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한 삶, 그러니까 즐거움을 아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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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한 삶, 그러니까 즐거움을 아끼는 사람
  • 최종규
  • 승인 2010.11.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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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오자와 마리, 《니코니코 일기 (1~6)》

 깊은 밤이나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오면 찬바람에 몸을 살짝 움찔합니다. 이 찬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어 즐겁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밤이나 새벽에 쉬를 눌 때에는 반드시 밖으로 나와 개울이 졸졸 흐르는 멧기슭까지 걸어가서 풀숲에 눕니다. 쉬를 누는 동안 별을 올려다보고, 찬바람을 쐬며, 더없이 깜깜한 모습을 즐깁니다. 시골길에는 거리등이 거의 없어 한길이라 해도 썩 밝지 않은데, 마을 몇 집 모인 곳하고 꽤 떨어진 우리 집은 그야말로 깜깜한 나라입니다.

 오늘은 새벽 네 시 이십오 분에 깨어납니다. 자다가 쉬를 눈 아이는 으레 꽁알꽁알 하면서 “아부지.”나 “어머니.” 하고 부릅니다. 얼핏 꽁알꽁알 소리를 들었으나 곧바로 잠에서 깨지 못했는데, 아이 엄마가 “아버지, 기저귀 갈아 주셔요.” 하고 말하는 바람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래, 내가 일어나서 갈아 주어야 하는구나.

 집 바깥처럼 집 안도 깜깜합니다. 빛이라곤 한 줄기 없습니다. 손을 살며시 뻗어 아이 머리에 닿을 때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고는 바지를 천천히 내립니다. 오줌으로 푹 젖은 기저귀를 벗기고 베개맡에 미리 두었던 기저귀를 집어 갈아 줍니다. 아이랑 스물일곱 달째 살아가고 있는 만큼, 아무리 캄캄하건 어둡건, 또 눈을 뜨건 감건, 기저귀 갈기란 손쉽게 할 만합니다. 아이가 앞으로 언제쯤 ‘잠자리 기저귀’까지 뗄 수 있을까 궁금한데, 아이가 어른들 말을 제법 배운 뒤까지 잠자리 기저귀 갈기를 해야 하겠지요. 밤마다 이렇게 잠을 제대로 못 이루며 기저귀를 갈아야 하니 고단하지만, 아이 눈높이로 생각한다면 아이 또한 밤마다 오줌으로 젖은 기저귀를 차고 지내야 하니 얼른 갈아 주기를 바라는 한편 그때그때 잠이 깨겠지요. 몇 해쯤 지나야 아이는 밤이든 새벽이든 스스로 잠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쉬를 눌까 모르겠는데, 아이 스스로 밤이나 새벽에 잘 일어나 쉬를 눌 수 있다면, 그때에는 제 아버지처럼 마당으로 나오고 멧기슭으로 걸어가며 밤하늘 별밭 올려다보기를 즐기겠지, 하고 꿈을 꿉니다. 나중에 더 크면 혼자만 나올 터이나 아직 어릴 때에는 아버지를 불러 함께 멧기슭 풀숲에서 쉬를 누며 밤하늘바라기를 나란히 할는지 몰라요.


- “실은 아는 사람의 아이를 봄까지 데리고 있게 됐어. 지난주에 짐이 왔는데, 보니까 옷이 하나같이 다 작잖아. 부모란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있었나 몰라.” “몇 살인데?” “8살. 초등학교 3학년이야. 전학 수속이다 뭐다 해서 일은 하나도 못했어.”  (22쪽)
-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 머리가 아팠다.“너무 마셨군. 오랜만에 마셨더니만.” 니코는 이미 훨씬 전에 등교한 후였다. “앗, 교환일기다. 어디 볼까나?” ‘안 익숙해. 안 생겼어. 안 될 거야. 없어.’ ‘도쿄는 안 익숙해. 친구는 안 생겼어. 어른은 안 될 거야. 아빠는 없어.’ 그것이 대답. 자기혐오. (29∼31쪽)
-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혈연이란 게 과연 뭘까? 그런 게 그렇게 중요할까? 이 세상엔 사랑하지 않는 부모와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의 결합이 슬프도록 많은데. (62쪽)


