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들 손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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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들 손이 없어서"
  • 김인자
  • 승인 2018.05.29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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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보행기로 이동하시는 할머니(1)


며칠째 계속해서 비가 내리던 날. 빌린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 가는길. 횡단보도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서계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조용히 다가가 할아버지 뒤에서 살짝 우산을 받쳐드렸다. 당신 머리 위에 없던 우산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할아버지는 처연히 앞만 쳐다보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어디까지 가시려나? 걱정이 되어 할아버지가 가시는 곳까지 모셔다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직진 방향 횡단보도에 역시나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서 계신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키가 작고 바싹 마르신 할머니는 보행기에 의지해 엉거주춤 서 계셨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십도로 구부러져 있었고 오른쪽 다리 무릎 뼈가 한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할아버지가 서계신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자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천천히 건너가기 시작하셨다. 순간 어찌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할아버지를 모셔다드리자니 할머니가 혼자 비를 맞고 가셔야할테고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려니 할아버지가 저렇게 또 혼자 가시도록 지켜만 봐야하고 갈등이 생겼다. 고민 하는 것도 잠시 나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기로 결정했다. 이럴때 내 몸이 두 개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참 아쉬웠다.  내가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는거로 결정을 내린건 그래도 할아버지는 걸으시는게 괜찮아보여서였다. 반면 할머니는 보행기에 의지해 서 계신데도 자세가 불안정해보이고 툭 튀어나온 무릎 뼈가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할아버지가 횡단보도를 다 건너가셔서 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눈은 할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내 시야 밖으로 걸어나가셨다. 할아버지가 가시는 곳이 멀지 않기를 바라며 보행기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조용히 다가가 보행기 할머니 머리에 우산을 살며시 받쳤다.
할머니가 "바쁠턴데..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하며 천천히 보행기를 미셨다. 나도 할머니의 보행기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할머니, 비오는데 우산도 없이 어디 가셔요?"
비가 할머니 어깨에 떨어지는거 같아 할머니 어깨에 팔을 둘러 안쪽으로 조금 당겨 안았다.
"나? 교회에 가요."
"아, 할머니 교회가시는구나아. 할머니 비도 오는데 우산 쓰고 나오시져어."
"구찮아서 안 갖고 왔지. 얘를 끌어야되니까 우산을 들 손이 없어서."
"아, 예. 그러시겠어여" 대답하며 난 할머니가 끄시는 보행기를 살펴봤다. 혹시 우산을 파라솔처럼 펴서 묶을 곳이 있나하고. 그러나 보행기 어디에도 펼친 우산을 꽂을 곳이 마땅치않았다. 어찌 어찌해서 보행기에 우산을 펴서 묶어놓는다고 해도 이동하면서 떨어질 수도 있고 할머니 시야를 가려서 위험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사시는 곳은 어디세요?"
"부평."
할머니가 선선하게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에궁 할머니 교회를 부평서 이 먼곳까지 오시는거예요? 할머니댁 근처에는 다니실 만한 교회 없어요?"
" 내가 사는 곳에도 교회야 많지. 근데 여긴 친구가 다니는 교회라서 나도 따라 댕기다보니. 오래 다녔어."
"아, 할머니 친구 분이랑 같이 다니시는구나. 근데 할머니 친구 분은 오늘은 왜 같이 안 오셨어요?"
"아 그건 나랑 같이 다니믄 늦어지니까."
"할머니랑 다니면 늦어진다고요?"
"응, 나는 전철을 타도 이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큰 차가 타믄 나는 못 타."
"큰 차요?"
"응, 큰 차."
"큰 차가 뭐예요? 할머니?"
"있어. 앉아있으믄 다 데려다주는거. 그거에 밀리고 또 사람들이 많으면 서로 저 먼저 타려고 서두르니까 난 아예 떠밀려서 탈 생각을 못해. 사람들 다 타고 나믄 그때 맨 꼬래비로 타니까 친구는 나랑 집에서 같이 떠나도 먼저 가지. 내가 느려 터져서 나랑 같이 맞출 수가 없어."
"할머니 친구시라면서 할머니랑 같이 다니시면 좋을텐데요. 오늘같이 비오는 날엔 우산도 받쳐주시고 하면 좋을텐데."
물론 이 말은 겉으로 하지 않았다. 말씀드려봤자 들어주셨음 하는 친구할머니가 들으시는게 아니니까.

"할머니, 사투리 쓰시네요? 지방서 오셨어요?
"응, 진주"
"아 예에. 인천에 오신지 얼마 안되셨나봐요?"
"오래 됐어. 근데 말 붙일 사람도 없고 어울리는 사람도 없으니까 여기 말을 배울 틈이 없지."
"아, 그르셨구나.할머니 자손들은 없으세요?"
"있어. 아들 하나."
"같이 사세요?"
"아니, 아들은 안양살아. 주방장이야."
"아, 그러시구나... 손주는요?"
"한 명인가 있나?..."
"아, 예."
"아드님이 할머니 보러 자주 오세요?"
"아니, 바빠서 잘 못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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