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이 조용하게 일구는 멋과 삶
상태바
동네사람이 조용하게 일구는 멋과 삶
  • 최종규
  • 승인 2010.11.08 13:0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목길 사진찍기 ④] 신흥동3가 기차길 옆 골목동네

공무원이나 철도청 직원은 철길가에 해바라기를 심지 않습니다. 동네사람이 심어 놓고 모두한테 꽃인사를 건넵니다. 2010년 가을날.

 저는 인천 중구 신흥동3가 기차길 옆 골목동네를 몹시 좋아합니다. 큰길 건너 숭의1동으로 이어지는 골목동네 또한 참으로 좋아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남구 도화1동이고, 갓난쟁이 때를 보낸 곳은 도화1동하고 주안2동입니다. 본적은 중구 송월동3가로 되어 있었으나 제가 송월동에서 살던 일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일곱 살 무렵부터 신흥동3가 7-235번지에 있던 5층짜리 안국아파트에서 살았고, 이듬해 여덟 살에 신흥동3가에 있는 신광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나날 저하고 사귀며 놀던 동무들은 모두 신흥동3가와 숭의1동과 선화동과 용현2동과 신흥동2가하고 율목동에 살았습니다. 동무들이 살던 동네는 제가 늘 뻔질나게 드나드는 동네요, 언제나 골목골목 샅샅이 누비는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나날 숱하게 걷고 뛰며 놀던 곳이었기에 이곳 신흥동3가 기차길 옆 골목동네를 몹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옛이야기를 더듬으면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저는 굳이 옛이야기만 들추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지난날은 지난달대로 즐거웠던 삶이요,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기쁜 삶입니다. 제가 발을 디디며 몸을 섞던 이 둘레는 예나 이제나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옹기종기 어우러지는 가운데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봄에는 봄빛을 물씬 느끼는 동네라 좋습니다. 여름에는 여름햇살을 마음껏 쬐는 동네라 좋습니다. 가을에는 가을잎을 조촐히 마주하는 동네라 좋습니다. 겨울에는 눈 덮인 철길을 미끌미끌 거닐며 좋습니다.

 서울에서 살던 때 만난 서울사람은 제가 인천에서 왔다고 하면 ‘어느 시골 동네에서 왔다’고 여기곤 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로 살림살이를 옮겨 살아 보니, 참말 서울사람한테는 인천이 시골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라안 이곳저곳을 두런두런 다니며 마주한 사람은 제가 인천사람이라 말하면 ‘아, 서울사람이요.’ 하고 말을 받습니다. 부산사람이든 제주사람이든 광주사람이든 목포사람이든 …… 인천사람이든 서울사람이든 똑같이 ‘서울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인천은 인천이라 할 만한 뿌리나 줄기나 잎이나 열매란 한 가지도 없는 듯 여기는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늘 ‘인천사람’이라 밝히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태어났고 노닐었으며 학교를 다니는 동안 사귄 동무와 이웃들은 조촐히 꽃그릇 돌보며 텃밭을 일구는 가운데 흙 한 줌 없는 시멘트길 골목에서도 어김없이 나무를 심어 가꾸는 사람이었어요. 다른 골목에서도 풀과 꽃과 푸성귀와 나무를 어렵잖이 만나는데, 저로서는 중구 신흥동3가 기차길 옆 골목동네에서 푸근하게 마주했습니다.

 어쩌면, 이곳 기차길 옆 골목동네는 둘레에 연탄공장과 군부대(군부대는 다른 데로 옮겼습니다)와 제일제당 공장과 분수대(없어졌습니다)와 노란집과 인천시외버스터미널(관교동으로 옮겼습니다)과 바다와 동인천과 산업도로와 …… 숱한 삶자락을 맞대고 있었기에 한결 애틋하게 돌아보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느 골목이든 사람이 없고 사람내음이 없겠습니까. 어느 동네이든 꽃이 없고 꽃그릇이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날이면 날마다 ‘소리막이 울타리(방음벽)’ 하나 없고, ‘연탄가루 막을 그물’ 하나 제대로 서지 않은 시끄럽고 까무잡잡한 곳에서 알뜰살뜰 살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안국아파트에서 신광국민학교 사이를 여섯 해 동안 걸어서 다니며, 날마다 이 길을 거닐며 철길을 밟았고 연탄가루를 함께 마셨으며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198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신흥동3가 철길 둘레 텃밭은 그대로입니다.