 만화책 《니코니코 일기》 1권을 읽습니다.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 가운데 하나인데, 2002년에 처음 우리 말로 나올 때에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2005년인가 2006년에 비로소 이 만화가 진작에 나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니코니코 일기》는 판이 끊어지고 말았으며, 얼마 앞서까지 너덧 해에 걸쳐 헌책방을 뒤지고 살폈으나 좀처럼 찾기 힘들었습니다. 지난주에 가까스로 한 질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품에 안은 《니코니코 일기》는 대여점에 있던 책입니다. 겉에 비닐을 싸며 테이프로 붙인 자국이랑 대여점 스티커랑 덕지덕지 있습니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니 여덟 해가 된 셈인데, 고작 여덟 해를 지났으나 테이프가 녹으며 비닐과 책 앞뒤에 테이프 삭은 자국이 남습니다. 책을 펼치기 앞서 이 테이프부터 떼어내야 합니다. 비닐과 겉종이에 붙은 테이프를 살그머니 떼어 이렇게 떼어낸 테이프를 한손으로 가만히 쥐어 비닐과 책에 톡톡 하고 대면서 테이프똥이 묻어나도록 합니다. 이러기를 책 한 권마다 오 분이나 십 분 남짓 합니다. 테이프를 많이 붙인 책일수록 테이프 떼는 데에 오래 걸립니다. 아주 단단히 붙은 ‘대여점 바코드 딱지’를 뗄 때에는 더 골이 아픕니다. 테이프 떼기를 하며 히유 하고 한숨을 쉬니, 옆에서 바느질을 하며 바라보던 아이 엄마가 한 마디 합니다. “대여점 책이라도 이 책을 살 수 있었으니 고마운 줄 알라.”고.

 옳은 소리입니다. 판이 끊어진 만화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을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고마운 노릇인데요. 우리는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무척 아름다우며 멋진 책을 오래오래 곁에 둘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헌책방 일꾼이 땀을 흘려 주었기 때문에 아주 알차며 재미난 책을 두고두고 아끼거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모든 책을 빠짐없이 장만해서 읽을 수 없거든요. 누구나 놓치는 책이 있어요. 책방마실을 하면서 내 코앞에 있는 책시렁에 꽂힌 모든 책을 한눈에 알아내지 못합니다. 누리책방에 들어가 다람쥐로 콕콕 눌러 찾아보기를 한다 할지라도 못 알아보거나 못 찾아내는 책이 있습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모든 책소식을 빈틈없이 다루지 않아요. 언론 소개를 한 줄조차 못 받는 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언론 소개를 타는 책이라 해서 읽을 만하거나 훌륭하다 할 수 없어요. 언론 소개를 못 받는 책이라 해서 안 읽을 만하거나 안 훌륭하다 할 수 있나요. 더구나, 새로 나오는 만화책을 제대로 소개하는 매체는 한국땅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은 이 아이가 가장 상처받고 있다는걸. 모르는 척 지나치려 했었다. 더 이상 깊이 연관되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자신의 기분은 무시당한 채 어른들 편의대로 휘둘리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32∼33쪽)
- 네 주위의 어른들은 나를 포함해 하나같이 최악. 하지만 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어. 네가 생각한 네가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어른이 되기 싫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마. (35∼36쪽)
- “하지만,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아.” “어, 어떤 엄마라도?” (59쪽)


 만화책 《니코니코 일기》에 나오는 ‘니코’는 ‘코바코 니코’입니다. ‘니코’라는 이름은 우리 말로 하자면 ‘싱글’이라 합니다. ‘니코니코’라 하면 ‘싱글싱글’이거나 ‘싱글벙글’쯤 됩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 니코는 여덟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웃은 적이 없습니다. 즐겁게 웃은 날이 하루조차 없습니다. 니코 어린이는 제 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제 아버지한테서도 사랑을 얻지 못했습니다. 니코 어린이를 낳은 어머니는 니코를 돌보지 않습니다. 니코와 말을 섞고자 하지 않습니다. 니코 어린이를 낳은 아버지는 제 씨앗으로 니코가 태어난 줄을 모릅니다. 니코 아버지 되는 사람은 제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랑 아버지랑 따스히 사랑해 주며 사랑을 물려받거나 받아먹으며 싱글싱글 웃으며 커야 할 니코인데, 정작 니코한테는 웃음기란 하나 없이 차갑고 메마르며 슬픈 삶을 보내며 ‘빛나는 여덟 살’까지 빛을 잃은 채 주눅만 듭니다. 계집아이라 해서 꼭 치마만 입고 예쁘장하게 차려입을 까닭이 없습니다. 사내아이라 해서 반드시 바지만 입고 거칠게 놀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니코는 계집아이이면서 예쁘장하게 차려입는다거나 치마를 입는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개구지게 놀거나 마음껏 뛰놀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있어도 있다고 느끼기 어렵고, 없으면 없으니 그만인 듯한 채 ‘니코를 낳은 어머니네 어머니(할머니) 집’에 얹혀서 살다가, 니코네 할머니가 저승으로 간 다음 맡아 줄 사람이 딱히 없어 ‘니코 어머니가 배우로 일할 때 심부름꾼(매니저) 노릇을 하던’ 케이라는 아가씨 집으로 갑니다. 케이라는 아가씨는 서른둘 나이로 혼자 살면서 만화 대본이나 연속극 대본을 써서 밥벌이를 고만고만하게 하는 사람.


