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잘 먹었다. 눈이 다 번쩍 떠지는거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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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잘 먹었다. 눈이 다 번쩍 떠지는거 같구나."
  • 김인자
  • 승인 2018.05.0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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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기력이 쇠하시는 아버님2
 
 
"아이구 어르신,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하두 안 오셔서 어디 편찮으신가 했어요."
여주인이 시아버지를 보자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부평시장 안쪽에 깊숙히 숨어있는 칼국수집은 우리 시아부지의 오래된 단골집이었다.남자주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면발을 찰지게 뽑아내고 있었다. 3500원짜리 칼국수집 안에는 이른 더위에도 뜨거운 칼국수를 먹는 사람들로 꽉 찼다. 손님의 대부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뜨거운 김이 펄펄나는 칼국수 국물을 그릇째 들이키며 할아버지 몇 분이 "아이구, 시원하다."고 하신다. 그 소리에 때 이른 더위가 싹 가시는 듯 했다. 할아버지들 얼굴이 기분좋게 금새 버얼개지셨다.
 
"콩국수 하나요?"
"아직 안해요. 다음 주에 시작할거예요."
 
칼국수 면발을 찰지게 뽑으시는 바깥주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답해주신다.
 
"콩국수 두 그릇 줘요. 내가 작년에도 이집 콩국수 먹고 입맛이 돌았는데."
 
콩국수 아직 안해요~ 소리를 못들으신 시아버지가 콩국수 두 그릇 줘요 하신다.
우리 시아버지 이젠 말도 잘 안 들리시나보다. 마음이 아프다.
 
"아부지, 콩국수 안한대요."
"안한대? 왜 안해? 작년 이맘 때도 여기서 콩국수 내가 먹었는데"
"그르게, 아부지. 아직 안한다네요."
"콩국수를 안해? 그럼 그냥 가자." 하실까봐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우리 시아부지 기분좋게
"그래? 그럼 칼국수나 먹고 가자."
하신다.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어 시아부지를 얼릉 자리로 모셨다. 그리고 주방으로 가서 안주인에게 살짝 부탁을 했다. 콩국수 시작하면 미리 내게 전화 좀 달라고.
 
"아부지 뜨거워요, 후우~후우 불어가믄서 천천히 드세요."
"그래, 알았다. 내 걱정허지말구 너두 어서 먹어."
앞접시에 칼국수를 조금 덜어서 식혀서 드렸다.
"아부지 아~"
내가 먹으께 그러실 줄 알았는데 시아부지가 아~ 하고 입을 벌리신다.
그 모습이 꼭 어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 같다. 마음이 또 짠했다.
 
"내가 먹으께. 너두 어서 먹어."
시아부지가 칼국수를 맛있게 드신다.
김치를 잘게 잘라서 아부지 수저에 올려드렸다.
 
"내 걱정하지말고 어서 너두 먹어."
"예, 아부지."
시아부지가 젓가락을 저리 잡으셨나?
젓가락질도 어린애처럼 서투시다.
 
"아부지, 맛있어요?"
"응, 그래. 괜찮다. 맛있다. 어서 너두 먹어."
"예, 아부지."
시아부지가 당신 그릇에 있는걸 덜어주신다.
 
"아부지 제껏도 많아요. 아부지 천천히 많이 드세요."
"너 많이 먹어. 니가 많이 먹고 튼튼해야 우리집이 평안하지."
"저보다 아부지가 건강하셔야 우리집이 튼튼하지요."
"그르냐?"
"그럼요, 아부지. 아부지가 우리집 대장이시잖아요 . 그러니 천천히 꼭꼭 씹어서 많이 드세요."
"오냐, 그래.근데 너는 어째 먹는게 션찮냐?
왜 맛이 읍냐? 왜케 안먹어?"
"맛있어요, 아부지. 저두 먹고 있어요."
 
"아유, 잘 먹었다. 눈이 다 번쩍 떠지는거 같구나."
시아버지가 칼국수 한 그릇을 맛있게 드셨다.
자식입에 밥 들어가는거 보면 부모는 먹지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했던가?
도통 식사를 못하시던 시아부지가 맛있게 칼국수 한 그릇을 다 비우시는걸 보니 나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르는 듯 했다.
주인에게 시아부지 모르시게 봉투를 달래서 내가 먹던 칼국수를 담았다. 시아부지가 나 안먹었다고 걱정하실까봐서.
맛있게 칼국수를 먹고 나오는길.
"떡사주까?"하시며 시아부지가 떡집에서 시루떡을 사주셨다.
"다음엔 강화에 가서 꽃게탕 먹자. 아부지가 사주께. 새우튀김도 먹자. 오늘은 이 애비가 거기까지 갈 기운이 없으니까 이담번에 꼭 가자. 아까 보니까 너 칼국수 먹는게 영 션찮던데 너 입에 맞는거로 사주마."
아부지가 언제 보셨지?
"아녜요 ,아부지. 맛있었어요. 이거봐요 집에 가서 먹을라고 싸왔잖아요."
"퉁퉁 불어서 그게 무슨 맛이 있겠냐?
그거 먹지말고 이 시루떡 먹어. 너 시루떡 좋아하자너."
"예, 아부지 ?"
 
"아부지?"
"오냐, 그래."
"나 아부지한테 부탁이 있는데요... 꼭 들어주실거지요?"
"부탁? 모냐? 뭐든지 말해라. 니 부탁은 내가 다 들어주마."
"예, 아부지, 꼭 들어주셔야 돼요."
"그래, 말만 해라. 내가 다 들어주께."
"아부지 입맛 읍으셔도 조금씩이라도 잘 드셔야돼요. 하부지랑 할무니들은 한 끼만 거르셔도 기운 떨어져서 큰일 나세요."
"그러게... 그르터라. 이 애비 어제도 차가지고 나갔다가 곰방 들어왔다. 안되겠다 싶어서."
"그니까요? 아부지. 아부지 우리 운동삼아 요기 원적산 가서 꽃구경하고 갈까요? 요즘 봄꽃이 그르케 예쁘다고 하던데요."
"이뿌대? 그깟 꽃을 보러 거기까지 가?"
"우리 아부지 힘드시구나. 그럼 담에 갈까요?"
"아니 니가 꽃인데 못허러 꽃을 찾아 가냐고."
"아이구 아부지~이"
다행이다. 우리 시아부지 농담하시는거 보니 3500원짜리 칼국수 한 그릇에 입맛이 도셨나보다.
"아부지, 콩국수 시작하믄 전화준댔으니까 콩국수 먹으러 또 와요."
"그래, 그래. 콩국수 먹어도 되고. 장어 먹으러 가자. 아부지가 사주께. 장얼 먹어야 힘이 나지."
시아부지 팔짱 꼭 끼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아까보다 울 시아부지 다리에 힘이 생기신 것도 같다.
3500원짜리 칼국수 때문인가? 아님 따뜻한 봄바람이 살살 ~사알~살. 울 아부지 밀어줘서 그릉가아~~~~~
이든저든 나는 좋다. 울 시아부지 칼국수 한 그릇 뚝딱 다 비우셔서 내가 다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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