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껴안고 능력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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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껴안고 능력을 보세요"
  • 이혜정
  • 승인 2010.11.0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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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자립 안마시술소 인천 제1호점 '안마케어'


취재 :이혜정 기자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어둠이 아닌 빛을 보면서 일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게요."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에서 '안마케어'를 운영하는 시각장애인 2급 정대완 (47) 팀장과 시각장애인 1급 김이연(42) 안마사. 이들은 '가슴으로 맺은 오누이'이다. 이들은 2007년 장애인 전문학교인 혜광학교에서 제7기생으로 만나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안마사' 직업을 건전하게 만들고자 얼마 전 안마시술소를 열었다.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 시각장애인들은 직업을 얻는 데 너무 힘이 듭니다. 그 어려운 직업마저도 퇴폐안마업소에서 일할 수 없는 실정이지요." 정 팀장의 '열변'이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비장애인들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수 있는 생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안마시술소를 마련했다"고 강조한다.

"안마케어를 개업하기 이전 저녁에 운영하는 안마시술소에 다닐 때에는 시간당 1만9천500원 정도 임금을 받고 언어적인 성희롱, 골방대기 등 인간이하 대접을 하는 곳이 허다했죠. 유일한 생계수단인 안마가 점점 음지에 가둬져 더욱 세상과 고립되는 거 같아 좀 더 밝고 건강한 안마문화를 만들려고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 안마사의 말이다.

▶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사람들

이들은 후천적 장애인이다. 전씨는 젊은 시절 삼성반도체 시스템실에서 일을 하다가 1992년 28살때 시력을 잃었다. 어느날 갑자기 주기적으로 석 달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씩 눈이 불편해져 병원을 찾아가도 병명을 알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보름에 한 번씩 눈이 뿌해지고 1주일간 지속하자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결막염. 이후 '배제트'라는 병명의 진단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

이후 그는 생계를 유지하려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모든지 했다. 1997년 눈이 더욱 나빠지기 전 기술을 익히려고  금형기술을 배웠지만 도중에 왼쪽 엄지와 검지 손가락 한마디를 잃었다. 2002년 아내와 이혼을 하고 홀어머니와 자녀 2명을 위해 또 다시 생계터로 뛰어들었다.

정씨는 2004년 삼산농수산물시장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했다. 당시 잘 보이지 않아 넘어지고 다치고, 심지어 멀쩡한 채소를 밟아 보상을 해준 적이 허다했다.

그는 "후천적 장애를 얻다 보니 시각장애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면서 "위험한 일이라도 생계를 위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어머니 손을 잡고 농수산시장을 찾은 시각장애인을 만나 '혜광학교' 소개를 받고 2007년 제7기생으로 입학을 했다.

김씨는 평범한 주부였다. 2003년 갑자기 시력이 안 좋아지면서 오른쪽 눈에 녹내장이라는 판정을 받아 실명했다. 그나마 있는 왼쪽 눈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마저도 시력저하가 진행돼 시신경을 모두 잃었다.

졸지에 시각장애인이 된 김씨는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지자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면서 "당시 살아가는 데 의욕이 없어지고 자포자기 상태로 방안에 누워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3년 동안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자살을 하려고 수면제 30알을 모아 유서를 쓰고 있는 중 한 종교인을 만나 다시 세상과 만났다.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공인중개사 준비를 하다가 시험에 떨어져 고민하던 중 동료 시각장애인을 만나 혜광학교를 추천받아 2007년 입학하게 됐다.

김씨는 혜광학교에서 안마자격증을 따려고 해부생리, 침구, 안마지압, 보건, 이료임상 등 이론과 실습을 2년 동안 반복한 끝에 지난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 간병생활에 지친 남편과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고 한다.
 
정씨와 김씨는 혜광학교 동기생으로 만나 지난해 의료법 제 82조 제 1항 및 안마사에 관한 규칙 제3조에 의한 자격증을 따 다시 일어섰다. 

▶ 평탄하지만 않았던 사업

정씨는 혜광학교를 졸업하기 1년 전인 2008년 동기 시각장애인들에게 대낮에 운영하는 안마시술소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때 시작하기로 한 인원은 4명.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동기생 1명이 사업을 포기하고 1명은 남편사업으로 김해로 이사를 가 2명의 시각장애인이 사업을 진행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재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전씨는 살고 있던 전세집을 팔려고 집주인을 만났다. 그런데 집주인은 전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전세값의 반을 내주면서 그냥 살라고 제안을 해 자금을 마련했다.

형부에게 더 자금지원을 받으려고 말을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우려의 소리'뿐이었다. 비장애인들이 사업을 해도 망하는 게 허다한데 눈이 어두운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겠냐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확고한 그의 의지를 보고 형부는 결국 자금을 지원해줬다.

이밖에 전씨는 비장애인 친구 도움을 받아 안마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고 한다.

▶ 아직은 어렵지만 만족을 느껴요

이들은 안마사업을 시작한 뒤 아직 힘든 점은 많지만, 일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손님, 대변주머니를 달고 다닐 정도로 병세가 악화한 손님 등이 안마를 통해 '즐거움'을 얻었다.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한 일본인은 낮에 '건전한' 안마를 받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안마케어'를 찾았다. 그는 한국에 종종 방문하면서 받은 안마중 최고였다며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또 얼마 전엔 브라질 주지수 선수인 루밴스 찰스(세계 70kg 이하 체급에서 4회 연속 세계챔피언)가 '안마케어'를 방문했다. 2006년, 2008년, 2010년 한국을 3차례 찾은 그도 안마를 받은 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주지수 동호회 회원들이 수차례 방문해 안마를 받았다고 한다.

▶ 이들의 바람

정씨와 김씨는 시력이 희미해지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버린 게 다행이었다. 지금과 같은 즐거움을 맛볼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직 벌이가 많지는 않지만, 시각장애인들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이들은 말한다.

정씨는 "나 역시 그랬듯이 비장애인들도 예비장애인"이라며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자립을 통해 비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씨는 "시각장애인 자립 안마시술소 인천 제1호점인 '안마케어' 사업이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후천적 장애인들이 좌절하지 않고 건전한 곳에서 일할 수 있길 바란다"면서 "나아가 인천이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지역으로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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