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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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살고 싶어요
  • 최종규
  • 승인 2010.11.03 14: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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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한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삶이란 참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삶 또한 몹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한 사람을 아낄 수 있는 삶도 그지없이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누군가를 믿는 삶도 아름답고, 누군가한테서 믿음을 받는 삶도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삶이나 누군가한테서 사랑받는 삶 또한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아끼는 삶이든 누군가한테서 아낌받는 삶이든 더없이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아낌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믿거나 사랑하거나 아끼자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넋은 참다워야 하고 내 말은 고와야지 싶습니다. 착한 마음과 참다운 넋과 고운 말로 즐겁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누군가를 믿거나 사랑하거나 아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만화책을 고를 때면 언제나 믿음과 사랑과 아낌을 떠올립니다. 나 스스로 내가 믿을 만하고 사랑할 만하며 아낄 만한 작품을 즐겁게 사들여 읽자고 생각합니다. 나부터 기꺼이 사랑하는 작품을 기쁘게 읽어 내 옆지기하고 나란히 읽을 뿐 아니라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뒷날 고이 물려주어 서로서로 읽자고 생각합니다.

 일본 만화쟁이 오자와 마리 님 새 작품 《이치고다 씨 이야기》 1권을 봅니다. 늘 즐겨찾는 만화가게에 《이치고다 씨 이야기》 1권이 새로 나와 얌전히 쌓인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손을 뻗어 맨 위에 얹힌 녀석을 살짝 집어 값을 셈합니다. 만화가게에서 나오기 무섭게 살살 비닐을 뜯습니다. 만화책을 싸던 비닐은 책 끝자리에 곱게 펴서 꽂습니다. 덜컹거리면서 밀리는 전철에서 싱긋빙긋 웃으며 책장을 넘깁니다.

.. “너, 설마 전엔 고양이였니?” “아, 응. 어떻게 알았어?” “바로 오늘 아침에 들었거든.” “뭐, 말하자면 길긴 한데. 내 고향은 지구와는 다른 공간이야.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라는 그릇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다툼도 기아도 없느 평화로운 세계.” “천국?” “아니. 아마 우주 어딘가의 진화한 혹성일걸.” ..  (19∼20쪽)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보면서 내 삶을 나 스스로 얼마나 착하게 꾸리는가를 돌아봅니다. 참다운 사람길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차분히 실린 만화를 읽으면서 내 삶은 내가 얼마나 나다우며 참다웁게 일구는가를 곱씹습니다. 고운 넋을 고이 건사하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펼치는 만화를 ‘둘레에서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들 하나도 못 느낀’ 채 받아들이며 내 삶을 내 손으로 곱게 어루만지는가를 헤아립니다. 《이치고다 씨 이야기》는 만화쟁이 오자와 마리 님이 새롭게 선보이는 새로운 믿음과 사랑과 아낌이 듬뿍 배어 있다고 느낍니다.

 ‘이치고다 씨’라는 이름은 만화 주인공 ‘이온’이 달삯 내며 살아가는 도시 자취방에 홀로 덩그러니 있던 ‘인형’이자 ‘이 인형에 넋을 담아 목숨을 잇는 다른 별 사람’ 이름입니다.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던 이치고다 씨는 평화롭지 못한 지구별에 어느 날 문득 찾아들면서 메마르거나 팍팍한 모습을 숱하게 마주합니다. 때때로 착하며 고운 사람을 마주할 때에 “고양이는 말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26쪽).” 몸뚱이는 고양이이면서 사람이 하는 말을 하니까, 사람들은 ‘괴물 고양이’라며 놀랍니다. 고양이가 늙어서 죽을 무렵 이치고다 씨는 새로운 몸을 찾아 어느 회사원 아가씨가 어릴 적에 애틋하게 갖고 놀다가 잊어버리고는 내팽개친 인형으로 스며듭니다. 그런데 이 회사원 아가씨는 그저 사탄이라느니 무어라느니 떠들면서 뒤도 안 돌아보며 내빼기만 할 뿐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비어 있던 삯집에 만화 주인공인 이온이 들어왔고, 이온이라는 젊은 사내는 ‘인형이 말을 하건 춤을 추건’ 딱히 대단히 여기지 않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입니다.

