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할아버지한테 떡볶이 해서 갖다 드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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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할아버지한테 떡볶이 해서 갖다 드리까?"
  • 김인자
  • 승인 2018.01.30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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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손 바쁜 경비반장 할아버지

날씨가 추워도 너무 춥다.
작은 아이 민지 데리고 병원에 가야하는데 예약시간이 5시다. 심계옥엄니 사랑터에서 오시는 시간인 4시36분과 맞물려있다.
어쩔수 없이 경비할아버지에게 심계옥엄니 하원 부탁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중앙 경비실로 갔다. 살그머니 문을 여니 강추위에 몸을 잔뜩 움추리고 계시던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마른 얼굴로 맞아주신다.
"그래요, 아무 걱정말고 다녀와요. 근데 어르신 오실 시간 맞춰서 나한테 전화 한 통만 해줘요. 요즘은 날이 너무 추워서 그릉가 내가 정신이 읍어요. 자꾸만 까먹어요."
재활용하는 날이라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잊어버릴 수 있으니 심계옥엄니 오실 시간 맞춰서 당신에게 꼭 전화를 해달라시는 경비반장 할아버지.
바쁘신 분께 괜한 부담을 드렸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병원에 와서도 경비반장 할아버지에게 전화드리는 걸 잊어버릴까봐 핸드폰 알람까지 맞혀 놨는데 이것저것 검사를 하다보니 나도 전화하는 시간을 놓쳤다.
깜짝 놀라 부재중 전화를 확인해보니 전화온 흔적이 없다.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잘 기억하셨다가 심계옥엄니 마중을 제시간에 잘 하셨나보다.
병원서 집에 오면서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시루떡하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샀다. 중앙경비실안을 살펴보니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안계셔서 시루떡하고 커피만 책상위에 두고 나왔다. 멀리서 재활용수거하는 곳을 바라다보니 경비할아버지가 찬바람 속에서 재활용들을 분류하시느라 손이 바쁘다.
혹한 바람속에서 너무도 열심히 일하시는 경비할아버지들.
"할아버지들, 추우시겠다. 엄마, 내가 경비할아버지들한테 떡볶이 해서 갖다 드리까?"
작은 딸 민지가 나를 보며 웃는다.

민지가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 경비할아버지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었다.
"맛이 어때? 조금 싱겁지 않아? 짠거 많이 드심 안좋으니까 이 정도면 될까?" 아이는 열두 번도 더 묻고 맛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양파즙을 따끈하게 뎁혀 보온병에 담아 떢볶이와 함께 들고 나갔다.

"갖다 드리고 왔어? 많이 걸렸네?"
"응, 우리 경비할아버지가 안계셔서 기다렸다가 드리고 오느라고..."
"아, 그랬어? 그냥 드시라고 하고 두고 오지."
"그러면 떡볶이도 양파즙도 다 식어버릴까봐. 떡볶이 드실 시간만이라도 쉬시라고. 안 그러면 경비할아버지들 일만 하실꺼 같아서."
"잘했네 ."
"모자도 쓰고 하심 좋을텐데..."
민지가 보온병을 닦으며 혼잣말을 한다.
"응? 뭐라고?"
"경비할아버지들 말야. 저렇게 추운데 모자도 안 쓰시고 그러다 큰일 나시면 어쩌려고."
"모자도 안 쓰셨어?"
"응, 엄마 있잖아. 우리 아파트 옆에 00아파트 있잖아. 거기 경비원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대."
"이런, 돌아가셨다고? 언제?"
"조금 아까... 경비할아버지들이 말씀하시는 거 들었어. 우리 경비할아부지가 나이도 얼마 안먹었는데 갑자기 죽었다고 불쌍하다고 하셨어."
"이런 경비할아버지들도 놀라셨겠다. 왜 갑자기? 지병이 있으셨나?"
"경비할아버지 말씀으로는 택배기사 아저씨가 와서 말해줬다는데. 심장병이거나 뇌출혈이라고. 65살 밖에 안 먹었는데 경비초소에서 혼자 죽었다고 불쌍허다 그르셨어."
"갑자기 추워지면 할아버지들은 특히나 조심하셔야해. 모자도 꼭 쓰셔야하고."
"그래서 내가 우리 경비할아버지들한테 모자 꼭 쓰시라고 말씀드렸어."
"아고, 우리 딸 잘했네."

"엄마 다른 날은 몰랐는데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서 그런가 오늘 자세히 보니까 우리 경비반장 할아버지 많이 늙으셨어. 지난 여름보다도 아주 많이 늙으셨어."
"여름보다 많이?"
"응, 여름에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학교에서 오는데 아이스크림 사주셨어. 더운데 공부하느라 고생한다고."
"아, 그러셨구나?"
"응, 언니도 경비할아버지가 아이스크림 사줬다는데."
"언니도? 니들이 할아버질 사드려야하는데."
"응, 그래서 나두 몇 번 사다드렸어."
"아, 그랬어? 잘했네 우리딸."
"경비할아버지가 우리 할머니 사랑터에서 오실때 마중도 잘해주시고 일도 너무 열심히 하시고 그러셔서."
자기방으로 들어가던 아이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하는 말.
"엄마, 좋은 반찬하면 경비할아버지한테도 갖다드려. 저번에 보니까 컵라면에 밥 말아드시던데 반찬도 없이?"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니 아이 말마따나 경비반장 할아버지가 오늘 따라 부쩍 늙어보이신다. 암투병하다 돌아가신 짝꿍할머니 임종도 근무하느라 못보신 할아버지. 한스러울 만도 하실텐데 아파트 일을 당신 집안일처럼 정말 열심히 해주신다.
뭘 좀 해다드릴까? 전을 좀 부쳐드릴까?
찬바람만큼 마음이 짠하니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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