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 마실거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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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 마실거리를 찾아
  • 최종규
  • 승인 2010.10.18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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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진찍기 ②] 골목밭 배추는 잘 자란다

도시 재개발 벽보가 빛에 바래고 비에 떨어져 얼룩덜룩 몇 조각만 남았습니다. 도시 재개발이란 누가 왜 하는 일일까요. 가을볕 고운 기운을 살포시 받아 본다면 도시 재개발 같은 일을 애써 안 해도 좋을 텐데요.

 석류라는 열매 맛이 나도록 하는 마실거리가 있습니다. 이 마실거리가 나올 때에 몹시 놀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나는 석류로는 공장에서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내는 마실거리를 댈 수 없을 텐데?

 석류는 무척 따뜻한 곳에서 나는 열매라 했고, 어린 날에는 남녘땅에서만 자란다고 들었습니다. 나날이 따뜻해지기는 한다지만 인천땅에서 석류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힘들었고, 설마 석류를 키우는 집이 있으랴 싶었습니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비로소 석류를 만납니다. 2007년에 꽃그릇에 키우는 조그마한 석류나무 하나를 봅니다. 굵직한 석류 열매를 보니 ‘교과서에 실렸던 석류 이야기 다룬 시’가 떠올랐습니다. 터질 듯한 붉은빛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이듬해 2008년에는 석류나무를 더 찾아보지 못합니다. 그러다 2009년에 골목집 몇 곳에서 석류나무를 알아보고, 2010년에 이르러 쉰 군데가 넘는 골목집 안뜰에 석류나무를 고이 기르는 모습을 마주합니다. 처음부터 시골내기였다면 열매가 안 맺혀 있을 때에도 석류나무인 줄 알아보겠지요. 웬만한 골목집이면 으레 한 그루쯤 돌보는 무화과나무 또한 무화가가 맺히고 나서야 잎사귀 모양을 익히며 무화가가 안 맺히는 동안에도 무화과나무인 줄 알아봅니다. 그러나 아직 매화하고 복숭아하고 살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잎이 다 진 뒤에는 배하고 능금하고 모과를 제대로 가름하지 못합니다. 늘 곁에 두어야 알아볼 테고, 언제나 가까이에서 사귀어야 알아챌 테지요.

 사람들이 사진찍기를 한다며 골목마실을 나온다 할지라도 골목사람 속내라든지 이야기를 살갗으로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늘 곁에 두지 않던 골목동네에 어쩌다 한 번 찾아가서 무엇을 보거나 느끼겠어요. 어릴 적에 살았다 하더라도, 아주 옛날에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하더라도, 바로 오늘 이곳 골목동네에서 살아가거나 자주 드나들며 사귀지 않는다면 속멋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모든 재개발은 땅값과 집값이 낮다는 골목동네를 파헤쳐 높직한 아파트를 올려세우는 데로 쏠립니다. 공무원이든 대학교수이든 건축가이든 글쟁이이든 기자이든 판사이든 교사이든 …… 이른바 전문지식인이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골목동네 자그마한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가요. 보증금 300에 달삯 25만 원짜리 집이든, 보증금 200에 달삯 15만 원짜리 집이든, 또는 보증금 100에 달삯 10만 원짜리 방이든, 가난하다면 가난하지만 가난하다는 틀이 아니라 곱게 살아가느냐 아니냐 하는 틀로 바라볼 때에 앙증맞고 어여쁘며 살가운 살림살이 골목동네 사람들을 어느 만큼 내 이웃으로 삼으면서 도시 재개발을 꾀하거나 생각하거나 말하는지요.

 배추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는다지만, 골목동네 텃밭 배추는 잘 자라기만 합니다. 큰돈 벌자며 어마어마하게 심어 갖은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쓰는 골목밭이 아닙니다. 내 먹을 푸성귀를 내 밥그릇만큼 내 땀을 흘려 알맞게 일구는 골목밭입니다. 돈에 홀려 돈농사를 지었다면 골목밭 또한 남김없이 쓸려내려갔겠지요. 그러나, 식구들 밥상머리에 올릴 만큼 짓는 골목밭 농사는 한결같이 알차게 거두어 알뜰히 즐깁니다.

 감나무는 이제 도시 골목길에서 가장 흔한 열매나무입니다. 여느 감나무라 하더라도 스무 살이나 서른 살은 훌쩍 넘기 일쑤요, 마흔 살이 넘은 감나무마저 있습니다. 감나무 나이가 마흔 살이라 한다면 이 감나무를 어루만지는 골목집 나이는 몇 살이라 할까요.

 주안2동은 퍽 넓습니다. 이 가운데 인천기계공고 뒤쪽에서 도화1동으로 넘어서는 큰길 못 미쳐 자동차 오가는 골목길 한켠에서 몇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는 자리에 탱자나무 소담스레 우거져 있습니다. 탱자 열매 열린 모습을 올려다보며 뒷통수 긁적이며 “탱자나무였구나!” 하고 알아보며 고개를 꿉벅 합니다. 이 댁에 사는 분들이 탱자를 모두 거둔 다음 푸른 잎이 모두 누런 가랑잎으로 바뀐 다음에도 “봄을 기다리는 알몸뚱이 탱자나무”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는지, 추운 겨울날 흰눈이 소복히 내려앉을 무렵 다시금 찾아와서 올려다보고 싶습니다.



6. 인천 남구 주안1동. 2010.10.8.09:50 + F11, 1/80초

 도화1동 제일시장 건너편 석바위길을 지나 체육공원 못 가서 자리하고 있는 태극빌라 꽃밭은 어느 때부터인가 텃밭 노릇을 합니다. 요 조그마한 텃밭에 꽉꽉 들어차도록 배추포기가 벌어졌습니다.

7. 인천 동구 창영동. 2010.10.2.14:00 + F7.1, 1/60초

 꽃밭을 텃밭으로 일구는 골목사람 손길이 있습니다. 헐려 비어 버린 집터 자리 돌을 골라 텃밭으로 일구는 골목사람 손품이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텃밭이든 널따란 텃밭이든 사랑스럽습니다. 큰 텃밭이든 작은 텃밭이든 밭을 일구는 골목사람은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갖은 푸성귀를 애써 길러 고맙게 얻습니다.

8. 인천 남구 도화1동. 2010.10.8.09:39 + F10, 1/80초

 마당이 있어야 감나무를 심든 오동나무를 심든 한다지요. 그러나 골목동네 사람들은 마당이나 앞뜰이나 뒷뜰 하나 없더라도 꽃그릇 하나에 온갖 나무를 심어 열매를 맺습니다. 앵두도 대추도 배도 포도도 꽃그릇에 가꾸어 기르기 일쑤입니다. 마당이 있으면 마당이 있는 대로 감나무 한 그루 알뜰히 돌보고, 마당이 없으면 마당이 없는 대로 헌 플라스틱통 하나 그러모아 예쁜 꽃그릇으로 보살핍니다.



9. 인천 남구 주안2동. 2010.10.8.08:58 + F5.6, 1/50초

 탱자나무 한 그루 길러 노란 열매 얻는 마음결을 읽는 매무새로 도시를 가꾸거나 꾸미는 공무원 한 사람쯤 이곳 인천에 있기를 꿈꿉니다.

10. 인천 남구 도화3동. 2010.10.2.12:24 + F5.6, 1/40초

 먹음직스레 익는 석류가 붉은벽돌 담벼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석류알이 손에 닿습니다. 살살 쓰다듬기만 합니다. 바라보기만 하여도 입에 군침이 돌고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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