 몸이 인형인 이치고다 씨가 “나……, 안은 텅 비었을 텐데.” 하고 말할 때에, 이온이라는 젊은 사내는 “아니야, 이치고다 씨의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잖아(36쪽).” 하면서 따뜻하게 어루만질 줄 압니다. 이리하여 인형에 몸을 맡긴 이치고다 씨는 “맞다. 이온한테도 가르쳐 줄게. 내 비장의 수화. 나는·당신을·좋아·해요. 내일 데이트에서 해 봐(54쪽).” 하면서 제 마음을 살포시 드러내기도 합니다.

.. “기껏 수화 가르쳐 줬는데, 쓸 기회가 없었네.” “응, 하지만 뭐, 급할 거 없잖아?” “그래.” ‘이 아인 어리버리하지만, 중요한 건 파악하고 있어.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필요한지.’ ..  (77쪽)

 한국이든 일본이든 날마다 새로운 만화가 수없이 쏟아집니다.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만화를 찬찬히 돌아보면, 으레 치고박으며 다투는 이야기라든지 끝없이 빨려들어가는 풋사랑 이야기라든지 조금 전문가 티를 내는 이야기(이를테면 ‘요리 만화’나 ‘법을 다루는 만화’ 같은)입니다. 따뜻한 품을 보여주거나 너른 사랑을 나누거나 고운 가슴을 열어젖히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지 못합니다.

 우리 삶이 몹시 힘든 나머지 만화를 그리는 분들로서도 따뜻한 품보다는 피 튀기는 다툼판을 그릴밖에 없다 할 만합니다. 내 삶이든 네 삶이든 무시무시한 도시에서 살아남자면 그악스레 엉겨붙거나 모질게 잡아뜯어야 하니까, 이런 굴레에서 홀가분한 채 참사랑과 참믿음과 참아낌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할 만합니다. 돈 없이는 못 산다 하니까 고운 가슴을 섣불리 열어젖힐 수 없겠지요. 나로서는 고운 가슴을 스스럼없이 열지만, 맞은편에서는 뭐 이런 바보 멍텅구리가 다 있나 하면서 금세 등을 치거나 후리기 일쑤잖아요.

.. “이치고다 씨도 고향이 그리울 텐데 나만 가는 것도 미안하고, (내가) 시골에서 돌아왔는데 (이치고다 씨가) 집에 없으면 엄청 충격받을 것 같아. 내 고향 보고 싶지 않아?” ..  (89쪽)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1권을 보면서 싱긋빙긋 웃습니다. 활짝 웃거나 까르르 웃을 일은 없습니다. 가슴이 저릿하거나 짠할 일 또한 없습니다. 그예 빙그레 웃으면서 한 장을 넘기고 두 장을 넘깁니다. 그냥 가볍게 그은 몇 줄 금일는지 모르나, 만화쟁이 오자와 마리 님이 보여주는 ‘주인공 얼굴빛’과 ‘사람들 몸가짐’과 ‘이런저런 말마디’를 곱씹으면서 살가이 맞잡을 삶을 떠올립니다.

 만화라는 틀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한 품으로 감싸며 따뜻한 삶을 그리는 작품이 있다 한다면, 문학 가운데 시와 소설이라는 틀에서는 어떠한 작품이 따뜻할까 하고 되뇝니다. 예술이라는 사진 가운데 따뜻함을 곱다시 펼치는 작품으로 무엇이 있을까 가늠해 봅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어깨동무하며 읽는 그림책 가운데에는 누구 작품이 따뜻한 손길로 피어나고 있는가 갸우뚱갸우뚱 짚어 봅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 문화에서, 우리 터전에서, 우리 사회에서, 우리들은 얼마나 ‘따뜻함’ 한 마디를 간직하면서 사랑하는 나날인지 궁금합니다.

.. “슬슬 가야지. 누나가 걱정하겠다.” “정말 그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그럼 누나 결혼도 축하해 줘.” “좋은 사람이면 축하해 줄 거야.” “진짜지?” “그럼.” ..  (113∼114쪽)

 해마다 가을녘이면 스웨덴에서 뽑는 노벨문학상 이야기로 슬며시 시끌벅적합니다. 이제 한국 문학쟁이 가운데에서 노벨문학상 받는 이가 하나쯤 태어나야 하지 않느냐고 들썩입니다.

