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돈 좋아하는 사람만 남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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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돈 좋아하는 사람만 남으라지
  • 최종규
  • 승인 2010.11.0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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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이승현, 《파란집》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던 때에도 신문을 읽지 않았습니다. 이때에도 우리 살림집에는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1995년에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로 들어와 홀살이를 처음 할 때에는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잤습니다. 날마다 신문을 돌리며 날마다 열세 가지 아침신문(스포츠신문 두 가지랑 경제신문 하나까지)을 읽었습니다. 신문배달 일꾼으로 지내던 삶을 마감하고 책마을 일꾼으로 바뀐 1999년 여름부터는 내가 돌리던 신문을 받아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신문을 영 보아 주기 힘들다고 느껴 끊을까 말까 망설이면서 차마 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신문배달 일꾼으로 여러 해를 살았거든요. 사람들이 신문을 끊으면 ‘신문사 본사’가 아닌 ‘신문사 지국’이 피를 봅니다. 신문사 본사는 ‘독자 구독료’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문에 나는 광고 값’으로 움직이는 신문사입니다. 독자 구독료는 신문사 지국이 살아가는 돈입니다. 그나마 신문사 지국은 〈조선일보〉이든 〈한겨레〉이든 지국을 차릴 때에 신문사 본사에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에 이르는 돈을 냅니다. 독자 구독료 가운데 꽤 큰몫을 본사로 보냅니다. 신문사 지국으로서는 기자가 받는 달삯보다 훨씬 적은 돈을 독자 구독료에서 떼어 일삯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지국장쯤 되어야 그럭저럭 ‘살림을 꾸릴 달삯’이 될 뿐, 총무라 하여도 신문배달 달삯으로는 살림을 꾸리지 못합니다. 여느 일꾼들은 달삯이 몹시 적습니다. 지국에서 먹고자는 일꾼이 가장 잘 받고, 알바 대학생이 둘째로 받으며, 아줌마가 셋째로 받고, 중·고등학교 알바생이 넷째로 받으며, 초등학생이 막째로 받습니다. 똑같은 부수를 돌리더라도 받는 일삯이 꽤 크게 벌어집니다. 이렇게 계급을 두어야 지국장은 조금이나마 돈을 더 챙길 수 있고, 신문에 넣는 광고종이는 오로지 지국 몫인데, 이 몫은 으레 지국장이 다 챙깁니다. 이리하여, 신문 독자가 신문을 끊으면 지국은 벌이가 하나 줄 뿐 아니라 본사에 벌금을 물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신문배달을 그만두던 1999년까지 〈한겨레신문〉에서는 지국이 본사로 ‘독자 한 사람이 신문을 끊을 때마다 5만 원’씩 물도록 했습니다. 거꾸로, ‘지국에서 독자 한 사람을 늘리면 본사에서 5만 원’을 줍니다. 조·중·동이라 일컫는 신문사 지국은 이 ‘벌금이자 성과금’이 더 센 줄 압니다. 이런 형편을 아니까, 신문에 실리는 글이 영 못마땅해도 지국 일꾼들 살림살이가 걱정스러워 신문을 끊지 못했는데,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다가 서울을 떠나 시골집으로 살림을 옮기던 2005년에 이르러 겨우 신문을 끊습니다. 이때부터는 어떠한 신문도 보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은 1994년부터 끊습니다. 텔레비전 있는 집에 찾아갈 때라든지 밥집에서라든지 옆지기 어버이 댁에서만 방송을 봅니다. 있으니 같이 보는 셈인데, 신문을 읽던 지난날이든 더러더러 방송을 함께 봐야 하는 오늘날이든, 신문이나 방송에서 다루는 이야기란 언제나 도시사람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도시사람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거의 모두 서울사람 이야기에 머뭅니다. 부산이나 대구 이야기라든지, 서울하고 가까운 인천 이야기라든지, 다른 도시 이야기는 참말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95%가 서울사람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서울이라는 큰도시에서 제법 잘 사는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고 느낍니다.

