 그 속에는 결국 부당한 국가권력의 행사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녹아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권력구조개편이 없는 개헌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소위 제왕적 대통령이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앙권력을 통해 지방까지를 포함한 수많은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종사자들을 부릴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방분권이 권력구조 개편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것인지는 깊이 있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결국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국회 및 내각과 나누는 것임과 동시에 지방과도 나누는 문제이다. 강력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질 때 지방과 아래로부터의 견제가 이루어지게 되고 이는 대통령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그러면 지방분권이 이루어진다고 권력 집중과 그로 인한 폐해가 사라지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중앙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된다고 하더라도 지방단체장을 견제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중앙집권의 문제가 지방정부의 집중된 권력의 문제로 이전되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권과 동시에 자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자치란 단지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가져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지역의 문제에 참여해서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방자치가 발전한 선진국, 보다 엄밀히 말하면 주민자치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린 선진국과는 달리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중앙집권패럼다임 하에서 중앙권력이 주민 개개인의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지방분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단체자치가 활성화 되는 것 못지 않게 주민자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양이 법제도적이고 실질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중앙집권을 유지하는 실질적 기반을 지역에서 그리고 생활의 현장에서 허물어뜨려야 한다.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자치역량이 마련되어 주민자치의 시대가 열릴 때 국가가 국민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물리적 고문은 사라져도 여전히 합법적으로 중앙과 지방권력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생활의 고문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자치분권개헌은 권력구조개편의 곁다리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개헌의 내용이며 그 의의를 이해한다면 자치분권 개헌만이라도 이번 기회에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얼핏 연관 없어 보이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자치분권의 가치가 개헌 속에서 서로 만나야 하는 것이 열사 사망 31주기를 맞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되새겨보는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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