21.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10.28.09:41 + F11, 1/80초
22.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09.10.3.12:23 + F10, 1/160초


 가을날 가을꽃이 그윽한 철길을 따라 걷는 동네 아이를 만납니다. 어린 나날 저 또한 이 아이들처럼 놀았습니다. 노는 모습이 좋고, 철길 둘레 꽃들이 좋습니다. 기차가 다닐 때이든 기차가 다니지 않을 때이든, 동네사람은 언제나 철길 둘레를 꽃밭과 텃밭으로 일구었습니다.

23.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10.28.09:39 + F10, 1/60초
24.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09.10.3.12:24 + F10, 1/200초


 연탄공장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기차도 하루에 한 대만 다니다 보니, 동네가 아주 조용해지면서 무척 살기 괜찮아집니다. 앞으로 수인선이 새로 다닌다면 동네는 다시금 시끄러워질 테지요. 어쩌면 살림집은 모두 밀어내고 ‘상업시설’, 이른바 술집과 옷집과 밥집으로 싹 갈아치우는 재개발을 할는지 모릅니다.

25.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10.28.09:32 + F9, 1/50초
26.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5.27.12:53 + F14, 1/80초


 봄부터 겨울까지, 아니 다달이, 아니 날마다 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신선교회’ 옆 살림집 담벼락은 ‘누가 와서 구경해 보이소’ 하는 모습이라 여길 만합니다. 딱히 누가 와서 구경해 주지 않더라도, 예쁘장하게 일구며 살아가는 분들 스스로 예쁘장하다고 느끼며 즐겁습니다. 철 따라, 달 따라, 들꽃은 아스팔트 바닥을 뚫고 스스로 자라납니다.

27.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10.28.09:30 + F11, 1/60초
28.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7.18.13:27 + F16, 1/80초


 비가 오면 뒤집어 놓고, 비가 개면 바로 놓는 걸상. 누구이든 다리쉼을 할 때에 앉아서 쉬면 됩니다.

29.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9.3.17:29 + F11, 1/80초
30.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7.18.13:28 + F16, 1/80초


 기차도 안 다니고, 자동차도 거의 안 다니는 골목입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고 신나게 자전거를 달릴 수 있습니다.

31.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9.3.17:28 + F11, 1/80초
32.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5.27.12:24 + F18, 1/80초

 해가 기웃기웃 기울어질 때에 하얗게 바른 담벼락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아름답습니다. 한여름을 앞둔 한낮에 해가 하늘 꼭대기에 걸려 햇볕을 쨍쨍 드리울 때에 빨래와 함박꽃과 질그릇과 들꽃이 고루 어우러져 곱습니다.

33.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10.28.09:49 + F9, 1/80초
34. 인천 중구 신흥동3가. 2010.10.28.09:35 + F11, 1/80초


 철길 둘레에 밭을 일구지 말라며, 구청이든 철도청이든 푯말을 박아 놓습니다. 그래요, ‘나라땅’에 함부러 밭을 일구면 안 되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텃밭을 일구어 놓으니, 동네사람한테도 싱그럽고 이 철길을 오갈 기차나 길손한테도 반가웁지 않나 싶습니다. 동네사람 스스로 살가이 보듬는 동네 삶을 살며시 살려 줄 수 있는 행정과 정책과 푯말이 나오지 못하는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yumaru 2010-11-08 22:38:29
저도 중구 신흥동 안국아파트에 살았습니다. 아버지와 걸어서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분수대, 노란집, 철길을 지나 신광초등학교에 걸어다녔습니다. 철길 위를 걷던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청한 2010-11-08 15:07:34
본적이 신흥동3가로 되있고 그곳에서 6년을 살았던 사람으로 옛기억이 새롭습니다.
연탄공장 옆에 있은 송무관이란 태권도장에도 다녔고
수인역 꼬마기차가 숨을 헐떡이든 풍경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물론 시장통에 있는 국밥집에서 풀풀나든 김에 서린 냄새도 다 기억납니다.
추억속을 거닐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