 만화책 《파란집》을 읽습니다. 만화대사 한 줄조차 없으나 만화책 《파란집》을 읽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보는 만화가 아니라 읽는 만화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보고 넘기는 만화책이 아니라, 그림에 서린 이야기를 읽는 만화책입니다.


.. 희망을 안고 파란집에 끝까지 남았던 영혼들께 바칩니다 ..  (그린이 말)


 만화책 맨 앞쪽에 그린이 말이 깃듭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서울 용산에서 잿더미가 되고 만 가난하고 가녀린 사람들 삶을 담았다고 합니다. 아마, 서울 용산에서 철거민이라는 이름이 붙어 쫓겨나거나 죽어야 했던 사람들 삶만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가만히 헤아리면 서울 용산뿐 아니라 온나라 곳곳에서 쓸쓸하고 슬프게 쫓겨난 모든 가난한 사람들 삶터와 삶자락을 담았다고 해야 한결 알맞을 테지요.


.. 아내가 열이 나 아팠습니다. 그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라고 지나쳤는데, 오늘 제가 열이 펄펄 끓습니다. 제 몸이 아프니까 그제야 아내의 아픔이 이해가 됩니다. 왜 그때 좀더 관심을 갖고 잘 보살펴 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  (그린이 말)


 만화책 맨 뒤쪽에 그린이 말이 다시 깃듭니다. 그린이는 늦쟁이라 할 만합니다. 제때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보듬는 삶이 아니라 느즈막히 깨닫거나 알아채거나 보듬는 삶이라 할 만합니다. 그래도 느즈막히 헤아린다면 고맙지요. 느즈막히는커녕 죽는 날까지 못 헤아리는 바보스러운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데요. 대학교까지 나온들, 대학원까지 다닌들,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온들,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된 삶을 살피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가요.

 《파란집》이란 서울 용산에만 있지 않으며, 서울 용산에만 있을 턱이 없습니다. 게다가, 서울 용산 이야기는 그럭저럭 서울 한복판에서 살던 사람들 이야기라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납니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한 줄로조차 안 다루는 온나라 곳곳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 삶이 매우 많습니다. 이 많은 아픈 삶을 그려 주는 이는 드물고, 이 숱한 가난한 울음과 웃음을 고이 담아 주려는 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을 보고 읽고 곰삭이고 되뇌고 돌아봅니다. 자그마한 내 살림집에서 올망졸망 오순도순 알뜰살뜰 지내던 사람들은 ‘더 커다란 돈’을 노리는 사람들 손아귀에서 생채기를 잔뜩 받은 채 쫓겨납니다. 재개발은 서울 강남 같은 데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값싼 땅을 아파트로 바꾸어 비싸게 팔아야 큰돈이 되지, 비싼 땅 아파트를 허물어 다시 지어서는 큰돈이 되지 않습니다. 재개발업자라든지 정부 건설 부서에서는 ‘땅값하고 집값이 싼 가난한 동네’를 이 잡듯이 뒤집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살림살이로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동네일수록 재개발 값어치가 클 뿐 아니라 ‘이렇게 아기자기하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동네란 늘 개발 반대 목소리가 불거지는 곳’이니 얼른 밀어내려고 합니다. 권력자한테는 돈이 큰 값어치일 뿐 아니라,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소담스레 나누는 공동체 또한 얄궂은 걸림돌이니까요. 돈은 돈대로 벌면서, 사랑스러운 작은 동네를 허물어야 검은 꿍꿍이를 언제까지나 이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갈 데가 없어 버티던 작은 사람들은 이슬이 됩니다. 또는 잿더미가 됩니다. 일자리가 없어 도시로 몰려들던 사람들은, 더 큰 도시로 찾아오던 사람들은 작은도시로든 시골로든 돌아가지 못합니다. 도시로 찾아와 일자리를 찾던 어버이가 낳아 키우던 아이들은 시골을 모릅니다. 시골로 갈 마음을 품기 어렵습니다. 치고박고 다투어야 하는 도시에서 내 작은 살림 꾸릴 뿐 아니라 ‘셋집에서 집임자로 거듭나기’를 꿈꿀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집삯을 내더라도 도시에서 일자리를 붙잡으며 도시에서 버티려 할 뿐, 시골 논밭을 일구며 스스로 벌고 스스로 쓰며 스스로 살아가는 땀맛과 손맛을 찾으려 하지 못합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인크루트라고 하나, ‘일자리를 알음알이 해 준다’는 여러 가지 매체가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마다 대학생 일자리를 걱정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일자리이든 저런 일자리이든 하나같이 도시에서 펜대를 붙잡거나 기계 손잡이를 붙잡는 일자리입니다. 쟁기와 낫과 삽과 호미를 드는 일자리란 없습니다. 시골에서조차 농업고등학교란 사라졌는데,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농사꾼 가르치는 학교는 없고, 농사꾼 가르치는 교과서 또한 없습니다. 게다가 풀약과 비료와 항생제 안 쓰면서 거름을 만들고 땅심과 밥심을 살리는 교과서란 아예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신문 귀퉁이라든지 방송 끄트머리에라도 실리지 않습니다.