- “메구미네 집은 절인데 해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대. 그치만 우리 집엔 한 번도 오신 적 없단 말야. 할머니가 불교 신자라서.” “한 번도?” “한 번도!!”
- ‘오늘 엄마가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야”라고 말했다. 분해서 울지 않았다.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엄마는 예쁘게 꾸미고 나가 버렸다. 니코도 엄마 딸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케이 언니 딸로 태어나고 싶었어.’ (117쪽)
- 필사적으로 젖을 빠는 작고 귀여운 니코의 모습에, 미후유도 마치 그때만은 성모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142쪽)


 아이를 낳아 본 적이든 아이를 길러 본 적이든 없을 뿐더러 ‘어린 애들은 싫어’ 하고 말하던 사람이 아이를 맡아 기르며 함께 살아야 할 때에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아니, 멀리 헤아리기보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되겠지요. 혼자 일만 사랑하면서 살다가 온갖 집안일을 다 치르는 가운데 아이를 낳아 아이랑 하루 내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돌아보면, 《니코니코 일기》에 나오는 ‘케이 언니’가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니코 어린이를 처음 맞이하고, 비로소 맞아들이며, 바야흐로 사랑할 수 있는가를 깨달을 만하겠지요.

 그래요, 사랑받아 오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물려주기 어렵습니다. 사랑을 받아먹으며 어린 나날을 보내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 스물이 되건 서른이 되건 마흔이 되건 예순이 되건 일흔이 되건, 따스히 사랑하는 손길을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한테 나누어 주기 힘듭니다. 어쩌면 ‘니코를 낳은 연예인 엄마’부터 당신이 어렸을 때에 살갑거나 따스히 사랑받은 적이 없을는지 몰라요. 니코 어린이를 맡기로 한 케이 언니라고 딱히 사랑받으며 자랐다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케이 언니는 당신 어머니하고 틈틈이 전화로 소식을 나눌 뿐더러, 틈틈이 고향으로 찾아가 어머니를 만나면서 마음과 몸을 쉬곤 합니다. 케이 언니한테는 마음쉼터 고향이 있고 마음쉼을 베푸는 너그러운 어머니가 있어요. 케이 언니는 시골집에서 따사롭게 살아가다가 도쿄라고 하는 ‘경쟁으로 피를 튀고 집삯이니 뭐니 하며 고단하기 짝이 없는 도시살이’ 때문에 ‘어린 애들은 싫어’ 하고 느끼도록 마음이 메말라 가고 말았으나, 서른둘 나이에 갑작스레 찾아온 ‘아이키우기’를 맞닥뜨리며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케이 언니 마음이 생채기투성이일 뿐 아니라, 케이 언니 또한 둘레 사람들한테 생채기를 입히며 살았음을. 이제부터 케이 언니 스스로 사랑받는 삶을 일구고 싶은 한편, 케이 언니 또한 스스로 당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가꾸고 싶음을.


- “네가 간다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순 거짓말!” “진짜야.” “흑, 히잉, 훌쩍, 으아앙.” (56∼57쪽)
- 잘렸다. 전화 한 통으로 깨끗이 잘리고 말았다. 아주 보기 좋게. (182∼184쪽)


 한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나날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우지끈 뚝딱 하고 거듭나지는 않아요. 크게 탈바꿈하는 모습이 새삼스레 보이는 가운데, 아주 찬찬히 거듭나는 모습이 더디게 보입니다. 사랑받는 즐거움과 사랑하는 즐거움을 아주 천천히 느끼는 케이 언니입니다. 그리고 케이 언니처럼 사랑받고 사랑하는 놀라움을 아주 빠르게 느끼는 니코 어린이입니다. 니코 어린이는 케이 언니보다 훨씬 빠릅니다. 왜냐하면 여덟 살이란 나이는 아주 어리다 할 만하지만, 니코 어린이한테는 온삶이 여덟 해예요. 이 여덟 해를 살아오는 가운데 니코 어린이 가슴에 ‘사랑’이란 이름표가 붙은 날이란 하루조차 없었어요. 삼백예순닷새를 여덟 번 보내는 동안 처음으로 맞이한 사랑이에요. 이 사랑에 흠뻑 빨려들밖에 없고, 이 사랑에 흠씬 젖어들밖에 없습니다. 놓칠 수 없고, 잃을 수 없으며, 잊을 수 없습니다. 잡고 싶으며, 누리고 싶고, 함께하고 싶어요.

