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선생을 만든다
상태바
아이가 선생을 만든다
  • 김희주
  • 승인 2018.04.05 07: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49화 - 김희주 / 인천교육연구소, 하늘땅역사교육

대학을 진학할 때 부모님은 교대 가기를 원했다. 어릴 적부터 사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사학과 갔다간 밥 빌어먹기 힘들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호불호가 강한 성격이어서 선생이 되었다간 애들 차별하기 십상이라는 예단도 한몫 했다. 사학과 가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대학 포기하고 공장에 다니겠다는 폭탄선언으로 부모님의 뜻을 기어이 꺾고 말았다. 그런데 결국 학교 밖에서나마 가르치는 일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으니 사람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나마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기 시작할 때 이오덕 선생을 알게 되고 글로나마 선생의 가르침을 새기면서 적어도 나쁜 선생은 되지 말아야겠다 마음먹었는데 사실 나를 선생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이들 몫이 컸다.
 
한 달에 한 번씩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긴 시간만큼이나 수많고 다양한 아이들을 겪었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 나를 찾아온 친구가 있었다. 똘망똘망하지만 저 어린 것이 어찌 다닐까 싶었는데 무려 7년이나 나를 쫓아다녔다. 함께 전국의 많은 유적지를 다녔다. 2박3일간 경주나 부여에 머물면서 역사캠프를 할 때도 빠지지 않고 함께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10명 안팎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고구려유적지 탐방도 다녀왔다. 이번엔 또 어디를 가게 될까 항상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재미도 만끽하게 해 주었다. 그 친구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너 이제 공부해야지, 탐방은 그만 와’ 밀어냈더니 그럼 교실에서 하는 역사공부를 시켜달라고 한다. 결국 그 친구를 중심으로 대여섯 명을 묶어 역사논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고구려유적 탐방 중 연변 일송정 앞에서>


역사를 좋아하는 아이들하고 하는 수업은 늘 재미있었다. 아이들은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토론에 임했다.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었던 시기 나라의 운명을 부여잡기 위한 의병투쟁과 실력양성론을 비교할 때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의 논리로 한쪽 입장을 옹호해나갔다. 불쑥 너희가 그때 살았던 사람이었다면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물었더니 뜻밖에도 가장 얌전해보인 친구가 -의병투쟁을 지지했었는데- ‘죽여버리고 싶을 것 같다’해서 실력양성론을 지지한 아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지나가는 말끝에 대학시절의 합숙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2박3일 혹은 그보다 길게 방 하나를 잡아서 아침 먹고 공부하고 점심 먹고 공부하고 저녁 먹은 후 술 마시고 토론하고. 그때는 무엇이든 참 치열하게 했나보다. 그게 멋있어 보였는지 아이들은 우리도 해보자고 아우성쳤다. 주말을 잡아서 1박2일로 학습엠티를 갔다. 짧은 기간이라 하나의 주제를 제시해주었다. ‘변혁’, 역사 속에서 변혁이란 주제와 어울리는 사건을 하나씩 정리해 오라고 맡겼다. 내심 ‘이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할까’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내 기대를 넘어섰다. 혹여 겹칠까봐 저희들끼리 조율하더니 프랑스혁명,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4.19 네 개의 주제를 잡아서 각자 정리해왔다. 과제를 내밀고 토론에 임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스스로도 대견해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이 아이들과 함께 했을 때가 내가 가장 선생다웠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고 더 새로운 역사탐방을 기획하게 만들었다.
 
그 중 한 명만 역사 관련한 학과로 진학하고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원하는 바대로 대학에 갔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 맥주집에서 만났다. 꼬맹이 때 만나서 이렇게 크다니 혼자서 감회에 젖었는데 술집을 나선 아이들이 ‘선생님, 2차 가요.’한다. 주책 맞게 가슴 한쪽이 뜨뜻해진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며칠 후 한 친구한테서 문자를 받았다.
‘선생님, 감사해요. 생각해보니 제 인생 20년 중 10년을 선생님과 함께 했어요.’
 
좋은 선생이 좋은 아이들을 만드는 것처럼 좋은 아이들은 선생을 좋은 선생이 되도록 애쓰게 만든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 좋은 아이들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떤 아이는 내 한계를 시험해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도를 닦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만난 적도 많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아이들도 달라졌다. 내가 진심을 다해 자신을 인정한다고 믿으면 아이도 나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끝내 실패한 적도 있었다. 당돌하고 공격적이기까지 한 아이들한테 내상을 입은 적도 있어 이제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회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견디어낼 에너지가 남아있는 걸 보면 그때 그 친구들이 내게 준 영양제가 세긴 셌나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