 만화책 《파란집》은 도시에서 아프게 살 수밖에 없는 아픈 사람들 생채기를 살뜰히 그렸습니다. 그래요, 도시에서는 ‘파란빛’ 집이겠지요.

 그렇다면 ‘푸른빛’ 집이란 없으려나요. 하늘과 바다는 파란 빛깔입니다. 땅(흙)은 누런 빛깔입니다. 하늘(파랑) 기운과 물(파랑) 기운을 받으며 땅(누렁) 기운을 얻어 자라나는 새 목숨 풀·꽃·나무·열매는 푸른 빛깔입니다. 재개발 보상금이나 이삿돈은 그야말로 코딱지돈이라 할만큼 적은데, 이 적다 하는 돈은 도시에서는 적을지라도 시골에서는 적지 않습니다.

 꿈을 꿉니다. 저는 ‘파란집’ 꿈보다는 ‘푸른집’ 꿈을 꿉니다. 큰숲에 깃들던 작은 집에서 살던 로라 잉걸스 와일더 님 살림집은 바로 푸른집이었습니다. 재개발 보상금으로는 도시에서 새 살림집을 마련하기 힘들지만, 시골에서는 새 살림집을 넉넉히 마련하여 조용하고 오붓하며 신나게 살아갈 수 있답니다. 도시 한켠 가난한 골목동네를 싹 쓸어내어 재개발을 할라치면, 그래요 다 떠나 주지요. 다 옮겨 주지요. 한 동네 사람들 통째로 시골로 옮겨 가지요. 도시에서는 돈있고 힘있고 이름있는 사람들끼리 잘 살아 보라지요. 버스기사랑 전철기사도 가게 장사꾼도 청소부도 전기회사 일꾼도 헌책방 사장님도 택배기사도 모두모두 시골로 옮겨 주지요. 국회의원 대통령 재벌총수 의사 판사 검사 같은 분들만 도시에 덩그러니 남아 스스로 잘 살아 보라고 하지요. 가난한 사람들은 시골에서 스스로 땅을 일구며 스스로 작은 집에서 서로서로 벗삼으며 마을잔치 즐기며 살아갈 테니까, 가멸찬 분들은 도시에서 300평짜리 아파트를 지어 떵떵거리며 살아가라지요. 도시에서는 파랗디파랗 아파트를 높디높게 올려세우며 살라 하고, 시골에서는 푸르디푸른 살림집을 살붙이들 어우러질 만큼 조그맣게 마련하여 살아가면 되지요. (4343.10.27.물.ㅎㄲㅅㄱ)


― 파란집 (이승현 글·그림,보리 펴냄,2010.1.20./9800원)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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