 케이 언니는 어른입니다. 어른인 케이 언니는 사랑받아 온 삶이 있고 사랑을 못 받았던 삶이 있습니다. 슬픔도 겪지만 기쁨도 겪습니다. 슬플 때에는 담배를 태운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할 수 있어요. 풋사랑으로 그치더라도 사랑놀이를 하기도 하며,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내 주머니 돈으로 얼마든지 합니다. 니코 어린이는 누구한테서 돈을 얻어야 택시나 버스를 탈 수 있으며, 어른들처럼 홀가분하게 사랑을 한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할 수 없습니다. 니코 어린이는 모든 일 모든 자리에서 빠르게 깨닫고 빠르게 몸을 맞추며 빠르게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케이 언니는 늘 나중에 깨닫고 비로소 알아채며 바야흐로 당신 스스로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느낍니다.


- “하지만 불쌍해. 즐거운 여름방학에 학원이나 다니고.” “그러게.” “같은 4학년이라도 날이면 날마다 놀고만 지내는 아이도 있는데. 요기!” “어른도!” (134쪽)


 모두 여섯 권으로 이루어진 《니코니코 일기》 1권은 이렇게 ‘사랑에 처음 눈 뜨는’ 두 사람 이야기를 영글어 냅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겪거나 느끼거나 받아먹을 수 없던 사랑을 처음으로 만난 니코 어린이하고, 이제까지 숱하게 겪거나 느끼거나 받아먹기는 했으나 사랑이 참다이 사랑이었다고 느끼지 못하던 케이 언니하고 알콩달콩 툭탁툭탁 벌이는 투박한 살림살이를 보여줍니다.

 참 그렇거든요. 저한테 옆지기라든지 딸아이를 갈음할 만한 사람이나 삶이나 사랑이 있으려나요. 곰곰이 따지자면 어딘가에 있을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는 내 모든 ‘삶 발자국’을 남김없이 훌훌 잊으며 조용히 떠나도록 이끄는 무언가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면 우리 옆지기한테는, 또 이제 막 스물일곱 달째 살아가는 딸아이한테는 어떠할까요. 스물일곱 달째 살아가는 딸아이한테 제 아버지를 갈음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으려나요.

 밥을 먹이고, 오줌기저귀 갈아 주고, 똥을 눈 밑을 닦아 주고, 머리 감기고 몸을 씻어 주며, 옷을 갈아입히고, 빨래를 하고, 밥을 하며, 방바닥과 집을 쓸고닦으며, 안고 어르고 업고 무등 태워 놀다가는, 팔베개를 하며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리며 새근새근 재우는 제 아버지를 갈음할 무언가가 있다면 어디에 어떻게 있으려나요.


- 나에게 이 아이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어. 이 아이에게 나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듯이. 일에서도, 아무도 날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보이겠어. 언젠가 기무라 씨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 주겠어. (194∼195쪽)


 누구한테나 즐거운 삶입니다. 그러니까 즐거움을 아끼는 삶입니다. 《니코니코 일기》를 이루는 두 사람, 니코 어린이와 케이 언니는 여덟 해 삶과 서른두 해 삶을 보냈지만, 이동안 제대로 즐겁다 느끼지 못하며 보낸 삶입니다. 바로 오늘, 여덟 살과 서른두 살 나이부터 즐거움을 참다이 깨달으며 새롭게 보내려는 삶입니다.

 니코 어린이는 갓난쟁이부터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살았다면 더 나았을는지 모릅니다만, 여덟 살부터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살아가도 나쁘지 않습니다. 케이 언니 또한 어린 나날부터 사랑을 받아먹으며 사랑내음 물씬 풍기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살아갔어도 좋았겠으나, 서른두 살부터 사랑내음 물씬 나는 사랑스러운 어른으로 살아가도 아쉽지 않아요.

 언제 깨닫든, 언제 첫 실타래를 풀든, 언제 첫 걸음마를 떼든, 즐거운 삶임을 헤아리며 오순도순 손을 맞잡을 수 있으면 좋아요. 좋은 만화책이라면 첫 권부터 끝 권까지 차곡차곡 갖추어 모두 읽어도 즐거웁고, 짝을 잃어 딱 한 권만 읽을 수 있어도 즐겁습니다. 《니코니코 일기》 1권은 ‘처음 깨닫는 즐거운 삶’을 알차게 보여줍니다.


― 니코니코 일기 (1~6) (오자와 마리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옮김,2002.~2004./판 끊어짐)

겉그림. 새책으로는 절판되었고 헌책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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