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떨리는 그 여섯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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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떨리는 그 여섯글자.
  • 김찬미
  • 승인 2018.08.2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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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칼럼] 김찬미 / 인성초교 교사




뉴스의 한 페이지에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여섯글자가 보인다.

이제 이산가족 상봉이 시작되었다. 태풍에 아랑곳없이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으로 모여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 그분들의 사연이 전해진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있다면 이산가족 상봉장에 봉사를 하는것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중에 이산가족이 계신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말만 들으면 너무 떨린다.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니 우리 반 아이들과 했던 수업 때문인 것 같다.

 

요즘은 교사들이 국가에서 내려온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기 보다 성취 기준에는 맞추되 아이들의 수준과 흥미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들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학교 역시 약 4년 전부터 교육과정 재구성을 열심히 해왔는데 그 때 이산가족에 대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들 자연, 가족, 친구, 나와 같은 개념들을 함께 배우다가 그것들이 본래의 모습들 잃어가는 모습들을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는 구성으로 교육과정 재구성이 이루어졌다. ‘가족’ 또한 마찬가지의 개념이었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함께하는 존재인데 가족인데도 함께 하지 못하는 이산가족에 대해서 아이들과 함께 알아보았다.


 마침 그 시기에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고 아이들에게는 이 뉴스가 가장 좋은 교육 자료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는데 내가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슬펐다.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자료를 준비하다보니 하나 하나의 사연이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내 얘기처럼 와 닿았고 아이들에게 잘 전달해야겠다는 책임감마저 들었다.

 

 6.25 관련하여 좋은 영화 자료들도 많아서 활용하기 좋았다. 처음엔 어떻게 가족이 헤어지게 되는지 아예 감을 잡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국제 시장’의 첫 장면을 보여주었다. 주인공이 어깨에 업고 배를 힘겹게 올라왔는데 동생을 보이지 않는다.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얘기하자 아버지가 동생을 찾아서 다시 내려간다. 그렇게 아버지와 동생을 북한에 두고 배를 타게 되는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아이들이 여러 명 울기 시작한다. 말로 여러 번 설명을 해도 아이들이 감이 잘 안 잡히는 것 같은 아이들이  이 영상을 보면 이산가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 더욱 오는 것 같다.




 ’ 태극기 휘날리며’ 의 마지막 장면도 아이들과 함께 본 적이 있다. 한 할아버지가 국군 유해발굴 작업에서 발굴된 형의 시신을 보면서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요 말좀 해요~” 라는 그 말이 아이들과 나를 울렸다. 그리고 이런 영상 덕분에 아이들에게는 먼 옛날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가 겪으셨던 일이라는 것을 다가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수업을 매년 계기교육, 또는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아이들과 하게 되면 그 분들의 아픔에 대해 정말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셨지만 누구보다 아프게, 그리고 힘겹게 그리고 존경스럽게 살았던 분들... 많은 분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셨고, 돌아가셨고, 희생하셨는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더 얘기하고 기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젊은 시절 일제강점기를 겪고 전쟁을 겪었던 (내가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와 자주 얘기를 나눈다.  역사에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할머니가 사셨던 인생 얘기도 듣는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이신데 몇 년 전 생신을 축하드리러 강원도 원주에 함께 간 적이 있다. 그 때 저 먼 땅을 바라보며 “예전에는 이 곳에서 전쟁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생일 잔치를 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구나”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래서 현충일이 되면 6.25 전쟁일이 되면 우리 나라 땅끝 해남에 계신 할아버지가 더욱 생각난다.


 나까지만 해도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전쟁을 겪었었는데 이제 내가 만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먼 증조할아버지 세대가 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대의 사이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전해야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아이들과 1학기 동안 사회 수업으로 인천상륙작전, 6.25 전쟁 등에 대해서 얘기해줬던 것이 생각났다. 또한 2학기에 패밀리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도덕과의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관련하여 수업자료로 아이들에게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정치적인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질문이 오히려 더 예리해서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 이렇게  만나면 이제 이 분들은 같이 사시는 거예요?”

“아니, 이 분들은 3일을 만나신 후 다시 헤어지셔야돼”

“그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몰라”

“그럼 이 분들은 가족인데 가족이 다시 만나지 못하게 하면 안되는거 아니예요? 왜 못 만나게 하는거예요?”

라며 나에게 속상함을 표출하는데 나 역시 할말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몇 십 년만에 그리워하던 가족이 만나는데 왜 헤어져야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그분들이 당연히 헤어져야함을 받아들이게 되어야 할까 생각해보니 서글퍼진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반 친구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도  알고 있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냥 넘어가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전쟁 중이니까, 그 분들은 나이가 많으시니까, 그렇게 핑계를 대며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분들이기에 더 많은 분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 같다. 이산가족 간의 화상통화나 편지를 주고 받는 연락할 수 있는 방법들이 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청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 가지고 존경하며 후손들에게 잘 전달해야하는 의무와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이산가족 상봉이 끝났다.

 이번엔 아이들 수업을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아서 자료를 많이 찾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상봉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이 먹먹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채 그 곳에 있는 것처럼.

그리고 더 먹먹한 것은 아이들이 했던 질문에 아직 답을 할 수 없었고 그리고 이 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도 나 스스로가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답을 찾아보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 그렇다면 정말 의미있는 수업으로 아이들에게도 기억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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