 어쩌면, 노벨문학상 받은 한국 글쟁이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지요. 나라밖으로 한국 문학이 이쯤 된다며 떵떵거리거나 자랑하고 싶을는지 모르지요.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받는 분이 태어난다면 이분 문학뿐 아니라 여러모로 한국 문학밭이 한껏 부풀어오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2010년 노벨문학상이건 2000년 노벨문학상이건 1990년 노벨문학상이건 무슨 대수일까 잘 모르겠습니다. 2020년 노벨문학상이든 2030년 노벨문학상이든 무엇이 대단할까 알 노릇이 없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아닌 다른 숱한 문학상 가운데 하나라도 꼭 받아야 할는지요. 문학상이 아닌 이런저런 상장을 하나쯤은 걸쳐야 문학다운 문학이라 손꼽을 수 있나요.

 만화책을 놓고도 무슨무슨 상을 주곤 합니다. 그런데 무슨무슨 상을 받은 만화 작품이야말로 온누리에 가장 빛난다든지 가장 아름답다든지 가장 사랑스럽다든지 가장 거룩하다든지 가장 훌륭하다든지 하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겠습니까.

 만화이든 문학이든, 시이든 소설이든, 사진이든 그림이든, 춤이든 노래이든 모두 똑같습니다. 내 가슴으로 사랑을 심어 놓고 믿음을 스며 놓으며 아낌을 베풀 수 있으면 좋습니다. 따뜻하게 즐기어 나 스스로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가운데 내 동무와 이웃하고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삶으로 이끄는 좋은 책동무라면 넉넉합니다.

..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야.” “뭐어? 충분히 수상하잖아. 역시 반대야.” “그냥 질투 아니고?” “당연하지! 아냐. 그런 녀석한테는 누나가 아까워. 누나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못 돼.” ..  (133쪽)

 이제 막 1권이 나왔을 뿐인 《이치고다 씨 이야기》인데 2권은 언제쯤 나올는지, 이어그리기는 언제까지 할는지, 한국말 번역은 몇 권까지 이루어질는지 기다립니다. 기다리며 꿈을 꿉니다. 날마다 내 몸을 따뜻하며 넉넉하게 채워 주는 고마운 밥 한 그릇과 같은 고마운 만화책 한 권인 《이치고다 씨 이야기》 2권을 날마다 아침에 새로 쌀을 씻어 냄비에 불을 넣어 밥을 하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기다리며 비손을 합니다. 아무쪼록 나부터 내 삶터에서 내 살붙이하고 먼저 따뜻하게 얼싸안으며 사랑스럽게 잘 살아가자고.

.. “음. 행복해.” “맛있어?” “응. 먹어 볼래?” “마음만 받을게.” ..  (156쪽)

 제가 제 살붙이하고 나눌 수 있는 무언가 한 가지를 꼽으라면, 아마 한 가지밖에 없을 텐데 사랑뿐입니다. 저는 제 살붙이하고 돈을 나눌 수 없고, 이름값이나 권력을 나눌 수 없습니다. 저한테는 돈·이름·힘이란 처음부터 없었고, 이즈막에도 없으며, 앞으로도 찾아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많이 벌고 훨씬 많이 벌어야 아이라든지 집식구라든지 한결 알뜰히 돌볼 수 있다고들 둘레 사람들이 말씀합니다만, 저로서는 돈 버느라 집 바깥에서 용을 쓰며 기나긴 나날을 보내기보다는, 아주 적은 돈으로 조그맣고 조촐한 살림을 꾸리며 이 작은 시골집에서 이 작은 사람들과 이 작은 사랑을 작디작게 피워 올리고 싶습니다.

 딸아이한테 마음을 건넬 수 있으면 기쁘고, 딸아이가 아빠한테 마음을 보낼 수 있으면 좋습니다. 옆지기한테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즐겁고, 옆지기가 지아비한테 마음을 드리울 수 있으면 고맙습니다.

― 이치고다 씨 이야기 (1) (오자와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0.25./4200원)

겉그림. 2권 3권 꾸준히 번역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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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 2010-11-03 23:14:38
예쁜 책 이야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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